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은 최근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국토부는 지난 3월 울진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후보로 선정했다.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와 고온을 이용하면 기후변화 원인인 탄소배출이 없는 청정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이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울진은 우리나라 전기에너지와 수소경제의 큰 중심지가 된다. 그리고 당연히 울진에 지금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조건이 더욱 많아진다. 근본적으로 제한된 자원도 있겠지만, 멀리보고 먼저 준비해야 될 것도 있다.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울진은 교통오지 언제 벗어날까?” 요즘 울진사람들이 자주 하는 자조섞인 인사말이다. 울진구간 7번국도 4차선이 완성되는데 21년이 걸렸고, 36번국도 4차선 울진구간이 김대중 정부 당시 2003년 착공~ 2008년 완성으로 5년 공사계획이었으나, 당시 지역 정치인들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연되어 무려, 12년이나 늦어진 2020년 4월 개통되었다. 그것도 4차선 전제 (?) 2차선으로... 상황이 이런데도 지역의 원로 누구 하나, 울진의 정치지도자들을 원망하거나 질타하는 사람이 없다. 감투나 자리나 탐할 뿐. 변명이라는 것이 B/C
웃음은 가정에서 행복을 꽃피우고, 직장에서 호의를 베풀어주며, 친구 사이에는 우정의 증표가 되어준다. 웃음은 지친 사람에게는 안식이요, 낙담한 사람에게는 격려이며, 슬픈 사람에게는 희망의 빛이다. 세상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자연의 묘약이기도 하다. 오랜 옛날 TV프로에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것이 있어 우리를 즐겁게 한 일이 있다. 사람은 ‘일소일소, 일노일노’라고 한다. 한 번 웃으면 또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성내면 또 한 번 늙는다는 말이다. 웃어야 복이 온다는 말처럼, 웃으면 만사가 형통해질 텐데…그리고 “웃는 얼굴에 침
오전 진료는 항상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때로 아주 난처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점심 식사가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성격 급한 할머니들이 진료를 재촉한다. 음식물을 우물거리며 진료실로 나오면 버스 시간이 급하다며 처방전 달라고 기세등등하게 요구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그분들의 사정을 이해하면서 진료를 마무리하곤 한다. 도시에서 우물거리며 진료를 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일 게다.식후에는 바로 진료실을 빠져나간다. 야릇한 쾌감이 느껴진다. 승용차로 5분 정도 거리에 평해 습지 공원이 있다. 평소 즐겨 찾는 산책로다. 가슴이
아프리카 초원지역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 중에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영양(羚羊)이 있다. 이들도 양떼처럼 수백,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초원을 찾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먹이를 따라 초원을 이동하는데, 어떤 때는 풀밭이 있음에도 계속 달리는 경우가 있다. 풀을 뜯으며 천천히 이동하던 무리 중에 스프링복 한 놈이 풀쩍풀쩍 뛰기 시작하면 옆에 녀석이 뛰고, 그 옆에 녀석도 덩달아서 뛰고 다른 무리들도 뛴다. 그러다 마침내 무리 전체가 내달린다. 멈출 수가 없게 된 무리들은 계속 앞으로 달리다가 결국 낭떠러지나 강물에 떨어져 한
최근 12년 전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에서 발생한 방사성 동위원소인 삼중수소(三重水素, tritium)가 포함된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뉴스로 시끄럽다. 일본은 발생한 오염수 중 세슘-137, 스트론튬-90 등 방사성 동위원소들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서 62 종류의 방사성 물질까지 기준 이하로 제거하고,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는 그 농도를 세계보건기구(WHO)의 식수 기준의 1/7까지 물로 희석해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삼중수소가 방사성 동위원소라는 혐오보다는 삼중수소가 머지않아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이 된다
지난 4월달은 울진 사람들 자존감을 높인 달이었다. 260만명의 경북도민축제를 울진에서 열어, 13개 군부 경기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종합우승을 차지해서가 아니라, 시골 군단위에서 도민체전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치러낸 군은 도내에는 없었고, 전국적으로도 없을 것이다.아마 울진군이 자신있게 또 한 번 도체를 유치하고 무난히 치러낸 배경에는, 두 번이나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개최했던 경험과 역량이 바탕이 되었지 않을까...그런데 나는 수십년간 도민체전을 지켜보면서 왜, 공평한 기준에 의한 종합점수 평가방식을 채택하지 않을까?
'다움(답다)’ 이란 완성된, 이루어진, 갖추어진, 모범이 될 만한 등의 의미로서 세상과 인간이 장차 나아갈 바를 함의하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아름’이라는 개개(箇箇)가 ‘다움’으로 완성되어 하나로 어우러짐’에 근원을 둔다. -사사로울 사(私)를 과거에는 아름 사(私)로 새겼으며, 개인의 견해를 ‘알음알이’라하고, 현재도 ‘알음알음으로 안다’는 말 등이 사용된다- 이러한 연유로 이미 사람이지만 또다시 ‘사람다움’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즉, ‘사람다움’ 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온전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있기 전에 PC통신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총각 때는 퇴근 후 통신으로 새벽을 맞은 적도 많았다. PC통신 안에는 요즘으로 치면 ‘다음 카페’나 ‘네이버 밴드’ 같은 동아리도 여러 개가 존재했는데, 그 때도 술을 좋아해서 ‘술모임’에 자주 어울렸다. 회원들끼리 단체 채팅방에 모여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각자 채팅창 앞에 술상을 차려놓고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일명 ‘술팅’도 있었다. 다음날에는 눈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어제 나눈 대화창을 열어본다. 그리고 후회를 한다. 시작은 평소 성격대로 양호하다. 대화
누구 말마따나 삶은 저글링(Juggling)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개의 공을 공중에 대고 끊임없이 굴리는 것이 삶인데, 그 공들 안에는 행복, 기쁨, 고통, 시련이 들어 있다. 그러니 이번에 내 손에 잡힐 공이 행복인지, 고통인지 당최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공을 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래심줄보다 더 질기고 불덩어리 같은 고통의 공을 손에 쥐었다고 도로 물릴 수도 없다. 죽기 살기로 공을 돌려야 한다. 공을 멈추는 날은 그 삶이 끝장나는 것이므로... 고통과 행복이 반반이어도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판국에 어째 고통
우리민족이, 우리나라가,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에 비해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자학적 식민사관의 불행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필자는 오래전부터 애국가 가사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해 오고 있다. 네 번을 불러야하는 후렴구 “무궁화 삼천리”라는 부분이다. 정식 국화(國花)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인식이 굳어진 무궁화는 강효백의 저서 「일본 무궁화 가라, 한국 진달래 오라」 와 같은 논쟁이 있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최근 들어 인류문명의 원형으로 확인되는 고조선으로부터, 대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 만년 민족의 역사를 삼천리
‘수소(水素, hydrogen)’와 관련된 뉴스가 최근 많이 나타난다. ‘수소’가 들어간 수소에너지, 수소산업, 수소경제, 수소 자동차, 그린수소, 청정수소와 같은 용어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수소 국가산업단지”가 울진에 들어온다는 소식도 있다. 국제적으로는 2011년 3월 지진과 이어진 쓰나미가 유발한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발생한 방사성 동위원소인, ‘삼중수소(三重水素, tritium)’가 포함되어 있는 오염수 방류를 염려하는 뉴스도 있다. 뉴스의 핵심 단어인 수소와 삼중수소는 모두 ‘수소’에 속한다. 수소산업이 철강산업이나
코로나로 한 동안 잠잠했던 ‘나눔여행’ 이 다시 활성화 되어야 할 시점이다. 나는 의료봉사라는 말보다는 ‘나눔여행’ 이란 어휘를 즐겨 사용한다. 봉사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거니와, 왠지 모르게 그동안 쌓아왔던 일에 대한 가치관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는 일방적인 흐름만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공감과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어가야만 건전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 할 수가 있다. 물론 단어 한 개의 선택으로 그런 가치관이 허물어지거나, 인간관계가
진도 앞바다를 생각하며... 임 하 연 깊은 바다 밑 캄캄한 어둠에 붙들려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 몸속에 남아있던 숨결은 자개 빛 영롱한 기포로 떠오르고검게 물드는 육신들 일구어낼 듯유장한 몸짓으로 술렁이는마귀할멈 같은 저 물 밑에서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 너희 비밀 아지트인 거긴 걱정도 쫓김도 없이 평안한 거니 어둠 속 황홀한 새 세상에서 모든 걸 잊을 만큼 행복한 거니 오늘도 갯가를 시린 발로 서성이는 넋 나간 발자국 소리들은 안 들리니 거긴
내게도 살아간다는 것을 달리 말하자면,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어버릴 수 있는 것도 서로 비례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이 얻느냐에 생의 성공이 보장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얼마나 많이 상실하는가에 생의 낙오가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나의 얻음(得)이 남의 잃음(失)과 통하며, 남의 기억함이 나의 잊어버림과도 같아 질 수 있으니, 각자 자신에게 소용 닿는 만치의 크기로 가슴에 지녀 키우고, 아끼며, 기억하게 된다. ‘살아가는 자세’는 곧 그 사람의 삶에 대한 모습이고,
살다보면 ‘삶이 나를 멕이는구나’ 할 때가 있다. 그래도 뚜벅뚜벅 길을 가다 보면 ‘이런 빛나는 순간도 오는구나’ 할 때도 있다. 후자의 순간이 더 많다면 죽여주겠지만, ‘삶은 이리 돌아가는구나’ 를 알고는 이런 ‘삶의 불평등한 순환’에 모든 것을 걸지 않게 되었다. 조용필 노래 말마따나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롭다’는 것을 덤으로 터득했다. 그러니 어떤 삶의 파도와 맞닥뜨렸을 때 무너지는 것은 가까스로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개똥철학을 일찌감치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이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
지난 호에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세계를 두레박질 치는 윤회육도는 어떤 장소에 태어난다거나 짐승과 같은 특정한 형태가 있는 게 아니라, 당장 처해있는 심리상태라 했다. 여섯 가지 상태는 외부의 조건에 상응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면 최고 권력을 누릴 때는 천상의 행복이지만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가면, 곧바로 지옥의 고통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종교를 필두로 인간사회의 모든 행위는 알게 모르게 윤회육도를 벗어나려는 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재벌이 되어도 돈은 지켜야하고, 권력을 잡는 동시에
아침 공기가 아직은 봄을 시샘한다. 기대와 설렘으로 길따라 맛따라 27회째가 코로나로 연기되었다가, 활기차게 다시 시작한다. 군청앞 마당에서의 7시 출발해 모두 착석하고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청와대와 경복궁 탐방을 위해 힘차게 출발한다. 모든 행사를 주관하신 사회자의 안내로, 좌석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나눈다. 자신의 특기나 장기도 소개한다.특히 시낭송을 취미로 하신 분들의 낭랑한 목소리로 때론 의미깊게 때론 웃음가득 피어나게 한다. 인간의 기억력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경외심과 존경심이 든다. 청와대 부근 헌법재판소 인근 식당
깊은 골짜기에는 아직도 잔설이 희끗희끗하게 보인다. 새벽 공기는 여전히 쌀쌀해서 몸이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비탈길을 종종걸음으로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다. 잠시 숨을 돌리며 들어선 곳이 거대한 식당이다. 식판에 밥을 덜어주는 거칠 듯 고운손이 한결 시선을 끈다. 된장국과 볶은 김치, 무채와 취나물에 고추장을 얹어주며 가벼운 목례와 야릇한 웃음이 스친다. 아침 식사 후 다시 오르는 계단이 끝이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지만 스님은 여전히 사뿐사뿐 걷는 걸음이 참으로 가볍게 보인다. 발끝으로 걷는 모습이 우아하다. 결
대게 잡이와 그물과 통발 울진과 영덕, 포항 등 동해안에는 대게(snow crab)와 홍게가 많이 난다. 대게는 수심 100-400 미터에서 발견되지만 주로 70-280 미터에서, 수온은 영하 1도에서 영상 5도 정도의 바닥이 모래나 진흙인 해저에서 모여 산다. 붉은 대게(red snow crab)로 불리는 홍게는 수심이 800-2,000 미터인 곳에 산다. 대게는 연안 및 근해 어업으로 주로 생분해성 재료를 사용한 자망(刺網, gillnet)으로 잡고, 홍게는 통발(pot)로 잡는다 (그림 참조). 대게를 찌거나 삶으면 붉은 색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