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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ㆍ시사토론
 청와대는 방송의 ‘쪼인트’를 이렇게 깠다
 작성자 : 바람      2010-12-25 18:57:40   조회: 1988   
청와대는 방송의 ‘쪼인트’를 이렇게 깠다
[대한민국 청와대 이야기 3] 청와대와 방송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0-12-22)


청와대는 정치권력의 최정점입니다. 대통령의 권력운용 스타일에 따라 다르지만, 독재적 요소가 강하면 강할수록 권한과 파워는 더욱 높아집니다.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 불방 배후에 청와대 외압이 있었다는 논란이 거셉니다. 오늘은 청와대와 방송의 오래고 질긴 애증의 역사, 그리고 통제와 독립의 상충적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그리고 청와대 입장에서 방송은 ‘이브의 사과’와 같은 존재입니다. 대통령에게 보다 유리한 여론, 국정운영에 보다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에 방송은 매력적 도구로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대통령의 단호한 방송독립 의지가 아니면, 통상 청와대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은 방송을 손에 넣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끼게 돼 있습니다.

특히 청와대나 정부가 인사-소유구조 등에서 직간접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매체일수록 그런 유혹은 강해집니다. 지상파에선 KBS, 케이블에선 YTN 등이 대표적 매체죠.

군사정권과 군 출신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절에는 청와대가 직접 방송을 통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보처의 일개 사무관이나 서기관 정도가 각 방송사에 전화 한 통으로 ‘이런 내용의 방송을 하라’ ‘마라’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방송은 권력의 여론조작 수단에 불과한 시절이었습니다. 아예 보도지침을 내려 보내, 뭐는 어떤 내용, 어느 정도 비중으로 방송하고, 뭐는 아예 입도 떼지 마라, 가이드라인을 줄 정도였습니다.

청와대 행사에 방송사 직원들이 동원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대통령 행사 세트제작에 방송사 미술국 직원들이 차출됐다는 게 믿어집니까? 그랬습니다. 9시 뉴스는 대통령으로 시작해 여사님 얘기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청와대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공보처가 대신 방송사를 장악하고 방송내용을 주물럭거렸습니다. 청와대는 기껏해야, 누구를 사장에 앉힐까 정도만 고민했죠.

현재 방송사 고위 간부들은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누구는 청와대 권력에 대한 공포, 누구는 유착에 대한 유혹, 누구는 청와대에 줄을 대면 어떤 길이 보장되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시절이 바뀌면서 방송인들도 자각이 생겼습니다. 노조를 만들고 방송민주화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사회 전반이 민주화되면서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호시절이 끝났습니다. 일선 부처가 방송장악에 함부로 나서기도 어렵게 되면서, 청와대의 은밀하고 조직적인 직접 통제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 수단은 인사입니다. 먼저 대통령이나 청와대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장에 앉혔습니다. 사장 아래 부사장이나 본부장, 국장 인사까지 챙겼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통해 원격조종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공영방송뿐 아니라 민영방송 인사에까지 청와대가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누구를 임명하고 나면 ‘우리가 자리 줬으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지’라는 심보를 갖게 됩니다. 임명된 사람은 ‘협조해 달라는 대로 협조해서 은혜를 갚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 게 일반적입니다.

다른 수단도 있습니다. 돈입니다. 방송사 예산, 경영실적과 직결되는 광고영업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방송 장악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여기엔 당연히 광고 배분권을 가진 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압박의 매개로 심습니다. 공영방송의 경우 예산관련 부처, 국회(여당), 감사원 등도 동원을 하게 됩니다. 특히 광고가 많지 않은 마이너 방송사나 지역 방송사들은 사실상 큰 물량의 광고영업을 광고공사가 해 주기 때문에 바람 앞에 등불처럼 약해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습니다.

광고의 경우 주요 광고주인 대기업을 압박하기도 합니다. 협조가 원활치 못한 방송에 대해 광고물량이 많이 가지 않도록 우회적 압력을 넣는 것이지요. MBC의 경우 사퇴압박을 받던 전임 사장 재임 시절 대기업 광고물량이 어땠는지 따져보면, 묘한 작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청와대 말 잘 들으면 예산이나 광고가 많이 가게 해 주고, 청와대 말 잘 안 들으면 반대로 압박을 하는 것이죠. 예산확보나 경영실적이 좋지 않으면 회사가 어려워지니 사내 여론도 악화되고 연임도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 고위 임원들은 자리보전을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청와대나 권력에 충성을 하게 되는 악순환 구조입니다. ‘쪼인트’ 발언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또 다른 수단은 정책입니다. 방송은 신문과 달리 다양한 정책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방송위원회나 정보통신부(현재는 두 기관이 방송통신위원회로 합병) 등의 특정한 정책결정은 방송사 경영은 물론 때로는 존립 자체를 좌지우지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몰아내려 할 때 수신료 인상이라는 당근을 만지작거리며, KBS 직원들조차 밥그릇에 눈이 멀어 부당한 사퇴압박에 동원되도록 한 것이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최근의 수신료 인상은 충성에 대한 달콤한 대가로 봐야겠지요.

청와대에서 방송을 담당하는 부서는 홍보수석실 홍보기획비서관실입니다. 제가 그 직책을 3년 반 넘게 맡았습니다. 과거 청와대에선 국내언론 1비서관실과 2비서관실로 나뉘어져, 1비서관실이 신문과 통신을, 2비서관실이 방송을 맡았다가 참여정부에서 두 부서를 통합했습니다. 그 이전 청와대에선 정무수석실이 방송사 인사나 ‘정무적 관리’를 챙겼고, 방송내용과 정책은 홍보수석실이 나눠 맡았습니다. 현재 청와대에서도 홍보기획비서관실이 방송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대통령 홍보와 국정홍보를 총괄하는 부서가 대방송사 업무를 같이 맡는다는 것 자체가 따지고 보면 어폐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장악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신앙처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함부로 장악의 유혹을 느끼지 못하도록 대통령이 수시로 챙겼습니다. 임기 첫해, KBS 사장 인사 문제로 곤욕을 치른 탓도 있지만 인사에서 원칙에 어긋나는 부당한 개입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에서는 청와대가 (내심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인사들이 공영언론사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방송내용을 두고도 늘 다툼(소송, 언론중재 등)이 있었습니다.

FTA 같은 첨예한 사안이 생기면 청와대와 방송사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젊은 기자나 PD들의 정치적 소신을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일방적인 보도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공정성’을 얘기했다는 것은, 청와대가 방송을 장악하지 않고 있다는 점, 방송이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방송하고 있다는 당시 현실을 그대로 웅변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공영방송 KBS가 사상 처음으로 신뢰도 영향력 등 여러 분야 수위에 오른 것은 방송독립에 대한 노 대통령 의지와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던 정연주 사장의 언론인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2003년 어느 날, KBS가 주관하는 재외동포 시상식 행사에 노 대통령이 참석해 정연주 사장과 우연히 조우했습니다. 그때 노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KBS 사장과 검찰총장에게 전화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적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정 사장은 노 대통령이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고 사장이 소신껏 경영할 수 있게 한 것을 두고두고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청와대와 방송의 관계가 과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 시각으로 보면 청와대가 어떤 프로세스로 방송을 움직이고 있는지 뻔히 보입니다.

방송사 사장 선임권을 지닌 이사회에서 다수구조를 만듭니다. 정부-여당 쪽 이사들을 시켜 대통령 특수 관계인들을 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출세에 눈먼 간부들은 청와대에 발탁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충성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주요 간부들은 사내 신망이나 능력보다는 특정한 정치색을 강하게 띈 돌격형 인물들로 채워집니다. 과거보다 더욱 강력해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의 멘토입니다. 방통위는 모든 정책을 주무르며 방송사에 대한 청와대 장악력을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상당수 방송광고는 국민예산으로 제작한 정부 이미지광고나 캠페인 광고입니다. 청와대 마크가 들어간 관제광고까지 방송을 탑니다.

2006년 어느 날 풍경이 떠오릅니다. 모 방송사 사장 선임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한 사장 후보가 저를 만나자고 집요하게,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해당 방송사 출신이지만 한나라당과 연관성이 깊고, 누가 봐도 아주 보수적 성향의 인사였습니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인사에 끼어들기 어려운 상황인데 만나자고 하니, 만날 이유가 없어 피했습니다. 그런데 위계를 써서 제가 참석한 저녁 모임에 엉뚱하게 나타나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피하기 힘든 경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만났을 때 그가 던진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현재 사장이 방송을 장악 못 해 비판적 보도가 많다, 확실히 장악해서 대통령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 임기 말인데 (방송장악이) 중요한 문제 아니냐, 거기엔 내가 적격이다, 특히 노조 하나는 확실히 장악해서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 그럴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를 밀어 달라, 난 한나라당 사람이 아니다, 믿고 도와달라, 이런 얘기였습니다. 사실상의 충성맹세이자 은밀한 다짐을 한 것입니다.

“사장 선임 결정권을 가진 분들은 이사회 이사들이니 그분들 만나 (선거운동) 잘해 보시라”고 돌려보냈지만, 씁쓸했습니다. 방송에 대한 시각이 섬뜩했습니다.

그분이 이 정권에서 아주 잘 나가고 있고, 그분의 명예가 있으니 누구인지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 얘기를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참여정부 청와대에도 그런 인사들이 줄을 댔는데 방송장악에 노골적인 이 정권 아래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한 번 짐작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어쨌든 이명박 청와대와 방송의 관계가 눈에 선합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행태의 심각한 책임은 양쪽 모두에 있습니다. 청와대 눈치를 보면서 방송을 통제하는 권력형 간부들이나, 순치된 내부 직원들 모두 말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방송이 청와대에 장악된 쓰라린 경험은 다음 청와대에 누가 들어가 국정을 운영하든 ‘밀어붙이면 된다’ ‘청와대가 그까짓 방송쯤이야’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아주 나쁜 선례, 대단히 치욕적인 학습효과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십수 년 노력으로 이뤄 온 방송독립의 성과가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양정철

 

2010-12-25 18: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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