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지 회복의 두 번째 이야기 울릉도 편을 짚고 넘어가자. 울릉도의 원주민은 분명 우리 민족이다. 그렇다면 우리 울진사람이란 얘기가 된다.

울릉군으로 독립하기 이전까지는 울진군의 영지였다. 그래서 정기항로도 죽변항에서 출발했다. 계속 되어야 하는데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해방이 된 이후의 일이다. 울진~울릉간 정기항로 허가를 받은 선주가 포항으로 이사를 가면서 죽변항로는 죽고, 포항~울릉도 항로가 생겼다. 우리 당대의 일이지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혈연으로 보나 지정학적으로도 우리 울진과 가장 가까웠던 울릉도가 어느 듯 남의 땅으로 느껴지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해결방책 또한 명약관화하다. 정기항로 개설 허가를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것은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을 되찾는 일이요. 우리의 시야와 포부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침체된 지역발전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치시대이니 군의회가 군민의 뜻을 모으고 단체장이 앞장서면 도지사도 국회의원도 도와 줄 것이다. 만약에 민자유치가 어렵다면, 00을 보태서라도 관광울진의 허황된 구호가 아니라 실체를 잡아야 한다.

내가 집권여당에서 정책전문위원으로 일할 때의 일이 생각난다.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우리 울진 사람들은 울릉도를 포항으로 넘겨 주고도 침묵하고 있을 때, 강원도 사람들은 울릉도가 옛 강원도 땅이니 찾겠다고 나섰다.

당시 정일권 의원을 필두로 국회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강원도 묵호항에서 울릉도를 잇는 정기항로를 개설해 달라. 당정협의 안건으로 분류되어 검토의견을 보내달라는 교통부의 연락을 받고 지역출신 국회의원을 찾아가 협의한 일이 있다.

선수를 놓친 우리로서는 반대 할 명분도 없었고 뒷북 칠 수도 없었다. 대통령께서 내린 결론은 묵호항은 휴전선이 가까워 안보상의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 남쪽으로 더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원도 최남단 임원에서 울릉도 가는 정기항로가 생겨났다.

울진이 강원도에 남아 있었더라면 죽변항에서 울릉도를 왕래하는 뱃길이 다시 열였을 것이다. 임원항은 항구조건도 배후의 관광여건도 여의치 않아 결국 운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영덕군에서는 더 욕심을 내어 울릉도까지 하늘 길을 열자고 시도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헬기가 시험운행중에 추락하는 불운을 맞고 재 시도를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울진이 나설 때가 온 것 같다.
해룡부대 사람들이 울진으로 와서 헤엄쳐서 가는 울릉도를 울진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어불성설이요.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조류의 흐름으로 보다 직선거리의 면에서 울진 죽변을 당할 곳은 없다.

지금은 포항으로 넘겨주고 묵호에 뒤져있지만 (“최근 묵호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를 다녀요.” 하는 미국교포가 있었음), 울릉도 옛길을 복원한다면 반드시 경쟁력이 있다. 종합휴양지로서의 울진의 조건을 살려야 한다.

금강소나무와 지하동굴 그리고 온천수가 우리에게 있지 않는가?.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울진 금강소나무는 일본 국보 제1호를 만들었고, 경북궁도 만들었다. 지금은 숭례문을 화재로부터 재생시키는 거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10년 더 살아 보자고 아등바등하는 우리들이고 보면 금강송 정기야 말로 금강산 구경보다도 실속이 있다.

세계 제일의 울진금강소나무들이 세계의 관광객을 울진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여기에 주인의 손님맞이 노력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이다.

기차를 타고 승부역에서 내려 백두개간을 넘어서면 금강송 정기를 받으며, 산촌체험을 하고난 다음 최고수질의 온천물로 피로를 푼다. 그리고 크루즈를 타고 울릉도로 가서 자연산을 만끽하고 독도를 돌아 만세삼창은 외친다면, 한 차원 높은 관광여행이자 수학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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