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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반정 재실

대대로 무엇을 전할 것인가 !
공(功)과 세(勢)만 쫓다보면 흉한 일 생기고, 학문하고 수신하면 좋은 일 생긴다는 계자시(誡子詩)의 한구절...

고려 충혜왕 때 어린 두 왕자의 스승이었으며, 계자시와 경학문(警學文)을 지었고, 당대의 문장가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송죽을 벗 삼았다는 경은(耕隱) 전조생(田祖生), 그는 고려가 망하자 아예 산골로 들어가 절개를 지킴으로서 이후 이러한 선대정신을 기려왔다는 담양전씨(潭陽田氏)의 후예들.... 시조는 담양인 전 득시(田得時)이다.

그는 고려 의종 때 (서기 1155년) 문과시에 장원급제하여 좌복야(左僕射)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내고, 시호는 충원공(忠元公)이며 담양군(潭陽君)에 봉군(封君)되었다.
이후 7세에 이르러 녹생(祿生), 귀생(貴生), 조생(祖生) 3형제가 나왔는데, 이들이 여말 선비로서의 정절을 지킨 유명한 삼은(三隱)선생으로 각각 그 호가 야은( 隱), 뇌은( 隱), 경은(耕隱)인데, 담양전씨의 3대파를 형성했고, 오늘날 셋째인 문원공 경은의 자손이 번성하여 문중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야은은 간신 이인임 등의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충의의 인물이었고, 내은은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으로 절의의 인물이었으며, 문원공 경은은 학문과 덕망이 높아 홍성, 울진, 의령의 후손들이 지금도 경모하고 있다.

담양전씨의 연원은 중국 진(陳)나라 공자 전완(田完)으로, 그의 후손이었던 제(濟)나라 말 왕 전횡(田橫)이 중국 전하를 통일한 한(漢)의 장수 유방과의 전투에서 참패하자, 부하들을 이끌고 서해의 고도(현 어청도로 추정, 기원 전 672년)로 망명했다는 설이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중국의 사기史記(사마천 저, 기원 전 97년) 46권 제16장 전경중 완세가(田敬仲 完世家) 편에 기술 돼 있고, 또 밀양박씨들 족보에 시조 박혁거세의 세 아들 중 둘째 적(赤)의 부인이 전씨(田氏)라는 설이 있어, 전씨(田氏) 성의 유래는 상고시대로 올라가고 있다.

오늘날 남한에 살고 있는 전씨(田氏) 수는 5만9천 가구에 약 19만명으로 우리나라 전인구의 약 0.4%를 차지하는데, 전체 350개 성씨 중 45번째 인구순위에 들어가는데, 영광전씨 남양전씨 태산전씨 만은 조상이 다르다고 하지만, 고대의 연원으로 볼 때, 40여개로 관향을 달리하는 전씨(田氏) 모두는 같은 조상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조 개국으로 고려왕실의 근친은 모두 주살되고, 원친은 유배되며, 살아 남은 자 모두는 종모성(從母姓)하라는 이태조의 명을 따르기도 했으나, 일부는 옥(玉), 전(全), 전(田)씨로 바꾸었는데, 오늘날 왕씨 성들이 희귀한 것으로 보아 많은 수의 왕씨들이 전씨(田씨) 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담양전씨는 상대적으로 충남, 경남, 대전 등지에 많이 살고 있으며, 집성촌은 충남의 논산군 은진면 내동리와 홍성군 귀항면 내현리, 전북의 옥구군 옥구읍 신관리 그리고 경남 의령군 낙서면 여의리와 용덕면 죽전리 등이다.

울진에는 현재 전씨(田氏) 수가 592세대 1천530명이 살고 있는데, 울진의 성씨별 인구순위 열 번째로서 거의 모두가 담양전씨이다.
울진에는 북면의 신화리, 죽변의 후정, 봉평, 화성리와 울진읍의 호월, 읍남, 명도리, 근남의 행곡리, 원남 매화리 등에 집성촌이 있었다.

울진 입향조는 시조로부터 9세 손인 회정(晦亭) 전자수(田子壽)로서 경은 조생의 장손이다 여말 광정대부첨의평리(匡靖大夫僉議評理)겸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으로서 강원도 안렴사(현, 도지사)의 직에 있다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평해 삼율리에다 양진재(養眞齋)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니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이다.

후포 삼율 마미산에 세워져 있던 제단은 후손들이 지난해 울진 반정재 경문사(泮亭齋 景文祠) 역내로 이설하여 삼은 선생과 봉례공과 함께 모셨다.
반정재와 경문사 향사를 위하여 울진 문중에는 토지 약 6,000평과 산 22정의 재산을 보유하여, 전국에서 찾아오는 후손 약 500명을 맞아 매년 음력 10월 1일 추향제를 지내고 있다.
입향조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를 경남 의령으로, 둘째를 경기 남양(화성군)으로, 막내를 영천으로 보내 세거토록하고, 통훈대부통례원(通訓大夫通禮院) 봉례를 지냈던 셋째 아들 봉례공(奉禮公) 진(晋)은 흡곡( 谷 현재의 강원도 통천) 현감을 지내다가 귀향 반정산에 묻혀 묘소가 보존되고 있다.

담양전씨는 대쪽같은 선비의 기질로 이조 초에는 출사치 아니했으나,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털어 문과 급제자 127명, 봉군15명, 정승 3명, 판서급 22명을 배출 가문의 번영을 이루었다.

역사적인 큰 인물로는 한말의 대학자 간제(艮濟) 전우(田愚)선생이다. 그는 13세에 사서삼경을 읽고 20세가 되기 전 초과, 중과의 양과에 오른 수재로 성리학의 대가였는데, 중추원참의등 여러 관직에 발탁되었으나 이를 모두 사양하고 계화도 계양사에 은거 후진을 양성하며, 을사조약의 매국노를 처단하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왜놈들이 이 땅에 있는 한 문집을 내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 59권 31책의 총 4224편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나, 사후 10년 뒤부터 제자들이 진주본, 논산 신도본, 중국 상해본의 간재문집을 간행했다.

우리나라 500년 유문(儒門)의 도통(道統)을 이은 최후의 대종(大宗)으로 제주도에서 북간도에 이르기까지 따르는 제자가 3,000명에 달했고, 이들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명단이 관선록(觀善錄)인데, 제자들 중 머리를 깍은 자는 제명되었다 한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유명 인재들이 배출되어 병암 김준영, 석농 오진영, 금재 최병심이 있고, 현대인물로는 김병노, 윤제술, 소선규 등이 있는데, 이후 그의 학통은 석농과 비천 전기진, 가암 전원식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최종계승자가 가암으로 알려지고 있어 울진에 전주남윤최장<田朱南尹崔張>이라는 전래적인 토반성씨의 형성과 어떤 관련은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다음으로 거북선에 필적하는 해골선(海 船)과 독윤차(獨輪車)를 만들어 오늘날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자천공(紫泉公) 전운상 장군, 외교에 뛰어나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진 성암 전가식, 임란 때 의병을 일으켜 금산전에 참가하고, 남평군수 한순과 합세 양주산 싸움에서 순절하여, 조중봉의 비문에 “ 전씨지도(田氏之徒) 순절한 자 오백에 달함에도 아직 포상받지 못하니 애석하다.”고 기록된 전임(田稔)이 있다.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문장에 뛰어나 동방의 삼소(三蘇)라 불리웠던 귀제(龜濟) 전실(田實), 하음군(河陰君)에 책봉되었던 전균(田畇), 관직을 버리고 동생 묵헌( 獻)과 함께 둔세정(遯世亭)을 짓고 은둔한 북헌(北軒) 전시우, 벼슬을 사양하고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후진양성과 학문에만 정진한 죽림처사 전시국, 우암 송시열과 교유하면서 울진에서 수백명의 후학을 양성한 만은(晩隱) 전선(田銑), 울진출신으로 형 전구조, 동생 전구령과 더불어 죽림삼봉(竹林三鳳)이라 불리우며 당세를 놀라게 했다는 대 문장가 우와(遇窩) 전구원 삼형제. 또 죽음을 무릅쓰고 청국의 요청을 거절한 공훈으로 남원군(南原君)에 봉작된 서정공(西亭公) 전벽, 이조 영조 때 급제 문장과 탁행(卓行)으로 유명한 영해의 간송당(간松堂) 전광옥이 있었고, 근세사에는 울진의 의병장 전세호, 애국지사 영직, 영경 그리고 장인환 의사와 함께 미국인 친일파 D.W.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운,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의 주옥 같은 수필집을 남기고 32세에 요절한 전혜린, 그녀는 1세기에 한 번 나올 수 있다는 천재성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울진읍에 살고 있는 담양전씨 대종회 고문 전병강(73세)옹은 수분청빈(守分淸貧)사상을 숭상해 온 전씨(田氏) 문중의 선대 가훈은, 후손들에게 부귀경쟁을 멀리하도록 해 선비가문으로서의 지조를 지킬 수 있게 하였다 한다.
은둔과 지조와 청빈의 담양전씨 후손들은 지난 92년 약 5억원의 성금을 모금하여, 시조의 출생지 담양읍에다가 약 3,000평의 부지에 시조로부터 ·6세까지 묘소와 제단을 가꾸는 성역화 사업을 완성했다.

매년 양력 5월5일이면 전국의 자손 약 1천여명이 모여들어 조상의 은덕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대종회 연락처 (회장 전병기, 사무총장 전병제,02-2297-2951)
 

                                    /전병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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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2월 25일 13:55:00 / 수정 : 2007년 03월 07일 17: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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