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1973년 발표된 조병화의 시 의 1연이다.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맞는 국어시간에 이 시를 배웠다. 그해 삼일절 공휴일은 음력으로 2월 1일이었고, 어른들은 그날을 ‘일꾼 날’이라고 했다. 동네에서는 몇 집씩 나뉘어 아침부터 성찬을 차려놓고 동네 청년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옛날에는 ‘머슴 날[奴婢日]’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1월 27일 현재 한국은 무난히 16강에 진출한 반면, 중국은 세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일찌감치 탈락하고 말았다. 중국이 무기력하게 탈락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조선시대 우리 선비들이 중국 아이들의 습성을 기록한 글이 생각나서 옮겨보기로 했다.조선후기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인 홍대용(洪大容)은 영조 41년(1765)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중국 북경을 다녀오면서 여행기록문을 남겼다. 사은사 서장관으로 연행하는 숙부 홍억(洪檍)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동행한 것이다.
그동안 칼럼을 통해서 울진과 관련된 많은 역사적 기록과 전설들을 여러분께 소개해왔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을답게 수많은 인물과 전설들이 골골이 다채롭게 스며있어 새삼 놀랄 때가 많다. 그런가하면 전설이나 동화 같은 이야기가 단지 과거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경우도 있는데, 화가 정미애(아델라정)와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도 그 중에 하나다. 정미애 화가(이하 정작가)는 울진군 후포면 출신으로, 경기도 파주시 콩세유 미술관 대표이자 관장이며, 강남 도곡동에도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정작가는 울진 금강송과 산양을 그리는
조선시대 때 둔전(屯田)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둔전에 소속된 농민은 평시에 농사를 짓고, 비상시에 병사가 되기 위해 개인 병장기를 갖추고 기본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개인이 경작지를 확보하여 사둔전을 운영하는 사례가 증가하는데, 울진군 후포면 마룡산(406m) 일대에도 사둔전이 존재했다. 그 시작은 이러했다.조선왕조실록 선조 27년(1594년) 11월 17일,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울산 서생포 해변의 적로(賊路)에서부터 영해와 강원도 평해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평탄한 지대여서 관방을
얼마 전, 경기도 안양에 사는 친구 아파트에 차를 가지고 방문했다가 주차문제로 그곳 주민분과 시비가 있었다. 지하주차장을 몇 바퀴째 돌았으나 주차할 자리가 안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파트는 분양당시 가구당 주차장이 1,00으로 충분했으나 지금은 가구당 차량 대수가 1,20 이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한 참을 돌다가 겨우 빈자리를 찾았지만, 좌우측 차량들이 주차라인에 바퀴를 걸치고 있어 공간이 부족했다. 달리 빈자리도 없고 해서 좁지만 그 자리에 일단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고 내리기가 불편했으나, 내가
한국인의 삶이 길어야 ‘인생 육십’이던 시대 추석쯤에 나는 태어났고 올해 환갑을 맞았다. 문득 내가 태어나던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진다.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되고 울진군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되던 그해다. 그밖에 역사적으로 주목 받을 만한 기록을 몇 개 소개하자면, 우선 10월 15일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이 제5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특이한 것은 서울에서는 박정희 37만 표, 윤보선 80만 표로 득표율이 윤보선 후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초기 경제정책은 실패였기 때문이다
학교사태와 그해 여름1998년 여름 우리 부부는 특이한 공포영화 한편을 관람했다. 상당히 무서운 영화인데도 관객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고, 그 중에서 여고생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한 가지 여느 공포영화와 다른 점은 관객들이 무서워 지르는 비명보다 상영시간 내내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는 것이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복도에서 화장실에 간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출구를 나오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완전 소름! 나는 우리 학교인줄 알았어!” 그러자 다른 여학생이 맞장구를 쳤다. “그
울진 매화면 남수산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홍의장군 곽재우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전설에 따르면, 곽재우가 젊은 시절 울진 금매리 방어사골에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커다란 호랑이가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뒤쫓아 갔더니, 남수산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어느새 밤이 깊어져 먼 데 불빛을 보고 찾아가니, 장평 골짜기에 작은 초가집 하나가 나타났다. 처마 밑 섬돌에는 짚신 두 짝이 놓였는데, 하나는 크기가 자 반이 넘을 정도로 컸다. 인기척을 내고 주인을 불렀더니 기골
아프리카 초원지역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 중에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영양(羚羊)이 있다. 이들도 양떼처럼 수백,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초원을 찾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먹이를 따라 초원을 이동하는데, 어떤 때는 풀밭이 있음에도 계속 달리는 경우가 있다. 풀을 뜯으며 천천히 이동하던 무리 중에 스프링복 한 놈이 풀쩍풀쩍 뛰기 시작하면 옆에 녀석이 뛰고, 그 옆에 녀석도 덩달아서 뛰고 다른 무리들도 뛴다. 그러다 마침내 무리 전체가 내달린다. 멈출 수가 없게 된 무리들은 계속 앞으로 달리다가 결국 낭떠러지나 강물에 떨어져 한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있기 전에 PC통신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총각 때는 퇴근 후 통신으로 새벽을 맞은 적도 많았다. PC통신 안에는 요즘으로 치면 ‘다음 카페’나 ‘네이버 밴드’ 같은 동아리도 여러 개가 존재했는데, 그 때도 술을 좋아해서 ‘술모임’에 자주 어울렸다. 회원들끼리 단체 채팅방에 모여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각자 채팅창 앞에 술상을 차려놓고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일명 ‘술팅’도 있었다. 다음날에는 눈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어제 나눈 대화창을 열어본다. 그리고 후회를 한다. 시작은 평소 성격대로 양호하다. 대화
얼마 전, 한 시민단체에서 윤석열 정부 규탄대회를 열면서 서울 태평로에서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형을 세워놓고 장난감 활을 쏘아 맞히는 행사를 열었다. 대통령 얼굴사진이 붙은 인형에 활쏘기를 하는 퍼포먼스에 초등학생 어린이들까지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단언컨대 어린 아이들을 선동하여 일을 꾸미는 행위치고 의도가 순수한 경우는 없다.어린이들이 부르는 순수한 노래를 동요(童謠)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 ‘동요’라는 말이 순수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아니었다. 어떤 목적을 두고 요언(妖言)
1574년, 조선 선조임금에게 임금만 볼 수 있도록 밀봉된 긴(11,600字) 상소문이 전달되었는데 그 내용은 자못 살벌했다. “전하, 오늘날 조선의 상황은 실로 벼랑 끝에 선 것과 같으니, 앞으로 10년이 못 가서 반드시 나라에 난리[禍亂]가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하찮은 백성도 조상으로부터 집과 전답을 물려받으면 그것을 잘 지켜 자손에게 물려주어 조상들에게 욕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하물며 전하께서는 조종(祖宗)으로부터 수백 년의 종묘사직과 한 나라의 국토[封疆]를 물려받으셨는데, 화란이 닥쳐오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제 어떻게
이고진 저늙은이 짐벗어 나를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조차 지실까/ 예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이 시조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강원도관찰사에 부임해서 지은 가운데 한 수다. 아마도 시조에 등장하는 늙은이는 할머니일 것이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원래 머리에 임을 이지 못한다. 지금은 여자들도 머리에 물건을 이고 다니는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고 사극에서조차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요즘 사람들은 머리에 물건을 이고 다니던 기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보따리를 얹고 흉내만
최근 동해상에서의 한·미·일 대(對) 잠수함 합동훈련을 놓고 우리 사회에 또다시 반일 죽창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5년간 반일 죽창가로 톡톡히 재미를 본 사람들이 이번에도 앞장서서 선동에 나섰다. 열린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일본해군이 독도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한다며, 우리 한반도에 욱일기가 다시 걸릴 수도 있다고 겁박을 한다. 이에 장단 맞추어 MBC 방송은 일본 군함 관함식에 참석한 우리 해군이 욱일기를 향해 경례를 했다며 친일 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상대국 관함식 축하행사는 1998년과 2002년 김대중 정권에서도 있었던 관
조선 후기 정조 16년(1792) 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창덕궁 주실(主室)인 희정당(熙政堂)에서 술자리가 벌어졌다. 그날 성균관에서 임금의 특명으로 치러진 시험[應製]에 합격한 유생들을 불러놓고, 임금이 직접 술과 음식을 하사하여 함께 즐기는 자리였다. 임금이 먼저 유생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잖은가. 술 취했을 때 그 사람의 평소 소양이 보인다고. 오늘 그대들은 만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는 것을 각오하고 양껏 마시도록 하라, 제학 서영보(徐榮輔)와 이만수(李晩秀)는 이들이 술잔을 정확히 돌리는지 감독하
소중한 전통`가치 계속되어야... 1991년 10월 5일, “울진땅, 울진사람, 울진신문!”이라는 기치에 정론직필의 사명을 걸고 탄생한 울진신문이 어느새 31주년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울진신문에 애정을 보내주신 군민여러분과 애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돌이켜보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입니다. 컴퓨터 출판은커녕 인쇄용 필름이나 인화지 출력 시설조차 울진에 없던 시절,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으로 몇 날을 오르내리며 편집하고 발행했던 울진신문이 31년을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1991년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면서
논어 옹야(雍也)편에 이런 글이 있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 예전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내용이니 한문을 잘 모르는 분들도 무슨 뜻인지 대강은 알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안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로 풀이할 수 있다. 80년대 논어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은 저 문장을 설명하면서 지혜로운 사람[知者]과 어진 사람[仁者]을 각각 일본인과 한국인에 대입하여 풀이하셨다. 선문(禪文) 수
꽤 오래전 일이다. 경기도 파주시 문화원에서 저녁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좀 늦게 강의실 문을 노크하며 들어오시는 분이 모내기를 마치고 오느라 늦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말끔한 양복차림이라 내 딴에 겸사로 “댁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시느라 늦으셨군요.”했더니, “논에서 바로 오는 겁니다. 요새는 양복입고 농사짓습니다. 기계가 다 하는데요 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참으로 격세를 실감했다.내가 기억하는 모내기철, 옛날 아버지들의 노동은 실로 대단했다. 저녁이면 고된 논일과 술에 지쳐서 밥상을 물리자마자 곯아떨어지셨다. 그러다 새벽녘
지금 울진에 살고 있는 분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선뜻 동의하지 않거나 오히려 화를 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진을 방문한 외지인들은 상당히 공감할 것이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써서 한국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 중인 김훈은 울진 후포를 구경하고 이런 글을 썼다.“해안선을 바짝 끼고 달리는 거대한 산맥이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윽박질러, 물에 빠뜨려버릴 듯 바닷가까지 밀어붙였고, 거기까지 치달아 내려온 검은 산맥의 그 사나운 앞발들이 가파른 수직 경사를 이루며 물속으로 잠겨드는데, 삶의 배면(背面)을 태백산맥이 '
사람과 사람사이에 섬이 있다./ 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시 전문(全文)이다. 지극히 짧고 단순한 내용이지만 인간사회 관계망의 원초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다. 압축이 극에 달하면 폭발한다. 일촉즉발을 머금고 있는 이 시(詩)에 박덕규 시인은 슬쩍 성냥을 긋는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지금 대한민국은 극한의 대립 속에 놓여있다. 6.25 전쟁이후 이렇게 심하게 내부적 갈등을 겪었던 때가 언제 또 있었던가 싶다. 정확히 양편으로 갈라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