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 우리나라에 부는 바람은 편서풍이다.
해마다 3월이면 울진 바다를 끼고 걸었던 십리 등굣길이 생각난다. 새벽길을 걷노라면 태백산맥을 타고 서쪽에서 동으로 내려오는 봄바람이 몹시도 매서웠다.

우리는 골골이 불어오는 그 바람에다 ‘쇳골은 쥐바람’, ‘밤골은 여우바람’ 하는 식으로 제각각 이름을 붙여 부르곤 했는데, 쇳소리를 내며 어린 귀때기를 에는 바람은 마치 들쥐 떼나 여우가 할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꽃샘추위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데도 말이다.

올해 유별나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4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주춤거리고 있다. 그 바람에 주위는 온통 감기 환자들이고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여기저기 기침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이 고맙기 그지없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대기大氣는 감기感氣바이러스를 옮기듯 방사능을 싣고 돌 때 편서풍이 없었더라면.......

우리시대 위대한 가수 조용필의 노래 가운데 ‘바람이 전하는 말’이라는 제목이 있다.
“내 영혼이 떠나간 뒤에 행복한 너는 나를 잊어도......”로 시작되는 노래인데, 말하자면 세상을 떠난 한 영혼이 이승에 남은 누구에게 간절히 전하고자 하는 사연이 담긴 노래이다.

가사는 이어서, “바람이 불어오면 귀 기울여 봐”라 하고, 바람에 꽃잎 날려 꽃잎 지고, 낙엽이 떨어져 연기와 함께 타버리면, 그 재속의 불씨에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하여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이란 따뜻한 거야”라고 살아있는 그 누구에게 위로하는 말을 바람을 통해 전하고 있다.

일찍이 화담 서경덕은 바람이란 대기大氣의 변화라고 했다.
친구였던 재상 김안국이 부채를 선물하자 ‘부채를 흔들면 바람이 나오는데 바람은 부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부채는 氣를 밀어내고 氣가 몰려서 생기는 게 바람’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氣일원론자였던 그는 세상 만물은 氣로 이루어졌으며 氣가 모이고 흩어짐의 변화에 따라 만물의 형태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을 빌리자면, 氣가 아주 옅은(薄) 것이 공기空氣이고 워낙 두터워서(厚) 지구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원자핵이라 할 수 있다. 화담은 氣가 정밀하고 오묘하게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사람이고 소멸하여 氣가 흩어지면 大氣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했다.

실제로 사람의 몸은 수분이 70%가 넘는다. 소멸하여 그 수분이 흙으로 돌아가면 꽃잎도 틔우고 낙엽의 향기도 피울 테지만, 산소와 수소로 大氣에 흩어지면 내가 숨 쉬는 空氣 한 모금이나 이마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문득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이 되기도 할 것이다.

지난 3월에 불어온 고마웠던 편서풍은 일본에서 발생한 방사능을 동쪽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지구 북반부의 대기의 이동을 따라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을 싣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비록 극미량이지만 그 머나먼 태평양과 북반부에 완전히 털어내지 않고, 기어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우리에게 세슘을 보여주었다. 그 바람은 마치 우리에게 무엇을 간절히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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