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고즈넉한 대궐이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내가 운현궁 뜨락을 산책하고 있을 때, 초등학생들이 넓은 마당에 엎드려 뭔가를 쓰고 있었다.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효도’란 주제를 가지고 글짓기를 하고 있었다. 학부모도 함께하여 운동회 날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
경계는 없다. 시선은 어디까지든 뻗어나간다. 크고 환한 창문처럼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존재에 대해 상상하고 렌즈를 통해서 그리워하며 설레임으로 헤매는 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은 뜨거워진다. 새로운 시선은 새로운 사진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진은 잘 나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남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찍어야 사진은 재밌다. 자동 놔두고 수동으로 사진 찍는 이
나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독서가 부족하면 책을 빌려오기도 하는데,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송파글마루 도서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자주 드나들어서 아는 일이지만, 예전 같으면 꽉 차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언제나 학생들로 붐벼 대기표를 뽑아 기다려야만 했는데, 이렇게 한산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메리스가
도시는 변화를 거듭하며 다시 태어난다. 변화하는 도시는 저마다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라져가는 달동네 마을 사진을 찍어두려고 서울 마천재개발 지구를 찾았을 때는 비어있는 집이 많았다. 번듯하게 지어진 집은 드물고 움막 같은 집들, 재개발 정비기간인 이주 기한을 넘긴 상태였다. 세입자는 거의 다 떠나고 30% 정도의 집 주인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대나무를 바라본다. 곧은 절개처럼 언제나 푸르다. 사철 변함없이 청초한 자태는 우리가 바라는 삶의 본질과 닮았다. 대나무의 순수와 지조는 우리가 지향할 세계 아닐까. 대나무는 바르면서도 부드러운 탄력성이 있다. 곧고 바르게 자라면서 제 몸속에 한 번도 채워보지 못한 채 마디마디 비워놓는다. 고독한 소리로 그 속을 채우고 있어서 올곧은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고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찰 때가 있다. 나는 서울 문정동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방 한 칸을 서재로 만들었다. 서재에는 2,500여 권의 책이 있는데, 책은 계속 쌓여 중요도에 따라 버리지만, 방 한쪽에 쌓여 있는 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고서를 거실에 내 놓고 보니 130여 권이었다. 담
고궁에 가면 오색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본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한복나들이가 유행이라더니 치마와 저고리를 갖춰 입고 족두리까지 썼다. 갓을 쓴 남성도 여럿 보였다. 궁궐 곳곳에서 고운 한복 차림의 젊은이들을 만나면 예의를 갖춘 것 같아 아름답다. 한복을 보면 선의 흐름과 조화에서 미적 감각이 느껴진다. 동전, 깃은 직선과 사선의 초생 달 같은 아름다움
서울 이화동에는 벽화마을이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언덕배기 달동네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낡은 건물을 손질하여 차를 마실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있고, 벽이나 길바닥에 그림을 그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현대와 옛날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골목길도 멋스럽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함께 걷는 물고기와 꽃을 만날 수 있고, 화려하지 않은
책 읽기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삶의 지혜를 얻는 셈이다. 우리는 책읽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내적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창덕궁을 거닐다가 책 읽는 금발의 두 모녀를 보았다. 우리나라를 찾은 독일 관광객이었는데 여행 중 빠듯한 일정에도 나무토막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진지해 보였다. 긴 머리카락이 흘려내려 시야를 가렸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
평균 수명이 늘어나 100세 시대를 맞이하였다. 요즘 60대는 청년이요 70대는 장년이라 한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나이를 먹어 부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직장 선배 한 분이 있다. 그는 올해 80세인데, 적은 돈이지만 약간의 돈벌이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며 산다. 그의
서울 올림픽공원은 내가 가끔 찾는 곳이다. 더러는 공원 내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기도 한다. 언제였던가. 한성백제박물관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하다가 주렁주렁 달린 자두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올림픽공원에 가면 과일 뿐 만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사진을 배우면서부터 자주 공원을 찾는다. 사진에 담을 대상물이 많기도 하지만, 공원에
삶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해안 구봉도에 갔다. 내가 해안가를 거닐 때 갈매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나에게 새우깡이 없다는 것을 안 갈매기는 갯벌에 앉아 주위를 응시할 뿐이었다. 한 가족이 새우깡 봉지를 들고 다가왔다. 갈매기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먹이를 준다는 것을 갈매기는 알고 있는 것일까. 처음 몇 마리가 달려들더니 나중에는 인근
옛날, 인제는 오지 중의 오지의 땅이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고 하던 땅.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았던 곳 인제가 변했다. 자작나무 숲을 보려는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승용차로 서울에서 두 시간 만에 닿았다. 큰길가 안내소에서 숲까지 걸어서 40분 거리, 거의 다 왔을 때 안개가 짙게 내렸다. 하
입춘을 지나 맑은 바람이 불면 대지는 긴 잠에서 깨어난다. 언 땅이 녹으면 풀은 겨우내 움츠렸던 머리를 내민다. 나무 등걸에는 뿌리에서 올라온 수액으로 연초록빛이 감돌았다. 나무들은 따스한 태양빛에 봄을 부풀린다. 봄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찾는 봄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봄을 맞이하면서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마음속에 숲
내가 근무하는 보라매안전체험관 주위에는 고층건물들과 아파트 사이로 커다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할 때 늘 벤치에 앉아있는 한 남자를 만난다.창가에 서서 물 한 컵을 마시며 확트인 공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가 체험관 주위를 청소한다. 처음에는 공원을 산책하고 지역사회의 환경을 위하여 청소를 하고 쉬나보다
우리가 ‘큰 일을 할 때 방심은 금물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정신을 집중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계획을 세우면 몇 번이고 생각하고 잘못된 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1997년 개봉된 영화『타이타닉』은 세계 최고의 흥행작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 무렵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던
“우리가 4,000킬로미터를 달렸네요.” 동유럽 8개국을 10일간 여행하고 난 마지막 날 가이드가 버스 미터기를 보면서 한 말이다. 1일 400킬로미터 거리를 달렸으니, 하루 평균 6~7시간은 차를 탔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여행이 끝날 무렵 모두 파김치가 되었다. 아내는 여행 떠나기 하루 전 날 대상포진에 걸렸다. 등 뒤로 붉은 반점
나에게는 전영중이라는 고향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와 다르게 장난기가 많았다. 한밤중에 산양 가죽 털을 뒤집어쓰고 “나는 산양이다” 포효하며, 내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너무 놀라 혼비백산 한 적도 있었다.그는 상급 학교에 진학을 못한 나에게 도회지에 나가서 함께 공부를 하자는 제안을 했던 속 깊은 친구였다. 그의 제안을 수락하지는 않았
마음을 주고받는 설날이 다가온다. 명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선물이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집의 세시풍속을 돌아본다. 해마다 설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어른들께 담배 한 갑씩을 선물하였다. 좀 더 잘한다고 하면 소주 한 병이나 담배 한 보루 정도였다. 예전에는 담배 한 두 갑으로도 인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과일을 상자째 선물해도 체면치레로 부족
나이 육십에 수영을 배웠으니 좀 늦은 편이다. 어릴 적 뛰어놀던 마을 앞에는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어 여름이면 바다에서 살았다. 하지만 수영실력은 고작해야 물에 겨우 뜨는 정도였다. 바쁜 사회생활을 하며 물놀이를 잊고 산 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생활의 리듬을 위하여 가끔씩 탁구를 치며 여가시간을 즐기곤 했다. 탁구를 쳤다고는 하나 실력은 변변치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