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이 한때 내건 광고 문구는 “이제부터 영어로 꿈을 꾼다” 였다. 꿈속에서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하게 된다는 뜻이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면 꿈에서도 영어를 할까싶기도 했다. 후자의 의미가 강했던지 그 카피는 금세 사라졌다. 논어(論語)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장 중
며칠 전 극장에서 영화 ‘천문(天問)’을 관람했다. 한석규와 최민식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명성에 기대를 하고 선택을 했으나, 요즘 사극영화의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수준이었다. 영화 앞뒤로 역사적 기록을 자막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치 영화 내용이 개연성이 높은 것처럼 꾸몄으나 각본상 트릭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먼 영화적 상상에 지
연말연시를 맞아 지고 뜨는 해를 쫓아 여기저기 사람들이 몰린다. 동해안에서 나고 자라 일출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뜨는 해 보다는 처연하게 사라지는 낙조에 감동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몰 여행이 잦은 편인 데, 우리나라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고르라면 나는 첫손에 강화도 서남부 일대를 꼽는다.근래 화도면 장화리가 일몰조망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출판사에 신입사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내가 교정한 원고를 사진식자 제작소로 넘기기 전에 편집장께 점검을 받고 나면, 원고지에는 온통 빨간 펜 자국이 난무했다. 편집장은 한차례 혼찌검을 내고 나서 담배를 물고 나간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는 동안 전부 고쳐 놔!” 그럴 때면 예전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젖은 담배 한 대 꺼리
동해안에 첫눈이 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가운 옛것이 내린다는 소리다. 완행버스 차창에 낀 성에를 손가락으로 문질러가며 동해바다를 보고 싶다. 내처 달려서 눈 내리는 호젓한 후포바다 모래사장을 걷고 싶다. 파도에 나비같이 내려앉는 첫 눈을 보고 싶다. 그 바다에서 눈발 사이로 올려다보면 뽀얗게 흐려진 줄기찬 태백산맥은 수묵(水墨)이었다. 그 수묵화에 꼬챙이
인간은 누구나 상대를 부러워하는 본능이 있다. 자양강장제 ‘박카스’ 광고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첫 장면은 포장마차에서 동료와 술잔을 나누면서, 내일 당장 사표를 쓰겠노라고 큰 소리 치는 직장인이 나온다. 다음은 이력서와 수험 책이 널브러진 자취방에 쪼그리고 누워 취업이나 돼야 사표를 쓸 거 아니냐며, 그 직장인을 부러워하는 취업준비생
“늙은이는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을 요구하는 어떤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오정희의 단편소설 에 나오는 말이다. 생명체의 뇌는 외부의 자극신호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반복행위를 통해 익숙해진 길을 우선 택한다. 반복행동으로 쉽게 처리된 과정을 뇌신경 회로에 저장해 두고, 필요할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 산골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내 고향은 원래부터 오지(奧地)였다지만 개발에서 멀어진 세월만큼 더 깊은 첩첩산골이 되어 더 이상 마을로서의 기능마저 상실하고 있었다.거대한 숲은 맑디맑던 마룡산 자락의 계곡물을 물방울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빨아들여 우거질 대로 우거졌고, 마을을 꼼짝 못하게 가둔 채 사람들을 향해 거칠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한다고 아내가 투정이다. 언제부턴가 새벽 6시면 눈이 떠져서 혼자 부스럭거리다가 안방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서 TV를 켜고 이리저리 두어 번 채널을 돌리면 어김없이 걸려든다. “나는 자연인이다” 비닐인지 천막인지 온통 시커먼 거죽을 덮어쓴 움막이 등장하고, 공사판에서 주워
내가 속해있는 어떤 모임에서 가족들과 함께 경주에 답사를 하기로 했다. ‘고리타분한 역사쟁이’로 불리는 내가 인솔자겸 해설자로 지목되었고, ‘여행’이란 단어가 그렇듯 말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들떠서 이런저런 제안들이 난무했다. 경주의 온갖 문화재와 명승고적이 오르내리고 마침내 한 사람의 입에서 성(性) 박물관도 가
매일같이 하던 관악산 둘레길 산책을 열흘째 못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부터 눈 한 번 제대로 내린 적이 없는 중부지역에 봄 가뭄이 계속되는 바람에, 산책로 흙길이 메말라 먼지투성이로 변했기 때문이다. 도시 둘레길인 만큼 평소에도 사람의 발길이 잦아 흙먼지가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숫제 땅을 밟기가 무서울 정도로 풀썩거린다. 당장 비가 오더라도 웬만한 양으로는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갑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이 말은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중에 한 분인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이 우리 민족을 두고 한 말이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웃을 일이 별로 없던 그 시대에 도산 선생은 화기(和氣) 있고 온기(溫氣) 있는 민족, 서로 사랑하는
왕양명(王陽明)의 전습록(傳習錄)에는 암중화(巖中花: 바위틈의 꽃)라는 일화가 있다. 양명이 남진에서 노닐 때, 한 친구가 바위틈에 피어 있는 꽃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양명, 자네는 천하에 마음 밖에는 사물이 없다(心外無物)고 하는데, 저 꽃나무의 꽃은 자네나 내 마음과 아무런 관계없이 깊은 산속에서 저절로 피었다가 저절로 떨어지잖은가? 나의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동요 ‘구슬비’는 참 재미있다. 나는 아이들과 산길을 걸을 때 이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질문을 하나 던진다.“거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답은 조롱조롱 거미줄에 매달린 옥구슬, 즉 &
나는 요즘 서울에서 울진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서울에도 울진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모임이 많고 내가 좋아하는 술자리도 그만큼 많다. 10개 읍·면민회의 수시로 열리는 각종 행사에다 각각의 소속 산악회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모임을 합치면 주말마다 한두 군데는 틀림없이 자리가 생긴다.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웬만하면 불러주
며칠 전 고향사람들끼리 정담을 나누는 SNS에 매화1리 국토유지관리 사무소 앞에 핀 홍매화 사진이 올려 진 것을 보았다. 예년에 비해 덜 추웠다지만 아직 1월 하순이라 한겨울인데 바알갛게 피어나는 매화를 보니 반가움에 마음은 벌써 봄을 맞고 있다. 나는 한때 매화가 너무 좋아 전국의 이름난 매화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몇몇을 적어보자면, 순천 낙안읍성과 가
“와, 죽이네!” 지금은 길거리에서 여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는 성희롱으로 고소를 당할 일이지만, 예전에는 미인이 남성들로부터 흔히 듣던 농담식 칭찬(?) 이었다. 나 역시 20대 시절에는 휘파람까지 곁들여서 그 짓을 꽤나 했었다. 그런데 이 ‘죽인다’ 라는 표현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왜 하필 &ls
산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답게 서울에도 울진관련 등산모임이 대략 11개 쯤 있다. 10개 읍면민회 소속 모임들이 있고, 재경울진군 산악회가 별도로 있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마다 산행을 하는데 관광버스 1대로 전국 명산들을 누빈다. 그러다보니 네댓 시간 이상 버스를 타게 되는 경우도 많다. 2018년까지 지난 2년간 산악회를 맡아 알찬 산행을 이끌어온 백상
지난 11월 6일, 아는 사람의 초대로 남산국악당에서 한국의 전통 춤을 관람했다. 2018년 전통부분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선정된 무용가 임수정 교수의 “무애(無碍)”라는 춤판 공연이었다. 가을밤 남산에서 우리 고유의 춤과 음악 그리고 소리에 빠져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90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 승무(僧舞)를 비롯한 한량무(閑良舞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머리를 깎으러 동네 미용실 이발의자에 앉아 있자니 옆에 붙은 피아노 학원에서 서투른 솜씨로 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머리를 손질하던 단골미용사가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