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아침 뉴스포털 메인화면에는 2가지 장면이 떴다. 한쪽은 여행객으로 붐비는 공항, 또 한쪽은 가족들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이다. 명절 때마다 보게 되는 풍경이라 우리에게 익숙한지 이미 오래다. 내용은 보나마나 뻔해서 자세히 보지 않고 닫기를 클릭 하려는데, 추천수가 압도적인 댓글이 눈에 띄어 읽어보니 가히 충격이다. “조상 덕분에 잘 먹고 잘 사는 집들은 명절연휴에 해외여행 가고, 조상에게서 아무것도 받은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지내고 명절 끝나면 부부싸움 한다.”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3
동짓달 스무아흐레 날은 할아버지 제사가 있다. 또 닷새가 지나면 고조부(高祖父) 제사가 있었다. 사계절 가운데 겨울은, 단지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넘어야만 [越冬; 월동]’ 되는 시절이 있었다. 삶의 릴레이에서 겨울은 높고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병약한 노인들은 대체로 겨울을 넘지 못하고 운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옛날에는 겨울에 제사가 몰려있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몰락한 집안이어도 한 해 겨울동안 우리는 일곱 번의 제사를 지냈다.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경기미 생산단지는 경기도 여주
2022년 대통령 선거를 100일 앞두고 있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판세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엇비슷하거나 우파 쪽이 약간 우세한 상태다. 그런데 유독 40대에서는 우파가 맥을 못 추고 있다. 보수 후보는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전 세대에 걸쳐 힘겹게 겨우 얻은 지지율을 40대에서 전부 반납해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로 거부당하고 있다. 그 세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거다 할 정도로 딱 떨어지는 이론은 아직 본 적이
최근 성남시 대장동 사태로 주역(周易)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화천대유 천화동인 뇌천대장 등 평소에는 좀체 듣기 힘든 낯선 단어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사람들은 그 용어들이 동양고전 삼경(三經) 가운데 하나인 주역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몹시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주역을 짧은 칼럼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상식에 입각해서 그 용어들의 함의를 간단히 소개해 본다.주역을 짧게 정의하자면 동아시아 사상의 원형(archetype)이라 할 수 있
고등학교 때 국사를 배우면서 임오군란(壬午軍亂)에 이르면 화가 치밀어 올라 모두가 분개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군인들에게 13개월이나 봉급미를 지급하지 않았고, 마침내 겨우 한달치의 급료를 주면서 되(斗)의 크기를 줄이고, 게다가 겨가 반이고 모래가 반이었으니... 조선 말기 처참한 풍경은 어린 나이에도 충격이었다. 이밖에도 조선시대 군인들의 대우는 열악했다. 군인은 점심을 먹지 않았으며, 변방에서 수자리를 사는 병사들은 직접 농사를 지어 군량을 장만하고, 옷이며 소모품은 개인이 장만했다.요즘 해마다 봄철이면 버드
스마트 폰에 일간지 모바일 앱[application]을 깔면 매일아침 그날의 주요 뉴스가 ‘팟캐스트’로 전달된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탈레반에 무기력하게 항복을 하던 날, 팟캐스트 서비스는 ‘당나라 군대·여성인권 실화?’라는 제목으로 문자가 떴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당나라 군대’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흔히 오합지졸의 무기력한 군사를 ‘당나라 군대’ 라 한다. 출처도 모호하고 의미도 확실치 않은데다가 알다시피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국경을 중앙아시아까지 넓힌 강대국인데 오합지졸이라니
이 글을 읽기에 앞서 먼저 유튜브(YouTube)를 켜고 산울림 노래 를 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요즘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는 첫 장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첫 페이지를 펼치면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시작했다. 지극히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자못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
먹구름이 사방을 감싸더니 한바탕 여름 소나기를 퍼붓는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까닭에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잠시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안쪽에는 나란히 배열된 노트북에 공시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에 열중이다. 문득 ‘공부’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빗발이 굵어졌다 다시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다.그러고 보면 ‘빗발’이란 말이 참 재미있다. ‘빗발’에서 ‘비[雨]’는 확실히 알겠는데 ‘발’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빗줄기가 마
어느 한국인이 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에 갔다가 겪은 이야기라고 한다. 혼자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로 올라가는데, 다음 층 문이 열리면서 유명한 액션배우 에디 머피 (Eddie Murphy)와 경호원들이 우르르 탑승했다. 맨 안쪽에 들어간 에디가 문 앞에 바짝 붙어 있는 한국인에게 말했다. “파이브”. 애디와 일행들의 험상궂은 인상에 잔뜩 겁을 먹고 있던 그 사람은 무슨 뜻인지 몰라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벽만 보고 서있었다. 에디는 동양인이 ‘파이브(five)’를 몰라서 그러는 줄 알고 손바닥으로 엘리베이터 벽을
옛날에 어떤 왕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과연 백성들에게 선(善)한 정치를 베풀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감(懷疑感)을 느끼고 있었다. 왕의 초대를 받고 찾아간 현인(賢人)은 그가 충분히 선한 정치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왕이 우연히 경험했던 일화(逸話)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왕은 궐 안을 거닐다가 제사에 희생될 소가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왕은 문득 소가 애처로워 보였다. 불쌍히 여긴 그는 죄 없는 소가 벌벌 떨면서 사지로 가는 것을 차마 못 보겠다며, 소를 다시 외양간으로 돌려보내게 한다. 그러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의 시(詩) 이다. 짧은 시가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이맘때 관악산 양지기슭을 자주 찾는다. 소나무 등걸에 기대어 새소리와 함께 봄바람을 쐬노라면, 박목월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윤사월은 보통 양력 5월 중순에서 6월 초에 든다. 봄날이 지날 즈음 녹음이 짙어질 때여서 세상이 온통 청록으로 살아 움직인다. 생동 넘치는 세상에 꾀꼬리 소리까지 더해
(임명룡 칼럼)원래 이야기는 이랬다. 어느 중학교 미술시험에 조각상 사진이 실려 있고, ‘이 작품의 조각가 이름을 적으시오’라는 문제가 나왔다. 수업시간에 착실히 공부한 학생이 답지에 ‘로댕’이라고 적었다. 그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 커닝을 하면서, ‘로’자를 잘못 읽는 바람에 ‘오댕’이라 적었다. 그 오댕을 커닝한 다음 학생은 베낀 것이 표가 나지 않게 잔머리를 굴려 ‘덴뿌라’라고 적었고, 그 다음 학생은 오댕이나 덴뿌라는 일본말이라는 생각에 우리말로 고쳐 ‘어묵’이라고 썼다. 어묵을 베낀 다음 학생은 그 조각가가
(임명룡 칼럼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교체하는 중에 이왕이면 창고도 정리할 겸 구석에 박혀있던 낡은 수납장까지 버리게 되었다. 서랍을 정리하는데 맨 아래 칸에서 빛바랜 제도기 상자가 나왔다. ‘STANDARD’라는 글자가 희미해진 플라스틱 뚜껑을 열어보니, 스테인리스로 된 제도용구들이 스펀지 홈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수십 년 세월에 살짝 만지기만 해도 바스러지는 스펀지와 달리 금속들은 멀쩡했다. 그러나 막상 컴퍼스를 꺼내보니 기억 속에 날렵하고 예리했던 그 옛날 이미지는 사라지고 요즘 아이들 조립장난감 보다 허술해 보인다. 컴퍼스와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2020년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다.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시타비가 32.4%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고 한다. 아시타비에 이어 후안무치(厚顔無恥)가 21.8%로 2위에 올랐다. 아시타비는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을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다. 후안무치는 ‘낯짝이 두껍고 뻔뻔해서 부끄러움을 모른다’ 는 뜻으로, 내로남불과 일맥상통하나 비판의 강도는 좀 더 세다. 누군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좌파와 우파를 자석의 N극과 S극에 비유하면, I자 모양의 막대자석이 아
톨스토이의 위대한 작품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대부분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들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 역대 소설 첫 문장 가운데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톨스토이의 이 간결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흔들림이 없다. 21세기에 사는 지금 우리들 가정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행복한 가정은 마치 견본이 정해진 것처럼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을 떠올리면 사연도 많고 탈도 많다. 개인의 가정 뿐 아니라 지구촌 각 나라 사정도 마찬가지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엇비슷하고 어려운 국가들은 갖가지
결혼을 한 지 27년이 지났건만 우리 부부는 아직도 서로 이름을 부른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만났는데, 내가 평사원으로 회사 안에서 ‘미스터 임’ 또는 ‘임명룡씨’로 불리던 때, 썸을 타던 아내가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나는 여태 “임명룡씨”로 불리고 있다.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고 짧게 부르다보니 실제로는 “임명씨”로 불린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내 이름이 ‘임명씨’인 줄 알고 있었다. 나는 ‘미쓰리’였던 아내를 차마 그대로 부를 수가 없어서 친정에서 불리던 세례 이름으로 대신하고 있다. 아내 세례명이 ‘사
미리 알리지 않고 울진 고향을 찾아가면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듣는 첫 인사말이, “곽줴 우왜 왔노?”다. 방언(方言),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현대 표준어에서 거의 사라진 성조(聲調)와 장단음(長短音) 그리고 이중모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외지인이 발음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한글로 정확히 적을 수도 없다. 그렇다보니 사투리의
한문이나 한국학을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책이 있는데, 2005년에 작고하신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선생의 저서 『강화학 최후의 광경』도 그 중에 하나이다. 한국학의 대가(大家)였지만 책으로 남기기를 꺼려하여 문집이 귀하기도 하지만, 소량으로 발행되어 절판이 된 지가 오래여서 책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행히 내 책꽂이에도 한 권이 꽂혀있어서 아
사회가 힘들면 언어가 천박해진다고 했던가.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습관에 ‘개-’가 붙지 않은 형용사가 없을 정도다. ‘개 힘들어’ ‘개 싫어’ ‘개 짜증나’ ‘개 빡쳐’ 그런데 이건 알고 써야 한다. ‘개 빡치다’의 표준말은 &ls
어떤 노래는 부르다보면 시작과 달리 중간부터 엉뚱한 노래와 겹치는 경우가 있다. ‘어버이 은혜’를 부르다가 “아, 고마워라 스승의 은혜”로 빠지는 경우가 그렇다. 노래만 그런 게 아니라 시를 외다보면 천태만상으로 귀결될 때가 많다. 이맘때 자주 암송하게 되는 이호우의 시조 ‘살구꽃 핀 마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