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식 주필

어제는 지난해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반가운 친구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저녁에 칼국수 집을 찾아 전국에서 최고 맛이 좋다는 울진막걸리를 나누었다. 결국에는 후배의 강권에 의해 노래방까지 가게됐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빠르고 경쾌한 노래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고, 느리고 구슬픈 가락의 한 많은 곡에다가 마음을 풀었다. 봄베이 최후의 날을 앞에 둔 사람들처럼...

현재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 사태로 대재앙을 맞았다. 가족은 흩어지고, 마을은 초토화되고, 수만명의 사람이 죽고, 인류 최대의 위험 물질인 방사능 물질은 하늘을 날고, 이것이 어찌 남의 일이던가! 나는 지난주 토 일요일 이틀간을 꼬박 2개의 TV 뉴스전용 채널을 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이처럼 사태의 처참함과 긴박함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울진은 후쿠시마와 삶의 환경이 비슷하다. 해안을 끼고 있고, 활성단층대가 지나고 있고,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숙종때 울진지역을 비롯한 강원도 일대에 진도 8로 추정되는 대지진의 기록도 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반 TV방송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 대참극이 일어나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깔깔대고 있는 프로들을 평소처럼 내보내고 있었다.

일본의 재앙은 일본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방사능 누출사태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한국도 곧바로 재앙속에 들어갈 수 있다. 바닷가 사람들은 샛바람을 안다. 샛바람은 봄철 동쪽에서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이다. 바람이 항상 태평양쪽으로 불기를 바랄까.

바로 앞집에서는 출초상이다. 그런데도 바로 이웃집에서 그것도 보이는 곳에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퇴계선생의 사단칠정론에서 사단의 하나를 惻隱之心(측은지심) 仁之端也(인지단야)라고 했다. ‘어짐’이라는 것의 시발은 측은한 것을 보고 측은하게 느끼는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인자함을 잃어버린 것일까. 측은지심을 잃어버린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 심성을 잃어버린 것으로 일본의 자연 대재앙 못지 않은 인류 재앙이 될 수 있다.

이번 일본 사태를 보면서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대한민국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 방사능 경계경보를 내리고, 미국에서는 자국민들에게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반경 80Km 밖으로 대피하라고 권고한 며칠이 지나서야 이를 뒤따르고 있다.

특히 동해안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가진 울진사람들은 더하다. 일부 주민들에게라도 방호·방제 장비나 방제 약제를 나누어 주거나, 개인용 방사능 측정장비를 일부 가정에라도 나누어주지는 못할망정, 긴급사태발생시 행동요령만이라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하지 않을까.

울진군이나 원자력본부측 어디에서도 이런 조처는 취하지 않고 이미 홍보를 다했다고 강변한다. 얼마전 본사를 방문한 원자력 인근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은 일본의 사태를 보면서 큰 지진이나, 울진원전의 사고 발생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몰라 답답하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일본의 원전 재앙을 보면서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것은 발전소를 한 곳에 과도하게 집중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식에 투자를 하더라도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즉 위험의 분산이다. 한곳에 집중했다가 쫄당 망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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