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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주씨(新安 朱氏)편 - 大유학자 주자의 후예
2011년 01월 18일 (화) 12:06:50 [조회수 : 16254]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1802]
울진에 500세대 1,300여명 살아, 나라 어려울때 지사 많이 배출


   
            ▶주자와 입향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도통사

신안주씨는 남송의 대유학자 주자(朱子)의 후예로서 명문가로서의 자존심을 긍지로 삼고있다.

몽고족의 나라 원이 문약으로 흐른 남송을 침공하여 중원을 통일하자, 주자의 증손 청계공(淸溪公) 잠(潛)은 오랑캐 국의 신하가 될 수는 없다며, 1224년 당시 대몽항전의 기치를 높이 올리고 있던 기개의 나라 고려로 망명함으로서 우리나라 신안주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조 잠은 망명할 당시 남송의 한림원태학사로서 아들 여경(餘慶)과 섭공제(葉公濟) 등 칠학사(七學士)를 동반 전라도 금성( 지금의 나주)에 선착하여 이들이 고려에 성리학을 전수하였다.

원이 고려를 복속시킨 후 고려에 잠의 압송을 요구해 오자, 잠은 이름을 적덕(積德)이라 고치고 능성(지금의 전라도 화순군 능주면)에 숨어 살았다.
여경의 아들 문절공(文節公) 열(悅)이 문과에 올랐고, 세 아들 인장(印長) 인원(印遠) 인환(印還)의 을 두었는데, 이들후손들이 각각 능성 웅천 전주파로 갈리어 나갔다.

그런데 조선조가 개국되면서 전주파 인환외에 예부상서였던 인장과 병부상서였던 인원이 당초에 새왕조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였고, 또한 왕자의 난의 수난으로 신안주씨는 관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가 성종이후에나 과거의 길이 열리었지만 등과해봐야 미관말직에 그쳤다.

조선조에 주씨문중에서 문과급제자는 모두 31명이며, 그 중 전주파가 22명을 차지하는데, 숙종, 영조 때에 3대관삼장(三代貫三壯)으로 불리우는 전주파의 22대 손 주정 형만 중둔등 3대가 초시 복시 전시에서 장원을 차지했으나, 조정에서 등용을 하지 않자 이후 주씨문중에서는 과거를 기피하는 현상(포과령 抛科令)도 나타났다.

주씨의 연원은 기원전 약 2200년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한분이셨던 전욱제(顓頊帝)의 후예 조협(曹俠)이 주(周)나라 무왕(武王)으로부터 주(邾)라는 작호를 받아 기원전 1000연경 주(邾)나라를 세워 약 600년간 다스려오다 ,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403년에 초(楚)나라에 병합될 때, 사방으로 흩으지게 되면서 주국(邾國)의 주자(邾字)의 고을 읍 변을 떼어 내고 주씨(朱氏) 성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한다.

수, 당나라 때 주양약(朱良約)의 후예로서 명 재상이었던 주경(朱敬)은 두 손자가 있었는데, 장손 주근(朱瑾)은 당나라 마보군(馬步軍) 총거(總拒)로 영정후(英亭候)로 봉임되어 중국의 회계주씨(洄溪朱氏)의 시조가 되었고, 차손 주괴(朱壞)는 당나라 천우(天佑) 때 다원제치(茶院制置)로서 신안주씨의 원시조가 되었다.

주괴는 주자의 8대조로서 서기 888년에 무원(婺源)지방의 방위를 맡아 이곳에 정착 후손이 번성함으로서 무원의 옛이름인 신안(新安)을 본관으로 하였다.
신안주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약 780년 전국각지에 산거하게 된 주자의 후손들이 본관을 서로 달리하자 문중에서는 100여년 전인 서기 1902년(고종39년)에 당시 의정부 찬정(贊政)이었던 주석면(朱錫冕)을 대표로 상소하여 왕으로부터 주씨들은 모두 중국의 신안을 본관으로 통일하라는 윤허를 받았다.

현재 신안주씨는 남한에 약 55000세대에 약 18만명이 살고 있어 우리나라 성씨인구별 순위에서 4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울진에는 약 500세대에 1250여명이 살고 있어 인구별 순위 12위이다.
집성촌으로는 울진읍 고성리 읍남리 호월리, 근남면 구산리, 원남면 매화리, 북면 검성리, 죽변면 후정리로서 울진 북부지역에 집중 세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경기도 광주, 충청도 홍성, 전라도 나주 능주 고흥 광양 여수 익산, 경상도 경주 울진 웅천 진주 김해 예천 청도 등지에 산거하고 있다.

울진 입향조는 주자의 6세손인 열의 둘째 아들 문간공(文簡公) 인원의 10세 손인 전적공(典籍公) 선림(善林) 인데, 1504년경 울진읍 구만동으로 들어왔다.

전적공은 경주에서 출생 증광시에 등과하여 일본사신을 다녀오고, 진보 언양 정의 등지를 덕치선정하여 현대부(賢大夫)라 칭송하는 민요가 전해져오고 있으며, 1504년 (연산군10년) 에 문과에 올라 봉렬대부(奉列大夫) 전적감찰(典籍監察)을 역임했는데, 조선명인록에 등재되어 있다..

주자의 6세손 문절공 열은 고려 고종 때 전남 능주에서 출생 34세에 문과에 장원급제 충청 경상 전라도의 안렴사를 역임했는데, 지도첨의부사(知都僉議府事)로서 수차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당시 고려에 금, 말, 군선 등의 과도한 조공물 요구를 철회토록하여 조정과 백성들로부터 <구국재상救國宰相>이란 칭송을 받았으며, 고려사 열전에 기록되고 있다.

울진 입향조 전적공의 중자(仲子) 의(懿)는 조선 성종 때 약관 18세로 중사마시와 중종 1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정자(正字)을 시작으로 64세에 강릉 부사로 까지 임명받았으나 출조를 사양하자, 중종이 안와안치(安臥安治)의 하명과 삼의죽재백세청풍(三宜竹齋百歲淸風)이라는 8자 어필을 보내옴으로서 2년임기를 수행했다.

전적공의 손자 참봉공(參奉公) 세홍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의 장자 충효당(忠孝堂) 경안(景顔)은 지극한 효성으로 42세 되던 1587년에 나라에서 정려각을 세웠고 삼강행실록에 등재하였는데, 불천사(不遷祠)에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공은 또 임란을 당하여 구만동 동쪽 봉우리에 올라 왜적의 퇴진과 국태민안을 7년간 기원하여 후인들이 이곳을 축천대(祝天臺)라 이름하고 그의 유허비를 세웠다.

그리고 전적공의 손자 교수공(敎授公) 세창(世昌)이 부의 묘소에서 3년간 여묘(廬墓)생활을 할 때 호랑이가 샘물나는 곳을 가르켜 준 천감지효(天感之孝)로서 조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아 상포 3백필을 내리고, 연일 경원 의주 3고을에 교수직을 제수했다.

이에 교수공은 청고동(靑皐洞)에다 자신의 호를 따라 독송정(獨松亭)을 지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는 후손들이 세운 유허비가 남아있다.
전반적으로 조선조를 통해서 영화를 누리지는 못한 집안이었지만, 나라가 어려울때 우국충정의 지사를 많이 배출, 기개와 의용의 집안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주몽룡은 금산군수 재직시에 임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강덕룡 정기룡과 거창 우지현 싸움에서 왜적을 대파 3룡(三龍)으로 불리워진다.
유명한 의기 논개도 진주성이 함락하자 왜장 모곡육조(毛谷六助)를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구한말부터 일제에 이르러 주씨문중에선 주진수(朱鎭壽) 주기철 주용규 등 많은 독립투사가 나왔다.

특히 백운 주진수는 1907년 울진 매화리에 만흥학교를 세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 2년간 옥살이를 한 후 만주로 가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지금 울진 초등학교 정문 왼편에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59년에 세운 기념비가 있다.

주기철은 조만식과 더불어 물산장려운동을 펼쳤고, 만주에서 정의단(正義團)을 조직 군자금을 전달했으며 평양부청(平壤府廳)등 일제기관을 폭파하고, 체포돼 13년간을 복역했다.

주진용(66세, 죽변) 울진종친회장과 직전회장인 주성하(70세)씨는 주씨문중은 권세와 부귀를 멀리하고, 성리학을 개창한 석학의 후예답게 시속에 영합하지 않는 꼿꼿한 재야사림으로서의, 오로지 청빈한 선비가문의 정신으로 학문과 후학 양성에만 진력해 온 전통의 가풍을 이어 왔다고 밝혔다.

오늘날 후손들은 전라도 화순군에 주자묘(朱子廟)와 한국의 시조 잠의 위패등을 모신 동원사(東源祠)를 성역화하여 매년 양력 5월 5일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약 1천명 족인들이 제향을 올리며 조상의 얼을 기리고 있다.
울진에는 울진읍 고성리 <산성 山城> 아래에 문공(文公) 주자의 영정과 위패 청계공 잠과 문절공 열의 위패를 모신 도통사(道統祠)에서 매년 음력 3월 초 9일날 배향하고, 매년 10월 초 9일에는 울진읍 박금동에 있는 울진입향조 전적공 선림의 묘소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묘소 아래 부락에는 1881년(고종18년, 신사)에 박금재(拍琴齋)를 건립 추모하고 있으며, 2002년에 후손들의 성금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보존관리해 오고 있다.

(울진군종친회 연락처: 간사장 주기원 054) 782-1332)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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