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후기인 철종 시대(1862)는 한 해 동안 100여 개에 이르는 군현에서 민란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민란의 시대였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특이한 거사(필자주)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영해와 울진(평해) 등 12개 지역에서 모여든 동학교도와 비교도들이 1871년 3월 10일, 밤에 『영해읍성관아』를 일시적으로 점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특이한 것은 앞서 10여 년 전에 일어난 여러 민란과는 다르게 『동학』이라는 민중 세력이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영해동학거사』는 1871년 3월 10일(양 4월 29일) 교조 수
우리나라 정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대체로 대중들에게는 쉼터 구실을 하였고, 시인 묵객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를 읊으며 글과 그림으로 작품을 남기는 예술적 장소였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도 그랬다. 월송정은 바닷가 솔숲에 싸여 둘레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 수려한 풍광 덕분에 예로부터 대중의 풍류와 함께 시인 묵객의 예술적 기능을 했다. 이는 월송정에 게시된 시문 현판이 말해주고, 옛 문헌에도 시인과 화가의 작품이 전해온다. 하지만 우리는 월송정 안내판에도 간략히 소개해놓았듯이 그 공간 일부가 조선조에는 사정(射亭:활
필자는 얼마 전 울진 소극장에서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을 보았다. 용의 출현을 거북선의 출현으로 이미 짐작했지만, 과연 일본군선을 격파하는 거북선의 맹활약 장면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흘러넘쳤다. 일본 기록에도 거북선의 출현을 귀신을 본 듯하였다니, 전의를 상실케 할 만큼 공포와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순신 장군의 치밀한 학익진(鶴翼陣)전술도 인상적이다. 이 전술은 학이 나래를 펼치듯 진영을 구축하여 적군을 포위하듯 가운데에 몰아넣어 섬멸하는 작전이다. 전술, 거북선의 맹활약, 조선 수군의 용맹으로 일본군의 기세를 꺾고,
이산해 는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두 번이나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 시 선조의 의주 파천 책임론에서 정철 등 서인탄핵을 받아 평해 에 유배를 왔다. 그는 3년(1592∼1595)간 유배 생활에서 써 두었던 시와 산문을 묶어 아계유고(기성록)를 남겼다. 순리전(循吏傳)도 그 하나다. 순리전은 인물평전으로 당시 평해 군수를 칭송하는 글이다. 이산해 는 순리전 에서 유능한 관리(循吏)와 무능한 관리(酷吏)의 행태를 거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무능한 관리의 행태다.첫째 비록 학문이 뛰어난 선비라도 관리로서 재능이 모자라 번다한
새벽하늘을 보라! 요즘 우주 천문 쇼가 벌어지고 있다. 18년 만에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이 일렬로 늘어선다. 더구나 다가오는 26일 새벽 4시 30분경에는 이 여섯 행성이 태양계 순서대로 나란히 정렬하는 일렬 쇼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칼군무같은 우주 쇼다. 동이 터기 전의 약 1시간 동안 관측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수성부터 토성까지 5개 행성은 맨눈으로 볼 수 있고, 망원경 등을 이용하면 천왕성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5월 말, 수성이 새벽하늘에 나타나는 것부터 우주쇼는 시작되었다. 7월 초 수성이 새벽하늘
올해는 울진이 낳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요, 세계적 거장, 추상화의 북극성 같은 존재로 평가받는 유영국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20주년(2002년 11월 작고)이 되었다. 그를 가리켜 산과 색채의 화가라고도 한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라고 말했듯이 그가 평생의 주제로 고집한 것은 울진의 산과 바다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울진읍 말루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가슴 트이는 공석 앞바다였다. 남쪽으로는 왕피천과 남대천이 굽이쳐 동해로 흘러들었다. 더구나 서북쪽으로는 금강송이 울창한 통고산과 응봉산이 낙동정
울진에서 초대형 산불이 완전히 진화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9박 10일간 확산이 된 『울진산불』은 각종 건물, 이재민 등을 제외하고 산림피해 면적 만해도 서울의 40%, 여의도 70배, 축구장 2만 8천여 개의 규모다. 지난 30일 산림청은 최근 현장 조사를 거쳐 울진·삼척산불, 강릉·동해산불 피해 면적을 모두 2만 523.25㏊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울진 산림피해 면적은 1만4140.01㏊이고, 삼척 피해 면적은 2161.97㏊로 나타났다. 최근으로 보면 참으로 최장 시간 산불이요, 최대면적의 피해으로 별로 달갑
성류굴 앞을 흐르는 왕피천은 겨울 가뭄에도 여전하게 물줄기가 유장하다. 소나무와 측백이 어우러진 성류산의 회백색 벼랑이 햇볕에 반짝인다. 겨울 풍광인 골계미가 아름답다. 저 성류굴 벼랑과 둘레의 풍광은 일찍이 조선 시인 묵객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문자향(文字香)이자 예술적 소재였으리라. 조선의 천재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1745~1810?)가 그린 『금강사군첩』에 성류굴도, 망양정, 월송정이 등장한다. 김홍도는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그려오라”는 정조의 명을 받고 대관령 넘어 동해안을 유람하면서, 강원도 남쪽 월송정을 그리고는 다시
김진문의 인문학 탐구 주말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지난해 12월 11일(토) KBS에서 첫 방영 되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16년 『장영실』 이후, 5년 만에 부활한 『인물 대하사극』이다. 필자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지라 흥미롭게 첫 방송을 시청했다.우리가 알다시피 이방원(李芳遠, 1367∼1422)은 아버지 이성계를 보필해 고려를 멸망시킨 인물이다. 그의 야심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이방원은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에서 승리해 왕위에 올랐고, 권력 강화에 걸림이 되는 형제, 처가를 비
김진문의 인문학 탐구 울진사람이란 누구인가? 울진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은 『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을 말한다. 필자의 생각에 역사적으로 울진사람의 정체성은 『의리정신』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의리정신을 전통적으로 『충·효·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의리정신을 발현한 구체적 표상물로 충·효·열 비각을 들 수 있다. 울진에는 그 개수가 70여 개로 전국 수위를 다툰다. 여기에는 여러 설화가 전해온다. 우리가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은 『의병장 주호장군과 열녀 장씨 설화』이다.
유서 깊은 죽변 해안 풍광죽변에도 해금강이 있다? 바다의 금강산 하면 강원도(북한) 고성군 일대 앞바다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 절경을 말한다. 북한 해금강 같은 절경이 죽변 해안에도 있다. 바로 최근 개장한 죽변해안스카이레일이 운행되는 해안 일대가 죽변 해금강이 펼쳐지는 곳이다. 어디 그뿐이랴. 이미 16세기 울진에 은둔했던 시인 묵객 『임유후』가 쓴 3편의 기행문인 龍穴泛月記,白沙汀記,歌哩巖記에 죽변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전하고 있다. 용혈범월기는 현 죽변등대 부근(용추곶)에 양쪽 바위가 호랑이 형상으로 파도 물결이 빙빙
아는 후배 농장 들머리에서 무덤을 하나 보게 되었다. 묘비명, 제단, 문인석이 있고, 망주석은 없었다. 어느 시대 사람일까? 호기심에 묘비명을 살펴보니, 앞면에 『통정대부 전공지묘(通政大夫田公之墓)』 라고 쓰여 있다. 통정대부는 조선시대 정 3품 이상의 당상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상관이란 요즘으로 치면 중앙정부 고위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철저한 신분제 봉건사회였다. 양반이냐 상놈이냐는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영원한 굴레와 같은 것이다. 비석을 보면 신분제가 죽은 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신도
김진문(시인, 논설위원)최근에 나는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삶은 그리움이어라』는 시집이다. 시집을 받는 순간 마음이 짠했다. 왜냐면 희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는 교사가 쓴 시집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와는 동향인이고, 지난날에는 산골학교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가르치던 교사였다. 그는 현재 루게릭병 환자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하루 내내 누워서 절규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드디어 유리 벽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삶의 벼랑 끝에
지난 4월 11일, 울진 기미만세공원에서 『매화항일독립정신선양회(회장 남중수)』 발족식이 열렸다. 필자는 울진향토사 연구자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선양회 발족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다. 이 선양회 발족에 『만시지탄』의 마음이 들지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앞으로 활동에 기대가 되는 바이다.올해로 일제강점기 『매화항일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지 백년하고도 두 해, 그동안 매화 선열들의 숭고한 항일독립 정신을 기리는 단체가 없었다. 따라서 유족과 지역주민 등이 만든 자생단체인 『매화항일독립정신선양회』는 매화 항일독립운동
아마 밭농사에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풀매기가 그 하나일 것이다. 이른바 풀과의 전쟁 (?) 이다. 뽑아 놓고 돌아서면 며칠 안가 『지심』이 올라온다. 지심이란 표준어 『김』 또는 『잡초』의 울진 사투리다. 『지심 맨다』 함은 논밭에 『어린 들풀을 뽑아 없애는 것』 을 말한다.밭 잡초 가운데 목숨이 가장 질긴 것은 아무래도 바랭이와 쇠
지난 6월 16일, 북한이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북한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지구에 군부대를 다시 배치하겠다고 밝히고,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 복구와 서해군사훈련 재개를 예고했다. 9.19 군사합의까지 파기하겠다는 것이다.앞으로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2000년 6.15 첫 남북정상회담의 결실이자 남북평화협력의 상징이
거리가 텅텅 비고, 가게는 문을 닫고, 일부 공장은 멈췄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의 불황과 대량 실업을 예고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격리조치와 비대면 접촉 강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사회적 거리두기, 『제자리에서 꼼짝 마라』는 ‘동작그만’ 행동학을 유발시키면서, 바이러스가 인류문명사를 크게 바꾸고
14세기 중세 유럽, 페스트가 창궐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 감염병을 신의 형벌이라며 기도와 금식에 의존하였다. 오염된 공기가 병을 옮긴다고 믿고, 강력한 방향제를 몸에 지니고 다닌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둘 모두 효과가 별무였다. 환자의 살갗에 피는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30-50%에 달하는 7,50
3월이 되면, 아이들은 새 동무, 새 담임 선생님을 만날 생각으로 설렙니다. 처음 학교에 가는 『새내기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보내는 『새내기 학부모』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어느새 커서 벌써 학교에 들어가나』 하는 생각에 기쁘고 설레는 그 마음을 어디에 견주겠습니까?먼저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초등 첫걸음
그 날도 나는 멋모르고 아버지를 따라 마을 회관에 갔다.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회관에는 공포에 질린 표정의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어떤 동무는 눈물을 찔끔찔끔 짜기까지 했다.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의 두 팔을 꽉 잡고 있는 동안, 그 옆에서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불에 무슨 바늘을 달구고 있었다. 주사침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달아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