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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密陽朴氏)편 - 신라건국 자긍심의 종족
2011년 01월 18일 (화) 12:59:29 [조회수 : 16401]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2043]

전국 박씨 모두가 혁거세 후예,밀양박씨가 전체의 73% 차지



   
▶시조 박혁거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경주 오릉의 숭덕전

울진에 살고 있는 박(朴)씨 성의 인구는 약 1천500가구에 4천100여명인데, 이중 밀양박씨가 전체의 73%를 차지하여 1천100가구에 약 3천명이 살고 있어 울진의 본관별 성씨 분포 중 김해김씨 경주이씨 다음으로 3대성에 들어간다.

그 외 울진의 박씨는 영해박씨가 약 300명, 춘천박씨가 약 200명, 함양박씨가 100여명, 반남박씨가 80여명 살고 있는데, 모두가 다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동일 족속이다.

울진의 본관별 10대 성씨에는 이들 3대성 다음으로 평해황씨 울진장씨 전주이씨 경주최씨 영양남씨 김녕김씨 담양전씨 순이다.

그런데 전국적인 10대 본관별 성씨 인구 순위는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경주김씨 진주강씨 경주최씨 파평윤씨 광산김씨 청주한씨 순으로 밀양박씨가 2위를 차지하고 있어 울진의 상황과는 다르다.
한편 본관에 상관없이 한자 성이 같은 전국적인 10대 성은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순이다.

박씨는 여러 본관 중 단 1본도 외래 귀화족이 없다고 하며, 모든 박씨는 신라의 시조왕 박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다. 박씨끼리는 되도록 혼인을 피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신라가 생기기 전에 여섯개의 마을(6부)을 다스리고 있던 6촌장이 기원전 69년 알천의 언덕위에 모여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추대할 것을 의논을 하고 있었다.

이때 남쪽 양산 아래에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흰 말 한 마리가 땅에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보여 가 보았더니, 박 같이 생긴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혁연히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혁거세(赫居世)라 하고 박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박이라고 하니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에 용이 나타났는데 왼쪽갈비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나왔다. 얼굴과 입술이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아서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閼英)이라 이름 지었다.

기원전 57년 이 두 아이가 13세가 되자 6부 촌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하고 알영을 왕비로 삼았으며 나라 이름을 서라벌(신라)이라 했다.

이때부터 신라 왕실의 56왕은 박(朴), 석(昔), 김(金)의 3성에 의하여 교체 반복되었는데, 그 중에서 박씨 왕은 시조왕 박혁거세를 비롯하여 모두 10명이다.

박씨의 세계는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신라 5대)과 일성왕(신라 7대)대에서 갈라졌는데,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 면천, 강릉 등으로 분관했고, 비안, 우봉(牛峰), 이산(尼山), 해주(海州) 등도 같다.

일성왕계는 그의 25대손인 경명왕(신라 54대)과 경애왕(신라 55대) 대에서 다시 갈라졌다.
경명왕의 아홉 아들 중 8명이 계림8도에 분산 봉군케 했는데, 이 때 맏이 박언침(朴彦 )이 밀양(옛이름 밀성)을 봉군받아 밀양박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도시조 박혁거세 이후 중시조로 후손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다.

경명왕계는 아들 9형제에서 각기 - 첫째 아들 박언침의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 : 밀양, 반남, 진원 박씨 등 - 둘째 아들 박언성의 고양대군파(高陽大君派) : 고령 박씨 - 셋째 아들 박언신의 속함대군파(速咸大君派) : 함양, 삼척 박씨 등 - 넷째 아들 박언립의 죽성대군파(竹城大君派) : 죽산, 음성, 고성 박씨 - 다섯째 아들 박언창의 사벌대군파(沙伐大君派) : 상주, 충주 박씨 - 여섯째 아들 박언화의 완산대군파(完山大君派) : 전주, 무안 박씨 - 일곱째 아들 박언지의 강남대군파(江南大君派) : 순천, 춘천 박씨 등 - 여덟째 아들 박언의의 월성대군파(月城大君派) : 경주 박씨의 8대군파와 - 아홉째 아들 박교순(朴交舜)의 국상공파(國相公派) : 울산 박씨로 분파되었다. 경애왕계는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를 이루었다.

박씨는 다른 씨족과는 달리 역대 세계가 비교적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밀성대군파의 밀양 박씨가 주류를 이루어 박씨 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는데, 밀양, 반남, 고령, 함양, 죽산, 순천, 무안, 충주박씨를 「8박」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 8본이 역사상 많은 인물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옛문헌에 314본관이 있었지만 현재는 127개의 본관이 있으며 이중 46개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에 대한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밀양박씨는 이조에서만 총 26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다. 이는 전주이씨 안동김씨 파평윤씨 남양홍씨 청주한씨 광산김씨에 버금가는 숫자로 랭킹 8위. 이로써 밀양박씨의 총체적인 역량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조에서는 재상과 대제학을 합쳐 단 2명 뿐으로 이조 5백년 간 밀양박씨는 정치권력에 깊숙이 참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 대해 박영규(67세·월송) 종친회장은 신라왕족으로서 자존심이 역성혁명의 이조권력에 선뜻 충성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조도 권력의 핵심에 등용하기를 은연 중 꺼려한 연유일 것이라고 말한다.

울진입향은 조선 명종 때 벼슬이 충순위(忠順衛)였던 박원일(朴元一)이 사화를 피해 울진 기성 봉산에 들어온 것을 시발로 울진군지에는 모두19명의 입향조가 등재되어 있는데, 이로서 밀양박씨의 울진최초 입향은 지금으로부터 약 5백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세조 5년인 1460년에 동조동근인 영해박씨의 박치민(朴致民)이 평해군수를 지내고 울진에 정착함으로서 사실상 박혁거세 후손의 울진입향은 약 1백년 앞 당겨져 약 600년에 이른다.

울진의 박씨들은 매년 8월 중순 울진군 실내체육관 등을 얻어 울진 박씨 대동종친회를 열어 약 400영명씩 모여 종친간의 우의를 다지고 있고, 1년에 두 번 약 200명씩 경주에 가 조선 세종의 명에 의해 혁거세 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숭덕전(崇德殿)과 시조가 모셔져 있는 오릉의 춘추분대제에 참배해 오고 있다.

현재 밀양박씨 사단법인 신라오릉 보존회 박씨 대동종친회 본부 감사인 근남면 수산리 박종원(69세)씨에 따르면 밀양박씨는 우리나라 박씨 전부는 한 할아버지 자손으로 혁거세 시조왕이 개국한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찬라한 문화를 꽃 피웠다는 것이 밀양박씨의 긍지와 자부심이라고...

그리고 세종이후 숭덕전 춘향대제에는 국가에서 주관 하는 국전(國典)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일개 문중의 제사를 국전으로 치르지 못하게 하여 지금은 오릉보존회에서 주관하고 있는 반면, 김해김씨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 당시 약 1천500억여원의 성금을 모아 수로왕의 묘역을 대규모로 성역화 하여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밀양박씨는 오늘날 한국 3대성으로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하고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도 고령박씨이지만, 사실상 그뿌리가 같아 밀양박씨와 동족인 만큼, 밀양박씨의 인물들은 너무 많아 생략한다.

 

종친회연락처 회장 박영규(011-728 -4390) / 사무국장 박영철(783-9008)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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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로테스 2015-06-04 18:37:11

    실력이나 가문이 빈약해서 재상의 수가 적은 건 생각 안 하시나? 마치 자신들이 자존심이나 기개 때문에 재상을 안 했다는 논리로 몰고 가네. 그렇게 이조에 대한 반감이 컸으면 중국으로 이민을 갔던가 반란이라도 일으켰어야지. 그리고 신라의 전성기 때는 박씨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였고 이민족이었던 김씨들에게 왕좌를 빼앗겼구만. 그냥 가문의 역량이 달려서 그렇게 된 거요. 당신의 박씨 근성, 아전인수 대단하구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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