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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安東金氏)편 - 김알지계의 신라 왕족
2011년 01월 18일 (화) 13:16:25 [조회수 : 15245]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1871]

민족의 지도자 白凡을 배출



   
▶신안동김씨 시조 김선평의 시향(음력10월10일)에 참석한 울진 종친회원들이 시조묘소에서 기념촬영


안동김씨(安東金氏)는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세칭 ‘구(舊)안동’과 고려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新)안동’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이 두 ‘안동’은 조선시대에 정승 19명, 대제학 6명, 왕비 3명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 인구중에서 가장 많은 성씨로서의 김씨는 크게 나누어 가락국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수로왕계(김해김씨)와 신라 왕실의 박, 석, 김 3성 중의 하나인 김알지계로 나눌 수 있다. 김씨의 본관은 『씨족통보』에 623본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중 김알지계의 김씨는 600여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라 왕조의 김씨들은 모두 김알지의 후손들이다.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왕(신라13대)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알지의 28세손)이 935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38명의 알지의 후예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울진의 안동김씨들은 2002년 말 통계에 따르면 울진의 본관별 성씨 인구순위에서 18번째를 차지하고 있는데, 약 300가구에 1천10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 특이하게도 울진의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는 종친회를 통합하여 매년 읍면 단위로 순회하면서 회합을 갖고 있다.

그 연유는 71년 경주출신으로 울진군수를 역임했던 신안동의 김일규 군수가 재임시 신안동김씨 울진군종친회 결성을 주도하면서, 결국 김알지의 후예로서 본관이 같은 구안동김씨들과의 통합종친회를 발족시켜 지금까지 약 35년간을 함께 해 오고 있다는 것.
이들 두 안동김씨들이 같은 김알지를 시조로 한다면 통합 종친회를 운영해도 크게 잘못되지는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울진군지에 의한 울진입향을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인 1595년(선조29년)에 구안동의 절충장군 김몽생(金夢生)이 울진에 처음 들어오고, 신안동김씨로는 김몽생이 입향한 약 130년 후인 1721년(경종 원년)에 김우상(金愚商)이 최초 입향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둘 다 묘소가 온정면 광품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온정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김몽생을 설명하면서 분파조가 익원공(翼元公) 김사형이라 하여 구안동의 김숙승(金叔承)이 시조임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시조를 김일긍(金일兢)이라고 적고 있어 후손들이 바로 잡아야 할 것 같다.

구안동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으로 벼슬이 시중,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판전리사사, 도원수에 이르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구안동’은 방경의 아들과 손자대에 크게 중흥하여 아들 선은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 흔은 찬성사, 순(恂)은 삼사판사(三司判事), 윤(倫)은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 선의 아들 승용(承用)은 대제학, 승택(承澤)은 평장사, 영돈(永暾)은 유명한 무장(武將)이며, 영후(永煦)는 우정승을 지내 모두 명신·충신으로 이름났었는데, 특히 영후의 후손이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떨쳐 사실상 ‘구안동’의 주축이 되었다.

‘구안동’의 세계(世系)는 방경의 현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어 그중 13파만이 현존하고 있으며, 13파 중에도 영후의 손자들인 익달(益達)의 제학공파(提學公派), 사렴(士廉)의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사형(士衡)의 익원공파(翼元公派) 등 3파가 ‘구안동’ 인구의 60∼70 %를 차지하여 통칭 ‘제안익(提按翼) 3파’로 불린다.

이밖에 군사공파(郡事公派 : 士陽)·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 九容)·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 九鼎)가 그에 버금한다. 좌의정을 지낸 사형의 익원공파에서는 좌의정 질, 영의정 수동(壽童), 이조판서 찬(瓚) 등이 나왔다.

그러나 이렇듯 세를 떨치던 ‘구안동’은 인조 때 영의정 자점(自點)이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꺾이게 되었다. ‘구안동’의 인물로는 이밖에 임진왜란 때 순절한 원주목사 제갑(悌甲)과 그의 조카 시민(時敏)·시약(時若) 형제, 판서를 지낸 청백리 시양(時讓)과 그의 아들 이조판서 휘(徽), 숙종 때의 시인 득신(得臣 : 참판), 무장(武將)으로 영의정이 추증된 응하(應河)와 훈련대장 응해(應海) 형제, 훈련대장 중기(重器)가 있으며, 현대 인물로는 독립운동가·정치가 백범(白凡) 구(九)가 있다.

※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신안동의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경애왕 때 고창(안동의 옛지명)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 장정필과 함께 향병을 모아 고려 태조와 함께 고창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무렵 고려에 귀순하여 개국공신이 되고 벼슬이 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1세)로 하고 있다.
흔히 ‘신안동’을 가리켜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내었다는 비유로 삼는데, ‘신안동’은 특히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으로 더 알려졌다.

‘신안동’의 시조 선평(宣平)은 신라 말 고창군(古昌郡 : 현 안동)의 성주로, 왕건이 고려를 개창할 무렵 고려에 귀부, 개국공신·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선평의 후손들은 극효(克孝)의 아들대에서 상용(尙容)·상헌(尙憲) 등이 정승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특히 좌의정 상헌의 후손이 세도가문으로서의 주류를 이루어 이들을 ‘장김(壯洞金氏)’이라고도 한다.

상헌(尙憲)은 선조말에 급제하고 병자호란때 화의를 배척하는 상소문을 올려 파직당하기도 했고, 특히 인조18년(1640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고자 파병을 요청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청나라 심양으로 잡혀가는 몸이 되었는데 이때 읊은 시조가 유명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려마는 시절이 하수상하여 올똥말똥 하여라』

상헌의 후손에서 부자 영의정·형제 영의정·부자 대제학 등 12명의 정승과 3명의 왕비, 수십 명의 판서가 나왔고, 우의정 상헌의 형 상용의 후손에서도 정승·판서 등이 많이 나왔다. 형제 영의정 수흥(壽興)·수항(壽恒)과 수항의 아들 영의정 창집의 후손에서 왕비 3명을 내었는데, 이들이 ‘신안동’을 세도가의 반석 위에 오르게 한 인물들이다.

조순(祖淳)의 딸이 순조비가 되면서 달순(達淳)·문순(文淳)·희순(羲淳)·유근(儷根)·교근(敎根) 등 일족이 정승·판서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이들 일문에서는 영의정 좌근(左根)·흥근(興根)·병학(炳學)·병국(炳國)·병시(炳始), 호위대장(扈衛大將) 조근(祖根:헌종의 장인), 판서 수근(洙根)·보근(輔根)·병기(炳冀)·병주(炳州)·병덕(炳德)·병지(炳地)·병교(炳喬) 등을 배출하였다.

역사적 인물로는 ‘김삿갓’으로 유명한 병연(炳淵)도 ‘신안동’이며, 근대 인물로는 한말의 정치가 옥균(玉均), 3.1독립선언문 33인중 1인인 완규(完圭), 독립운동가 장군 좌진(佐鎭) 등이 있다.

※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시조 권행과 김선평, 장길을 모시기 위해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세운 삼태사묘는 경북 안동시 북문동 28번지에 있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한다.

☞ 안동김씨종친회 연락처 김문환 부회장 011-9740-8300  김명선 총무 018-416-4558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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