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 제25회 울산동요사랑회에서 주관한 2021대한민국창작국악동요제에 울진논매기소리가 울산시 학생교육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발표되었다. 노래는 선창 후창 형식의 국악 농업노동민요로서 관중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았다. 울진논매기소리는 전세중 시인이 노랫말을 쓰고, 김성덕 선생이 작곡, 노래는 정예진 이하윤, 윤예서, 박다솜이 부르고, 가창지도는 엘리사 최이다. 이 노래 발원지는 전 시인 출생지 울진 봉평2리이며, 1960년대 말까지 논매기 할 때 불리었다. 전 시인은 1970년대 4년간 울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직접 논
죽변 매정마을 애국 선열 4인죽변에는 매정(梅亭)이라는 마을이 있다. 조선초기에는 학문을 숭상한 마을로서 서당이 있었는데, 공자의 공을 따서 공군이라고도 불렀다. 매정에는 일제강점 때에 40여 호가 살았다. 당시 신안주씨 15호, 울진장씨 9호, 안동권씨 9호, 김씨 등 여타 성씨 7호가 있었다. 신안 주씨가 1870년경부터 매정마을에 집성촌을 이룬 것으로
북유럽 여행의 핵심은 자연경관인데 노르웨이가 으뜸이다. 그 중에서도 걸작품이 피오르다. 송네피오르를 지나면서 산 중턱에 걸린 구름 같은 안개에 내 눈이 멈추었고, 높은 빙하지대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계곡 속으로 빨러 들어가는 황홀함에 빠져들었다. 노르웨이 자연경관은 정말 환상적이었는데, 세상에 이만큼 뛰어난 곳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 자연경
자화상 전세중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입니까한 시대 겨누고 부르르 떠는 생애청운의 푸른 꿈이 꺼졌다 솟아오르다무엇이 될 듯 될듯하다가 주저주저 물러앉고무엇이 손에 잡힐 듯 그러나 결국은 빈손 빈손이다. 때로는 인생길 가까운 길 두고서천 길 낭떠러지 머언 길 돌고 돌아끝내는 허방 딛다 허탕 치다가허공을 바라보네.텅 빈 가슴 무너진 가슴 허전한 마음 매만진다.어
전세중의 사설시조“뷰티플 관동팔경”아름다운 금수강산 관동팔경 노래하네동해바다 맑은 호수 강릉의 경포대호수에도 달이 뜨고 내 맘에도 달이 뜨네돌 바위에 누각 세운 삼척의 죽서루오십천은 구불구불 넓은 바다 향하네관동의 제일누라 울진의 망양정왕피천이 흐르고 망망대해 눈앞이다아침 일출이 아름다운 평해의 월송정화랑도 달을 보며 푸른 꿈을 키웠다
나는 요즘 시를 쓰면서 음악적 리듬에 심취해 있다. 동요와 가곡의 시를 쓰는 일이다. 동요와 가곡의 형태로 불리어진다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규칙적인 반복의 리듬은 어떤 즐거움을 안겨준다. 리듬 속에서 운문이 생겨난다. 시가 작곡이 되어 음반으로 출판되고 유튜브에 올려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작품을 2019 kbs창작동요대회에 응모하
우리는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고 삶의 의미를 배우기도 한다. 꽃은 우리에게 무수한 의미를 던져준다. 세상에 어떤 꽃이 아름답지 않으랴마는, 그중에 나는 매운 계절에 피는 매화를 사랑한다. 매화는 왜 험난한 길을 택하는가. 뭇 꽃들은 겨울을 숨죽인 채 보내고 따뜻한 봄날에 만발하건만, 어찌하여 매화는 혹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피는 것인가. 그것은 남다른 의지가
시여 피어나라 自寬 전세중 시여 피어나라 시여 피어나라푸른 잎으로, 맑은 꽃으로 피어나라 하늘 안고 부끄럼 없이내 마음에 한잎 두잎시가 쌓이던 날 시가 쌓이던 날아픔을 이겨낸 상처 속에서푸르게 빛나는 이파리로 돋아나네새벽 향기 머금은 산수유 꽃처럼 노랗게 시여 피어나라 별빛에 얼굴 붉게 익히면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시를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일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일까/ 살아가는 길, 멀리 펼쳐져 있는 것 같지만/ 반짝이는 별처럼 그리 많은 시간 아니다산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날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 내가 살아있는, 살아가는 그 만큼만/ 시간은 내게 와서 꽃으로 피는가,/ 꽃으로 지는 것인가눈앞엔 푸른 하늘, 저 푸른 바다/ 풍성한 숲과 싱그러운 풀
아리랑 열두 고개 전세중아리랑 열두 고개 아리랑 열두 고개아리랑 아라리요 열두 고개 넘어가세장보러가세 장보러가세 흥부장에 장을 봐서소금 미역 어물 지고 춘양장으로 넘어가세바지게 등짐지고 꼬불꼬불 이백리 길아리랑 아라리요 열두 고개 넘어가세뾰족하다 쇠치재, 세 봉우리 세고개재두천 주막 숙식하고 소달구지 바릿재 지나고갯마루 새재성황당 산신령께 소원 비네 삼밭이
서울 오금역에서 동대문 종합시장 가려고 5호선 전철을 탔다. 대부분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어느 노선 할 것 없이 요즘 전철을 타면 앉아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모두 스마트 폰에 집중한다. 열 명 중에 일곱 여덟 명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들은 문자를 보내거나 오락에 열중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시내버스를
서울 사당역에서 어느 할머니가 “선능역으로 가려면 전철을 어디서 타요” 라며 묻는다. 나와 같은 방향이라 함께 2호선으로 이동했다. 전철이 좀 복잡하긴 했으나 할머니에게 자리를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스마트 폰에 정신을 빠트리고, 어떤 사람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할머니는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실룩거리며 말
세상을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힘은 순리다. 누구나 순간은 용감할 수도 있고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원래의 상태로 돌아 갈 수밖에 없다. 황당무계한 말을 일시적으로 믿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굴뚝의 연기와 같은 것이다. ‘축지법을 쓰는 사람이 있다’ 는 말을 우리는 가끔 들으며 산다. 축지법이란 말
블래드 호수는 슬로베니아의 눈동자다. 호수는 푸른 언덕에 조용히 앉아 가장 먼 곳에 대한 사랑을 품고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쾌청한 날씨였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라방켄 산맥의 석회암이 잔설같이 보이고, 길게 드러누운 산맥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먼 거리임에도 산맥이 가깝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공기가 깨끗한 탓이다. 슬로베니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도나우 강변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야경을 유람선으로 구경하기 위해서였다.건너편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다. 푸른 바탕에다 빨간색, 주황색을 몇 줄 길게 그었다. 푸른 하늘에 무지갯빛 덧칠은 황홀한 한 폭의 그림, 이런 연출은 그리 흔치않은 광경이었다. 머나먼 외국에서 이런 그림 같은 노을을
자연의 품속이다. 바위에 찰싹 붙은 파란 이끼는 솜털처럼 부드럽다. 긴 시간 자신을 발견해주길 기다리며 숨죽인 고요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끼 숲을 따라 흐르는 물빛이 투명하다. 투명한 물빛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았다는 증거다. 간혹 바람결에 풀잎이 흔들거렸다. 사진작가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카메라에 초점을 맞췄다. 좋은 자리가 보이면 삼각대를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혼자 서 있다. 오랜 경륜이 있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잎을 피우고 지는 나무의 삶을 감상하면서 인생의 경륜을 쌓는다고나 할까. 오늘 아침 까치가 이쪽가지에서 저쪽가지로 옮겨 다니며 분주하게 운다. 그 노래는 하루를 시작하는 행진곡이 된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사진전시회가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모두들 식당에 모였다. 저
녹음이 짙어가는 시기, 작년 이맘때쯤 일게다. 내가 대나무를 소재로 해서 쓴 글을 서울 송파문화원에서 박 여사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나의 글을 한참 보더니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이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철학적으로 썼네.” 누구나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이거나 간에 일정한 틀의 글을 쓸 수 있다. 글은
서울 송파사진동우회에서 회원 50여명이 서산 개심사에 출사를 갔다. 출사 관심사는 벚꽃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울창한 조선 솔밭 길을 걷는다. 왼쪽으로는 붉은 빛을 발하는 소나무 사이로 흙길이 가파르게 올라있고, 마주보는 곳으로는 돌계단이 잘 깔려져 있다. 계단은 800여 미터나 된다. 올라갈 때는 흙길을 걷고 내려갈 때는 계단을 걸어보는 것도 다른 정취를
묵호, 어디쯤 있는 해안가를 걸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는 상당히 높았다.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이 그어지고, 해안가로 들락거리는 파도는 달리기 선수였다. 달리는 파도는 넘어지지 않았다. 일어나서 쓰러지며 다시 일어나 달려가는 파도를 보면서 시간도 잊은 채 해가 질 때까지 걸었다. 어쩌면, 바다는 상승과 추락, 욕망과 좌절로 이어지는 일상의 우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