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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방씨(溫陽方氏)편 - 세계5大성 4700년 역사 자랑
2011년 01월 18일 (화) 12:51:12 [조회수 : 17547]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1650]

영원한 어린이의 아버지 방정환 ,이순신 장군도 방씨 가문의 사위


   
▶1300년전 통일신라시대 한림학사였던 월봉方智의 유택 (소재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이 겨레 어린이들아/ 눈물을 함빡 내게로 넘겨다오/ 너희들을 대신하여 울어주마/

민족의 암흑기 일제시대에 이나라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횃불을 들려 준 어린이 문화 운동의 선구자 방정환(方定煥). 그는 방씨가문이 낳은 큰 별로서 「어린이」라는 낱말과 함께 민족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인물이다.

짧은 인생의 여정 속에 시대를 앞서 걸으며 신시대의 장(章)을 열고 간 그는 봉건구조 속의 여성과 어린이를 해방시킨 사상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중략
일제 압박하의 암흑상을 암시적으로 표현 , 당시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던 눈물겨운 동요는 그의 독립 민족사상을 대표적으로 나타낸다. 기미독립만세운동으로 「독립신문」이 폐간당하자, 동료들과 함께 등사판으로 지하신문을 발행, 아낙네들의 빨래광주리에 숨겨 손에서 손으로 전하다 투옥된 사건에서 우리는 그를 더더욱 흠모하게 된다.

2000년도 기준 전국 방씨 일문은 약 2만5천여 가구에 8만 1천여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성씨 별 인구순위는 54위. 이 중 온양방씨(溫陽方氏)가 6만 4천여명으로 방씨 전체의 80%를 차지하여 대종을 이루며, 우리나라 본관별 인구 순위 93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방씨(方氏) 성의 본관이 상주, 군위, 신창, 개성, 강화 등 26개의 갈라져 내려오고 있지만, 모두 종조동근(同祖同根)으로 근대에 와서는 온양으로 단일화 되고 있다고 한다. 온양방씨는 전국적으로 군위, 경주, 남원 등에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울진에는 현재 약 58가구에 157명의 소수가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본지에서 울진의 뿌리찾기에 나서 소수의 성으로서 마지막 13 번째로 온양방씨를 게재하게 된 것은 오늘날 울진에서 일컬어 지고 있는 전(田) 주(朱) 남(南) 토성 이전 임(林) 장(張) 방(方)의 성씨가 울진의 토성으로서 세거했기 때문이다.

울진에서는 평해읍 거일2리, 온정면 온정리(남아실), 서면 삼근리에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특히 거일2리는 「방씨 터전에 김씨 골목」이라 불려 질 정도로 울진에서는 대표적인 집성촌을 이루었다.

방씨의 득성(得姓)은 중국 고대의 제왕이었던 염제(炎帝) 신농(神農)씨의 11세 손인 유망황제(楡罔皇帝)의 장자 휘뢰(諱雷)가 중국 하남 땅 방산(方山) 일대에 세거 그 산 이름을 딴 방(方)씨 성을 하사 받음으로써 유래하였다 한다.

방씨 성은 세계 5대성으로 약 4700년의 역사를 이루어 온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방씨 족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10여년 전부터 중국의 「방씨원류역사연구회」와 방씨전족통보이사회(方氏全族統譜理事會), 그리고 온양방씨중앙종친회 서로 간 인적·물적 교류를 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 온양방씨의 뿌리는 신라 문무왕 9년(서기 669년)에 당나라의 한림학사로서 당 고종의 명을 받고 신라에 나+당(羅+唐)동맹의 문화사절로 들어 온 방 뢰(方 雷)의 134세손 월봉(月峰) 방 지(方 智)에서부터 비롯된다.

당시 불교가 왕성하던 신라에 들어 온 그는 설총과 더불어 구경(九經)의 회통(會統)을 국역(國譯)하여 유학의 체계를 세웠고, 장씨와 혼인하여 가유현(지금의 상주)에 터전을 잡아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는데, 그의 묘소는 경남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에 있으며, 후손들은 매년 음력 10월3일 제사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온양방씨 시조 방지(方智) 이후 중간대의 실기로 방지의 근손(近孫) 온수군(溫水君) 방운(方雲)을 1세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상주가 고향이었던 그는 고려초 왕건을 도와 후백제 정벌에 공을 세워 고려 광종 때 상서좌복사(尙書左僕사)의 벼슬에 까지 올랐다. 왕은 만년의 그를 지금의 온양(당시 온수)의 과안산(過雁山) 아래 살도록 하고 온수군으로 봉하고 산의 이름까지 배방산(拜方山 : 방씨를 우러러 본다는 뜻에서...)으로 고쳐부르게 했다. 그로부터 방씨는 중시조의 아들 방헌주(方軒柱) 이후 상주에서 온양으로 관향이 바뀌었다.

2001년 발행 울진군지에 의하면, 온양방씨의 최초 울진입향은 고려 태조 때 상서좌복(尙書左僕) 방 운(方 雲)의 후손으로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해 의성으로부터 입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입향년수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밖에 되지 않아, 울진의 전(田) 주(朱) 남(南) 이전 「임(林)장(張)방(方)」이라는 울진 고래의 토성(土姓) 설과는 상이한 것으로 가문의 후예들과 향토사학자들이 향후 연구해 볼 점이라고 생각된다.

1세조 방운(方雲) 이후 후손들은 선대의 후광에 힘입어 고려조에서 대대로 벼슬길에 올라 명문으로 등장했다.
후손들은 특히 무예에 뛰어나 溫水君의 손자 방휴는 고려 현종 9년에 거란의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을 맞아 강감찬 장군과 함께 귀주대첩 승리의 주인공이 되었고, 공민왕 때는 홍건적의 침입에 맞서 1등 공훈을 세운 방절 장군 등이 뛰어 났다.

또 려조 숙종 때 문하성 평장사와 문하시랑에 올랐던 6세손 방유와 희종 대 상서령과 상서랑성 찬성에 올랐던 11세손 방만두 등은 명재상으로 당대를 휘어 잡았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13세 손 방신유는 원나라에 들어가 평장사 등 요직을 지내면서 우리나라 대원외교에 크게 공헌하기도 했으며, 그의 아우 방신제는 원나라에서 평장사 등 큰 벼슬을 지내고 그곳에 귀화 오늘날 그의 후손들이 번성하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이조 들면서 방씨가문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다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려조의 절신 방순은 공민왕 때 판전교사사의 벼슬을 지낸 인물로 이태조가 예조참의의 벼슬을 남겨두고 여러차례 불렀으나 끝까지 이를 거절 선비로서의 절개를 지켜냈다.

또 15세 손 방유정이 이태조의 부름에 불응하자, 고려 광종이 방씨가에 내린 온양의 사패지(賜牌地: 나라에서 내려 준 땅)몰수하고, 방씨일문의 혼이 담긴 배방산(拜方山)을 방씨를 배척한다는 뜻의 배방산(排方山)으로 고쳐부르게 하는 등 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조에서 나중에 방씨가는 14명의 문과 급제자를 내었으나 방씨가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무과에서는 뛰어난 장군들을 다수 배출하였는데, 방우정은 홍경래 난 때 정주 땅을 함락시킨 명장으로 이 때 그가 쓴 「서정일기西征日記」는 귀중한 연구사료가 되고 있다.

지금의 아산 현충사 자리는 조선시대 보성군수를 지낸 무인 방진의 집터인데, 방진은 이순신장군을 무남독녀 외딸의 데릴사위로 혼인시키고 교육하여 훗날 위인으로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는 이 충무공의 처숙뻘 되는 방덕룡과 방응원 등 방씨가의 명장들이 충무공을 도와 선봉장에 나서 노량진해전에서 함께 전사했다.

방씨일문은 근세에서 특히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는데, 민족의 독립운동에 몸바친 방경호, 방창근, 방성도, 방인근 등이 유명하고, 6.25 때 납북된 전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 등이 돋보인다.

울진의 방씨 집성촌인 평해읍 거일2리에 살고 있는 방명록(69세, 농업)옹은 온양방씨 일문에 대해 13세기 경에 문중이 7개파로 분파될 정도로 번성하기 시작, 현재는 30~42세손까지 내려와 숭조, 충효, 화친의 종훈정신이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며, 가문의 후예들은 선조의 빛나는 정신을 본받아 가문의 영광을 되살릴 나라를 위한 큰 일꾼들이 많이 나올 것임을 확신한다고...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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