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평해손씨 비석 [아래]평해손씨 정신적 요람인 숭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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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이남에서 평해 황씨와 번갈아 가며 울진 남부지역을 다스렸던 국효(國孝)의 가문 평해손씨(平海孫氏).

우리고장의 토성 중에 외래 최고(最古) 성씨가 중국에서 건너왔던 평해 황씨라면, 평해손씨는 고래(古來) 신라 성립 6부촌에 출현하는 영남지방 최고의 재래 토종성씨 중의 하나로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나타나 고대로부터 유래하는 다른 어떤 성씨보다도 상대적으로 뿌리의 연원이 정확함을 자랑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 우리나라 북부지방에는 고구려가 있었고, 남부지방에는 삼한이 있었는데, 동쪽 경주를 중심으로 부족연맹국 형태의 진한국(辰韓國)은 6부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6부촌장들은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 서라벌국을 건국하였다가 뒤에 신라로 개칭하였는데, 3대 유리왕이 개국공신 6부촌장들에게 각각 성씨를 하사하였다.

이때 6부촌장들에게 하사한 6개의 성은 이(李), 최(崔), 손(孫), 정(鄭), 배(裵), 설(薛)씨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 남산 아래에다 8천500여평의 부지에 입덕묘(立德廟)를 세워 6부촌장들의 충절의 정신과 은덕을 기리고, 매년 이들 6촌 후예들을 불러 경주시에서 주관하는 신라대제(新羅大祭)를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모든 손씨는 일직(안동)손씨를 제외하고는 신라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6부촌장 중의 한사람인 무산(茂山) 대수촌장(大樹村長)이었던 구례마(俱禮馬)의 손자 손직이 <서기24년~32년> 유리왕으로부터 손씨 성을 하사받음으로서 구례마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손씨의 대다수를 이루는 밀양손씨, 경주손씨와 평해, 청주손씨들 모두가 구례마의 후손인 손순(孫順, 호는 文孝)을 시조로 하고 있다.

손순은 경주 모량리 사람으로 일찍이 아버지 손학산(孫鶴山)을 여의고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늙으신 어머니 운오 (運烏)의 굶주림을 안타까워하다가, 아내에게 자식은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두번 모실 수 없거늘, 아이가 어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 아이를 산에 묻어버리자고 합의하여 아이를 데리고 북쪽마을 취향산에 올랐다.

그런데 아이를 산에 묻으려고 땅을 파다가 돌로 된 종이 나와 두르렸더니 이 종소리가 대궐에 까지 울려 흥덕왕이 알게 되었다고...
이에 흥덕왕은 순의 효행이 천지를 감복케 하였다며, 국효(國孝)로 삼아 해마다 쌀 50석을 내리고 서기835년(흥덕왕 10년)에 월성군(月城君)에 봉(封)해 순의 효를 널리 기렷다.

시조 손순의 묘는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에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3일 제사를 올리고 있고, 구전에 의하면 손묘(孫墓), 또는 손릉묘(孫陵墓)라 불려져 왔다고 한다.
평해손씨의 관조(貫祖)이자 입향조는 도시조 순의 손자인 익담(翼淡)공으로 진성여왕 9년(서기 895년)에 평해군에 봉군되었으며, 평해손씨의 1세조이다.

관조 손익담 공의 아들 손경상은 고려국에서 공을 세워 월성군(月城君) 봉해지고, 손자 손술조는 병부상서의 벼슬에 올라 다시 평해군(平海君)에 봉군되면서 가문의 명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후 많은 인물들이 나와 가문은 부흥을 이루어 12개 계파로 갈라졌다.

평해손씨 대종회(회장 손금종·70세·후포)는 현재의 후포면 후포리 산 20번지에 7번국도와 인접하여 부지 약 5천평 위에 도시조와 입향관조 그리고 고려국에서 중서문하성 평장사(中書門下省 平章事)로서 기성후(箕城侯)에 올랐던 평장사공 인량(仁亮)의 세 분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崇德祠)와 영모제(永慕齊), 그리고 평장사공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비각을 관리하고 있다.

평장사 인량공은 고려 원종 때 왕권을 능멸하려던 무신 임연(林衍)의 난을 평정하여 원종을 복위시키고 강화도에서 개경환도에 큰 공을 세움으로서 기성후(箕城侯)에 봉작(封爵) 되었던 것이다.
이조 세조 때 손순효(孫舜孝)는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전한 (典翰)겸 집의(執義)에 올라 17개 항목의 정책을 상소하고 형조참판에 이르렀고, 특히 성종이 윤비(尹妃)를 폐위할 때 그 부당함을 극간했다.

그 후 좌찬성이 되어 1487년(성종 18년) 식료찬요(食療撰要)를 편찬했으며, 판중추부사에 이르러 궤장을 하사 받았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그림에도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기성과 평해 경계 가까이 위치한 기성면 구산리 7번국도 옆에 있는 운암서원(雲岩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손씨 총인구 수는 약 13만 가구에 약 42만명으로 발표되고 있다.
그 중에서 밀양손씨가 약 28만명으로 전체의 약 67%를 차지하고, 경주손씨가 약 8만명으로 약19%를 차지하며, 시조가 다르다는 안동손씨가 약 2만5천명으로 세 번째의 수를 차지하며,다음으로 평해손씨가 약 4천가구에 인구가 약 1만 3천명 순이다.

울진에는 손씨 성의 사람 수가 약 400세대 1천여명인데, 울진의 성씨 인구수 별 순위에서 15번째를 차지한다.
그 중 평해손씨가 약 270세대에 약 660명으로 약 2/3를 차지하고, 밀양손씨가 85세대에 약 240여명이 다음으로 경주손씨가 37세대에 1백여명, 그 외 안동손씨가 5세대에 1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해손씨는 평해 학곡리, 후포 금음리, 기성 다천리, 온정 외선미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며, 매년 음력 3월20일과 10월 상정일에 충주 등 전국 각처에서 4~5백명의 후손들이 찾아와 조상의 얼과 정신을 되새기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
손금종 대종회장은 1984년 갑자보(甲子譜)를 발간한 지 약 20년만에 보증판 족보 발간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평해손씨 후손들의 적극적인 연락과 참여를 기다린다고...

[연락처] 회장 손금종 787-4455, 5566   총무 손승복 787-7447, 011-516-7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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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2월 25일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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