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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도둑이다! (소통의 공간, 울진 매화작은도서관) 배정훈 내가 출산 후 남편이 사는 동네로 왔을 때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도서관이다. 동네 인심을 확인할 때는 미용실이 최고라지만 남편이 나고 자란 이곳 복지관에 노인정과 더불어 있는 이 작은도서관은 나와 내 딸아이의 놀이터가 되기 안성맞춤이었다. 삼십년 전엔 양복점이 세 군데나 있었고 일본식 집과 넓은 장터를 가진 원남면은 지금 매화면으로 개칭되었다. 이름도 바뀌고 읍소재지에서 십분 거리에 버스가 자주 오가지만 급격히 늘어만 가는 것은 노인인구와 올해 매화중학교 입학생이 1명, 초등학생 또한 스무명이 되질 않아 지금 다들 마을의 존립을 걱정하고 있는 중이다. 매화면이 위치한 울진군은 한수원이 있어서 뜨내기 노동자들이 많은데다 급격한 노인인구 증가와 다문화가정 또한 증가하고 있기에 때가 되면 떠나가는 철새 같은 인구를 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책이 필요하다. 그 방책 아니 그 보다 더 큰 청사진을 그리며 시작된 것이 바로 이 작은도서관이며 그 역할을 수행하느라 고생중이다. 군의 지원을 넉넉히 받지 못해도 유명작가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하고 독서문화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올해는 독서릴레이 및 독서골든벨 같은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의 한글지도와 바자회를 펼치기도 한다. 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장난감도서관을 같이 운용하기도 하고 따분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산적한 지식의 강요보단 휴식을 제공하는 이 작은도서관이 나는 너무나 좋다. 그래서 이젠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다 내가 찍히고야 말았다. 옛말에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했었던가? 그래서 책 두어 권을 말없이 스리슬쩍 가져간 것이 들통난 것이다. 언니는 엄하게 꾸짖으시며 다음부턴 책이 탐나도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아끼고 소중히 여겨줄 것을 당부하셨다. 사서의 재량에서 나를 최대한 배려하시면서도 언니는 남다른 내 책욕심에 대해 경각심도 깨우쳐 주셔서 도서관이 단지 책을 대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사서언니의 냉철한 직업의식에 나는 정말이지 부끄러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또한 이를 용서해주시는 언니에게 감사했다. (한 번 더 그러면 도서관 출입금지겠지만.) 매화작은도서관은 작지만 동네 사랑방 역할도 한다. 오전에는 무척이나 한가한데 동네에 아이들이 적어서겠지만 이곳의 인심은 후덕하다. 좋은 동네사람들도 많이 사귀었다. 근무자분들은 서로를 배려해가며 업무를 보고 있다.(참고로 매화복지관은 방음이 잘 안된다.) 매화면 도서관 앞에는 벤치와 매화중학교 학생들이 그린 벽화가 있고 옆에는 보건소가 있고 또 나무들이 있다. 하지만 도로변이라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사서언니는 늘 신경이 곤두서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새소리보다 유치원이 끝나면 들이닥칠 아이들의 신명남 늘 긴장하는 것이다. 그 땐 도서관이 익숙하기보단 늘 새로워지려 애쓰는 것 같아 좀 유별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한 주마다 책의 위치가 늘 반듯이 정리되거나 바뀌어 있는 것 역시 그 유별남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나와 미운 세 살 딸아이에게 기꺼이 책을 두고 쫑알거릴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이 공간이 나를 매화에 안착시켜주었다. 늘 마음이 떠도는 것 같아 불안한 내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시고 각자의 생활의 지혜 그리고 육아의 일부를 맘 놓고 기댈 수 있는 것 같은 작은도서관이 참 좋다. 이런 도서관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서언니까지. 나는 대학 때 교내도서관 아르바이트를 2년간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은 가뭇하지만 그 때의 독서에 대한 집착은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다. 요즘엔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정보가 차고 흘러, 손끝 하나 움직이면 모든 것을 검색할 수 있지만 눈으로 읽다보면 종이의 촉감이 잠을 불러들이는 그 느낌을 되새김질 하려면 독서가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정보의 정확성과 가치를 알기 위해서도. 8년 전 나는 뇌염을 앓았다. 그 후 많은 것들을 잃고 잊었다. 그 때의 허망함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우울함과 난처함, 세상에 대한 원망 등을 기꺼이 떠나보낼 수 있게 만들어 준 곳이 이곳 도서관이다. 기록된 것들이 숨 쉬는 곳, 그때 내가 들른 양산의 한 기도원에서 목사님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적이 있다. 성경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파피루스를 지나 헝겊쪼가리에도 기록된 것이 가치를 지닌다고. 때문에 나는 책을 사랑한다. 내가 매화작은도서관에 와서 처음 읽은 책은 박경리의 장편소설‘토지’인데 21권을 독파하려다 7권에서 중도하차하고 쉬고 있는 중이다. 이 밖에도 아이들의 그림책과 동화를 읽고 소설집을 읽고 독서릴레이(일반부는 성석제 투명인간)의 선발주자가 되어 독후감도 써보고 정말 본의 아니게 시간을 쪼개서라도 책을 읽게 만들어 준다. 언젠간 ‘토지’도 다 읽고야 말 것이다. 도서관에 가면 나는 딸아이에게 그림책을 고르게 하고 나 역시 이런저런 책을 뒤적여본다. 물론 육아에 찌들려 시간도 체력도 받쳐주진 않지만 될 수 있는 한 많은 지식과 지혜를 욕심내는 것이 무엇이 부끄러울까. 하지만 더 이상 책도둑은 되지 말아야겠지. 머릿속에 이제는 나만의 서고를 만들어 놓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런데 얼마 전 좀 애매모호한 일이 생겨버렸다. 동생으로부터 e-book을 다운받아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요샌 출판업계에서 책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e-book 발간을 줄이고 있다는데, 나는 이 기계에 무슨 책을 담아 읽어야할까? 전자잉크에다 책장 하나는 들어갈 용량도 좋다지만 일단은 내게 작은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깜박한 것 같다. 일단은 종이를 즐겨볼 일이다. 내 딸아이가 한글을 읽을 때까지. 왠지 그때가 되면 이 전자책이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길 기대해본다. 독서는 운동이다. 독서는 교육이 아니다. 그냥 즐기는 것이다. 독서는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집 아흔이 넘으신 어르신에게 잘은 글자의 시를 읽어주며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젊을 때, 눈이 밝을 때 독서를 해야만 그것이 훗날 어두운 길을 갈 때 등불이 되어줄 것이고 내 삶의 지혜와 확신을 줄 것이라고. 오늘도 딸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하며 몸에 붙는 살이 제발 좀 머리로 옮겨가길 기도하면서 미약한 내 독서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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