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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金海金氏)편 - 한국 最大 最古의 씨족
2011년 01월 18일 (화) 12:54:44 [조회수 : 13794]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1697]

뿌리찾기는 본지의 특집기획물로서 우리고장의 13개 토성(土姓)의 성씨의 유래와 입향, 집성촌과 인물 등을 통해 각 가문의 뿌리정신을 조명하여 역사적 교훈을 얻어내려 했다.
그리하여 울진에서의 토성이라 할 수 있는 전주남윤최장임방황안손리구(田朱南尹崔張林方黃安孫李丘) 집안을 모두 탐방하고 종료하려 했으나, 독자들의 본 특집기획에 대한 찬사와 계속 연재의 요청에 의해 울진지역 거주 인구순위에 따른 대성(大姓) 15개 정도의 뿌리찾기를 더 할 예정이다. 이에 독자들의 많은 성원을 바라며, 그 첫 회로서 울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김해김씨(金海金氏) 성부터 찾아 간다. 편집자 주

 

전국에 약 600만명, 울진에 약 5천700명 살아


   
▶경남 김해시 서상동에 소재한 김수로왕릉


우리나라 김씨 전체는 약 1천여 만명으로 4천6백만 인구에 약 22%를 점한다.
김씨의 대종(大宗)은 크게 2개로 나뉘는데, 그것은 가락국의 김수로왕(金首露王) 계보이고, 신라 왕족 박(朴) 석(昔) 김(金)에서 유래하는 경주의 김알지(金閼智) 계보이다.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성씨가 바로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왜장 김충선이 귀화하여 성을 하사 받은 김해김씨(友鹿金氏)와 신라김씨 계통인 김해김씨(法興金氏)는 그 근원이 다르다.
김해는 가락국(駕洛國)의 고도(古都)로서 지명도 여러가지로 변했으나, 고려 충선왕 때 김해부가 설치됨으로써 김해를 본관으로 하였으며 가락(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이라고도 부른다.

김해김씨는 전국적으로 약 600만명이 살아 본관별 성씨 인구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성씨로서, 울진에서도 전 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약 5천7백여명이 살아 울진의 토성을 망라한 전체 본관별 성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울진 최대의 대성(大姓) 이다.

김해김씨의 울진 입향은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인 만큼 울진군지의 입향 기록에도 무려 38명이나 올라 여타 성씨들을 압도하고 있다.

김해 문중의 울진 최초 입향은 1512년(중종 7년) 김관의 삼현파(三賢派) 후손인 김련(金鍊)으로 500년에 못미쳐 약 600년 이상의 13개 울진 토성들에 비해 늦은 편인데, 그는 조산대부 군자감정(朝散大夫 軍資監正)의 벼슬을 지내다가 무오사화를 피해 청도로부터 울진 원남으로 입향하였다 한다.

이후 김해인들의 울진입향은 주로 정치적 화를 피해 울진에 들어 온 이들이 많은 것을 볼 때, 그것은 울진이 역사적으로 귀양 유배 도피의 고장이라는 또 하나의 사실고증의 증거자료로서 울진인들의 강한 반골 저항정신은 우리들의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전통정신 때문이 라는 생각이 든다.

김해김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배출한 가문으로 김종필 전 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울진에서도 김중권이라는 큰 정치인을 낳았으며, 현재 김용수 울진군수도 김해의 일족일 만큼 김해의 위력은 전국을 압도하고 있다.

10년을 가락 울진군종친회 사무국장을 맡았다가 지금은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상진(72세·전 울진군공무원) 옹은 김해김씨 정신의 본류는 숭조목종(崇祖睦宗)과 신라 화랑도 정신으로서 타성보다 월등하게 문중의 번창을 이룩한 데는 가문에 흐르는 이 두 전통정신의 기반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울진에서의 문중의 규합은 얼마전 작고한 백암 성류파크의 김진원 회장과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의 헌신이 있어 가능했는데, 현재 울진읍내 경찰서 뒤에 건립된 3층건물의 종친회관도 이 분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김해김씨의 유래를 보면, ‘서기 42년 아홉 촌장이 다스리던 가락국의 김해 구지봉(龜旨峰)에 황금알 여섯 개가 든 금상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다음날 이 알에서 여섯 아이가 나왔다. 이 때 제일 먼저 나온 아이 이름을 수로(金首露, 42~199.3.23)라 하였다’라고 삼국유사와 「개황력(開皇曆)」에서 전한다. 이에 아홉 촌장은 수로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수로왕은 즉위 7년 아유타국(인도 중부지방의 고대국가)의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이하여 10남 2녀를 낳았는데, 맏아들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왕비의 요청으로 비의 성을 따라 허(許·태인허씨)씨라 하였다. 나머지 일곱 아들은 승려가 되었다.

그후 허씨에서 인천이씨가 갈라져 나왔으나 다같은 혈족으로, 지금은 3개 성씨 종친회마져도 통합되어 ‘가락중앙종친회’가 되었다.

울진에서는 매년 음력 3월15일 자손들이 만나서 종친회를 가지고 있고, 음력 9월 15일에는 울진종친 약 200여명이 김해 구지봉에 있는 시조 김수로왕의 묘소를 참배하는 춘추향배제를 지낸다.

김해김씨의 중시조는 수로왕의 13세손인 김유신(金庾信)흥무대왕이다. 김유신을 정점으로 김해김씨는 신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조에서만 정승급 15명, 명신 공신 10여명, 장군 8명, 제학(提學) 11명을 배출 삼한갑족(三韓甲族)의 하나로 위세를 떨쳤으나,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齋叢話)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조 들어서는 김해김씨 문중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신정권에 협력하지 않은 문중들은 탄압과 은둔을 통해 모두가 도태되었던 것을 볼 때, 오늘날의 정권변화에 따른 세력 간의 부딪침에서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이다.

김해김씨의 계파는 금녕군파를 비롯한 300개파(2000년 기준)가 있으며 김유신의 직계종파인 3개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 경파(京派 : 영견, 영서, 영정, 영순) :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파시조로 한다.
- 사군파(四君派 : 극조, 완, 여수, 세기) : 목경의 동생 김익경(金益卿)을 파시조로 한다.
- 삼현파(三賢派 : 극일, 일손, 대유) : 김관(金管)을 파시조로 한다.

경파의 파조인 김목경(金牧卿)은 고려 충정왕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며, 당시 혼란한 국정을 개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상소 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다.

사군파에서는 파조인 김익경(金益卿)의 손자 김진문(金振門)이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과 함게 은둔 생활하여 절의를 지켰다.

삼현파(三賢派 : 판도판서공파)의 1세조인 김관(金管)은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儒學)을 진흥시키는 등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그의 후손 김맹(金孟)은 용마(龍馬)의 꿈을 꾸고 세 아들을 낳아 김준손(金駿孫), 김기손(金驥孫), 김일손(金馹孫)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들 3형제가 모두 빼어나서 “김씨삼주(金氏三珠)”로 일컬어졌다.

김일손은 1486년(중종 17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였는데, 춘추관(春秋館)의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전라감사(全羅監司) 이극돈(李克墩)의 비행을 사초(史草)에 썼다가 그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연산군이 등극하여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공교롭게도 이극돈이 당상관(堂上官)으로 참여하여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意帝文 :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글)이 발견하자, 이를 연산군에게 알려 무오사화를 일으켰는데, 이 때 강직한 기개와 탁월한 재능을 지녀 후일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김일손은 참수당하였다.
이로써 김해 문중은 조선초기의 쇠락에 이어 무오사화로 인해 또 한번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김해김씨는 역사가 오래된 한국최대의 벌족 답게 대한민국 전반에서 많은 뛰어난 인물들이 너무 많이 현존하는 가문으로 가히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표현해도 지나칠 것 같지 않은 문중이다.

[연락처] 가락중앙종친회 : 02) 714-7459 / 가락울진군종친회 : 김상진 회장 783-2867, 사무실 783-7028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5:16:00







김성진
[2008-01-07]
김해김씨 울진입향조
김해김씨의 울진입향에 관한 기록이 없어.. 너무 한스러운 마음에 한자 올립니다.
삼현파 휘.맹파의 입향조는 1512년 중종때 무오사화(1498)를 피해 청도에서 울진으로 입향하여 원남 덕신 대곡동에 기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입향조 (김 련: 조산대부 군자감정)의 묘소는 덕신음지촌(항실)에 있죠. 종친회에서는 정확히 파악하셔서 울진군지를 비롯한 기록에서 빠지지 않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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