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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임(林)씨 편 - 충절의 정신이 빛나는 가문
2011년 01월 18일 (화) 11:56:16 [조회수 : 15380]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1338]

   
             ▶근남 수산리에 있는 울진임씨의 시조묘

조선개국 초기 고려복벽운동에 나섰다가 거의 멸문지족(滅門之族)을 당하듯이 하여 약 300년이 지난 이조 숙종 때에야 신원회복이 가능했던, 어쩌면 울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도록 조정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종족, 울진임씨(蔚珍林氏).

고려조 중기 한 때는 울진을 녹읍(祿邑)으로 이 땅의 주인이었던 울진임씨는 관향을 울진으로 하고 현재 울진에 살고 있는 씨족 수가 많아 토성순례의 세번째 가문이 되었건만, 조선개국과 동시 조선중기까지 수 백년 동안의 조정의 거세로 인한 가문의 쇠락으로 조상들의 기록조차도 온전히 남기지 못한 것 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저미게 한다.

우리나라 임씨의 도시조(都始祖)는 학사공(學士公) 임팔급(林八及), 그는 중국 당나라 말엽(서기 830~900년대) 정치적인 화를 피해 동방으로 피신한 8학사 중의 한사람이다.
중국에서는 임씨(林氏)의 성씨 유래에 대해 중국 은나라 말엽 은의 왕자 비간(比干)의 아들 견(堅)이 망국의 한을 품고 장림산에 은거했기에 그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도시조 학사공은 당나라 문종 때 너무 충직하므로 군소 간신배들의 참소를 받아 동료 7분과 함께 동해를 건너와 신라 땅 지금의 평택군 용포리에 정착하여 여생을 보냄으로서 평택 임씨(平澤林氏)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자손이 번성하여 후대에 선산 진천 예천 부안 울진 조양 은진 순창 옥야 등 24개 관향으로 분파되었으므로 우리나라 임씨는 모두 임팔급 한 할아버지의 자손이라고 하나, 나주임씨(羅州林氏) 만은 선대를 연결할만한 기록이 없으므로 동일시조 여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고려대장군 임비(林庇)를 시조로 하고 있어 명확하지는 않다.

아무튼 임씨는 우리나라 성씨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씨 중의 하나이며, 현재 남한에만 약 24만 가구에 약 76만명의 종족이 살고 있어 10대 성에 속하는데, 나주임씨가 약 40%, 평택임씨가 약 3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소수이다.

울진임씨는 전국에 약 5천세대에 약 1만5천명이 살고 있어 임씨 전체의 약 2%에 불과하다. 현재 울진에 살고 있는 임씨는 약 700세대에 1천800명으로 현재의 울진 성씨 104개 중 인구수에서 8번째의 울진 대성(大姓)이다.

이들 중 울진임씨가 약 320세대에 780명 정도로 약 43%를 차지하고, 평택임씨가 180세대에 약 530명으로 약 30%를, 예천임씨가 약 100세대에 260명 정도로 약 15%를 차지하고, 나주임씨도 약 30가구에 1백여명이 살고 있으며, 그 외 안동 등을 관향으로 하는 소수의 임씨들이 살고 있다.

울진임씨의 관조(貫祖)이자 입향조(入鄕祖)는 충경공(忠敬公) 임우(林祐)이다.
그는 고려 고종 원년(서기 1214년)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용호좌윤(龍號左尹)이 되어, 여진족의 침공에 나아가 큰 공을 세워 은청광록대부 중부상서(銀靑光祿大夫 中部尙書)에 올랐고, 그 후 몽고족이 침범하였을 때 임금을 잘 수행한 공으로 울릉군(蔚陵君 : 현재의 울진군과 삼척군 원덕면, 봉화군 소천면, 영양군 수비면 일원과 울릉도 포함)에 봉(封)해졌다.
충경공의 묘소는 근남면 수산리에 있으며, 인접하여 제소와 재실이 딸려 있다.

울진임씨 임문정(62세·전 울진경찰서과장)대종회장은 충경공의 묘터에 오르면, 앞산은 멀리 망양정에 다달으고 좌측을 바라보면 수산들 가운데 일봉 비로봉이 우뚝하고, 우측에는 성류산 자락이 감아돌아 들과 산과 바다의 기운이 잘 조화된 참으로 보기드문 명당터로서 언젠가는 울진임씨 가문에 발복할 날이 있을 거라며 후대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도…

역사를 통해서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면서도 수백년 동안 고관대작에 오를 수 없었던 울진임씨, 그것은 충의와 절의의 가문 그 이름을 지켜내기 위한 댓가였다.
조선왕조가 개국하면서 원주에 유폐시켰던 고려의 말왕 공양왕을 삼척군 궁촌에 유배시키려하자, 고려 유신이었던 충경공의 후예 임제(林悌)는 장천영, 최복하, 전생, 공양왕의 왕자 차남 왕석(王奭)과 함께 삼척 울진 등지에서 수천명의 동지를 규합 의거를 일으키려다 사전 발각되었다.

이에 장천영 일가는 부령 청진 등으로 도피하였으나, 임제 가문과 최복하 집안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였고, 소수가 지금의 근남면 구곡동(굴구지) 등 깊은 산골이나 해안가 등지로 피난해 울진임씨 가문의 명맥을 겨우 이어나갔다.
그로 인해 울진군은 조정으로부터 반란의 지역이라 하여 울진군세를 약화시켰는데, 현재의 울진군 경계 이외지역인 원덕, 수비, 소천 , 울릉도를 인근 타 군에 예속시키고 울진군을 울진현으로 강등시켰다.

그 후 약 300년이 지난 조선 숙종 때에야 울진임씨의 고려복벽운동은 불사이군의 충절정신이라며 반역에서 풀어주어 신원회복되었지만, 가문은 이미 크게 쇠퇴하여 임진란 때는 한 때 충경공의 묘소마져도 실묘할 뻔했을 만큼 울진임씨의 가문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울진임씨 중에 우리가 기억해야 될 향토사적 인물은 연호(連湖) 운수공(芸秀公)이다.

그는 조선 명종 때 사람으로 문장과 학문이 뛰어났으나 아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울진읍 연지리 연호가에 정자(연호정: 蓮湖亭)를 짓고 고명한 선비들과 담론하고 후예들을 육성하였으니, 인조대왕은 그를 사후(死後)에 가선대부 호조참판(嘉善大夫 戶曹參判)에 추서했다.

울진임씨는 안동시 녹전면 원당, 임하면 금소동, 풍산면 죽전, 영덕군 달산면 달산, 강구면 직천, 충북 진천 문백면, 강원도 양양, 간성, 거진, 양구 등에 집성촌이 있고, 울진에는 원남 오산, 덕신과 기성면 망양 1, 2리가 집성촌이다.
매년 음력 시월 상정일 울진임씨는 약 800년 전 근남 수산리에서 영면하신 관조 충경공 우(祐) 할아버지의 묘소에서 혈육의 정을 나누고 있다.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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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역사공부 2018-11-14 00:06:33

    조선왕조실록에 임제 등이 주관이 되어 고려 복벽 운동이 있었다는 얘기는 전혀 없습니다. 임제, 라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나머지 인물도 마찬가지. 되려 최복하는 태종에게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제대로 된 정보에 근거해서 기사를 쓰셔야 할 듯 합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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