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위원 임명룡 
전국에서 봄꽃 축제가 한창이다. 잠시 일손을 놓고 자연이 베풀어 준 향연에 취해볼 만하다. 필자에게는 봄꽃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져야 할 몇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먼저 꽃 보다 중요한 게 그 꽃을 펼쳐놓은 배경이다.

이왕이면 기암절벽이 좋겠지만 아무튼 계곡이 있어야 하고, 계곡에는 녹음(綠陰)이 옅게 물올라야 좋다. 아래에는 반드시 벽파(碧波)가 이는 냇가나 강물이 흘러야하고, 시내와 계곡을 오가는 백구(白鷗)나 백로(白鷺)가 두어 마리 날아야 제 맛이다.

이러한 배경이 갖춰진 다음에는 매화(梅花)든 이화(梨花)든 상관없다. 물론 복사꽃 살구꽃 벚꽃 중에 아무 거나 흐드러질수록 좋다. 여기까지는 기본이고 중요한 부분이 하나 더해져야 하는데 바로 어주자(魚舟子)다.

퇴계 이황의 <청량가淸凉歌>는 앞에 제시된 장치가 모두 갖춰진 풍경을 읊은 시조다.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峰)을 아나니 나와白鷗(백구)/ 백구(白鷗)야 헌사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桃花)야 떠지지마라 어주자(魚舟者)알가 하노라/ (청량산 열두 봉우리 빼어남을 아는 이는 나와 흰갈매기 뿐이로세/ 말 못하는 갈매기야 알릴 수 없겠지만, 못 믿을 것은 저 복사꽃이로다/ 흘러가는 복사꽃을 어주자가 보노라면, 세상에 무릉도원 알려질까 하노라)

어주자 이야기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비롯했다. 진(晉)나라 때 무릉이란 곳에 살던 한 어부가 강물에 흘러 내려오는 복사꽃잎을 따라 가보니 도화림(桃花林)이 나타났고, 동굴이 하나 있어 들어갔더니 탁 트인 딴 세상에 기름진 논밭과 도인 같은 사람들이 안락하게 살고 있었다.

저마다 어부를 초대해서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바깥세상에는 알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어부가 돌아와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그곳에 갔더니 찾을 수가 없었다는 이른바 무릉도원 이야기다.

퇴계의 청량가는 도화원기를 용사(用事)하여 청량산이 곧 무릉도원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그 후 율곡 이이(李珥)는 <고산구곡담>에서 ‘벽파(碧波)에 꽃을 띄워 야외로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勝地)를 모로니 알게 한들 엇더리’로 무릉도원 홍보에 새로운 버전(?)을 제시했다.

울진 선비 동명(東溟) 황중윤의 한시 <광흥사廣興寺>를 보면 옛날에 울진 광흥사 일대가 위의 조건을 모두 갖춘 무릉도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谷號操琴體勢圓(곡호조금체세원)/淸溪一曲足盤旋(청계일곡족반선)/春來莫放桃花泛(춘래막방도화핍)/恐引漁舟入洞天(공인어주입동천). (골 이름은 조금이나 형세는 둥글어서, 청계 일곡이 구비 구비 돌만하구나. 봄날 복사꽃일랑 흘러 보내지 마오. 어주자들 꽃 따라올까 두렵다오.)

필자도 오래전에 광흥사 아랫마을 ‘한실’에 들렀다가 살구꽃에 파묻힌 마을이 하도 아름다워 현기증이 났던 기억이 난다. 한실은 이름 그대로 ‘큰 계곡(大谷)’이다. 굽이돌아 평해 남대천, 이산해의 팔선대에 이르면 옛날에는 나룻배와 어주자가 있어서 풍광이 무릉이었을 것이다.

나룻배의 노 젓는 소리는 또 얼마나 좋은가. ‘至菊悤 至菊悤 於思臥(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원래 음(音)은 ‘디국통 디국통 어사와’였다. 후에 구개음화 현상으로 ‘지국총’이 된 것이다. 至菊蔥으로도 표기했는데 파(蔥총-채소)는 두드리면 ‘통통’ 소리가 난다. ‘디국통, 디국통’ 얼마나 사실적인 표현인가. 나룻배 노 젓는 소리를 들으며 꽃구경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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