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주 시인. 길 위의 인문학 기획위원
사람 중의 사람을 명인(名人)이라 하고, 물건 중의 물건을 명품(名品)이라 한다. 그렇다면 나무 중의 나무는 소나무고, 소나무 중의 소나무를 울진금강송이라고 하는데, 소광리 울진금강송군락지에 한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울진금강송을 명목(名木)이라 불러도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 수긍할 것이다.

울진금강송 군락지에 도착하자마자 미인송(美人松)에 와락 안겨 미인송의 우듬지와 끝간 데 없는 봄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생각에 얼음장 풀리는 계곡물 소리도 화답하고, 우주에 미만해 있는 리듬을 모아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도 화답했다. 새들도 그렇다고 한 소리 보탰다.

미인송을 쓰다듬으며 다시 생각했다. 이런 명목을 아는 사람만 알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이, 세계인이 알게 해야 된다. 그렇게 만들려면 먼저 울진인이 울진금강송의 바탕과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울진금강송은 저절로 자랄 리가 없다. 비록 나무가, 햇빛과 물과 공기를 버무려 스스로 자족하는 삶을 산다 하더라도 저 깊이 모를 끝간 데까지, 실뿌리가 자갈을 움켜쥐고 바위를 뚫으며 물을 길어 올리거나, 비록 손발과 얼굴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터지면서도 수피(樹皮)는 번개와 천둥 이기고 금강송을 보호하고, 가지는 한줌의 햇살이라도 더 받아서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 강인한 생존 의지가 하늘을 감동시켜 하늘은 그의 영토를 울진금강송에 허락했다 생각하니 다시금 용솟음치는 삶의 의지가 생겼다.

그랬다. 내 몸속에도 소나무 같은 DNA가 있을 것이다. 솔밭에서 솔의 정기를 빨아 들이는 우리 어머니의 태교와 청솔가지를 태우며 아궁이에 밥을 해서 먹던 것하며, 소나무집에서 솔향으로 할아버지의 담배댓진을 이긴 내 폐도 그럴 것이며, 송편, 솔잎차 등 어느 것 하나 소나무에 빚진 것이 없을 정도다. 특히 내 삶을 마감할 때 저 소나무 관에 싸여 또 소나무에 기대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면 나는 소나무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가 나무랄 것인가?

하지만 나는 울진금강송 DNA는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울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조상의 가계 어디쯤에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나는 울진금강송 혜택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울진으로 오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울진인은 울진금강송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니 나보다는 더욱 훌륭한 가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런 훌륭한 명목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자. 이름도 짓자. 김현아 나무, 추신수 나무, 빌 게이츠 나무, 워렌 버핏 나무, 엄홍길 나무 등 세계를 빛낸 한국인과 세계인의 이름을 붙여 주자.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기 이름도 붙여 주자.

태교의 숲을 만들어 전 세계 가임 여성을 불러 모으고, 금강송 정기를 받게 해서 ‘위풍당당’한 세계인으로 자라게 하자.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울진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리 울진금강송을 세계화 하는데 어려운 일도 아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금강송 폐목을 활용해 생활용품을 만들고, ‘행운의 연필’을 만들어 전국에 있는 고3 수험생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자. 그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면 초대해서 울진금강송군락지를 보여주자. 명목, 명품. 명인은 셋이 아니다. 하나라고 스스로 알게 해 울진금강송을 알리자, 그 학생도 자라서 울진금강송을 알릴 것이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