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산병원 문덕복 간암 수술 전문의 아버지

SBS방송 ‘세상에 이런일이’ 소개돼 7회나 앵콜방영


자녀교육의 핵심은
“적선적덕 복덕지가 필유여경” (積善積德 福德之家 必有餘慶)

“전 세계 각국의 수백, 수천 명의 말기 간질환 환자들이 간이식을 통해 생명을 되찾고 있습니다. 한국의 한 간이식 팀이 독자적인 수술 방법을 통해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아침 7시 한국의 서울아산병원입니다. 이 외과의사들은 전날 16시간 동안의 수술 후에도 여전히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 병원의 간이식 수술 팀은 320례의 수술을 함으로써 ‘한 해 세계 최다 수술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수술을 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간이식수술이 뇌사자의 장기로 이루어지는 반면, 한국은 대부분의 경우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떼어낸 간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이 이루어집니다.

이곳의 수술성공률은 96%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공률입니다.“ 이것은 영국 ABC 방송의 찬사다.

이처럼 서울 아산병원 암센터에는 세계 최고 간이식 드림팀이 있다. 생명을 향한 끝없는 도전, 세계 최고 칼잡이라고 알려진 이승규 박사가, 수술이 특히 어렵다는 간암, 췌장암, 담도암 분야 15명의 전문의들을 지휘한다. 그런데 그들 중 울진 출신의 문덕복(43세) 박사가 이승규 박사의 수제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문박사는 울진초`중`고교에서 일등 한번 놓치지 않았고, 경북대의대 입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국가의사 자격시험까지, 그는 거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유학도 가지 않았던 그는 홍콩에서 미국의사 자격시험을 치렀다. 응시자 1백명 중 4명 합격자 명단 속에 당연히 그가 있었다.

2008년에는 파리에 열린 세계간이식학회 논문 발표 대회에서 ‘생체 간이식의 유용성’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대상을 수상, 상금 1천만원을 받았다. 09년 서울에서 있은 간암학술대회에서는 논문 최우수상을, 미국 간암학회에도 발표해 미국학회 연구요원으로 발탁됐다. 이로서 세계적 권위의 의학박사가 되었고, 이승규 박사의 수제자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 울산의대 에서는 그를 부교수로 임명했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울진의 아들이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훌륭한 조율사가 있게 마련이다. 대개는 그의 어머니나 아버지다. 문종대(72세) 선생이 아버지다. 그의 아들이 이처럼 한국의 명의가 될 것이라는 평판을 얻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종대 선생의 아들은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울진신문은 이번 호를 통해 문선생의 자식 사랑과 교육에 대해 공부한다.

문선생은 시조 문 다성의 남평문씨(南平文氏) 후손이다. 문다성은 고려를 세울 때 큰 공을 세워서 고려, 조선의 유서 깊은 명가 중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고, 고려시대 목숨을 걸고 헐벗은 우리 민족의 입성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후예이다.

그의 선조는 약 4백년전 구미에서 입향했고, 그는 죽변면 화성리 용장 마을 남평 문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한 때 마을 총 60가구 중 50여 가구가 남평문가였다. 문선생은 머슴을 둘이나 두었던 먹고 살만한 대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울진중학교 재학시절 특히 영어에 뛰어났다. 북평해양고를 거쳐 단국대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춘천 누님 집에서 통학했다. 누님이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새벽 4시반 집을 나서야 했고, 저녁 9시 20분경에야 귀가하여 저녁을 먹었으니, 그의 성실성은 젊은 날부터 길러졌다.

학사고시 시험을 거쳐 중등교사 자격증을 딴 뒤 잠시 주인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30세에 울진여중 영어교사로 발령을 받아 주로 울진군내 중`고교에서 근무하다 수년전 정년퇴임했다.

그의 하루 일과를 통해서 자식 사랑과 수도자적인 면모를 읽어보자. 오전 5시 기상, 15분간 명상을 통해 정신을 맑게 한다. 이후 35분간 반야심경, 천수경을 외우는 것을 시작으로 약 한 시간 동안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께 기도한다. 기도 내용은 충과 효, 그리고 자손들에 대한 기원이다. 그리고 약 40분간 간 집안 청소 후, 15분간 요가 겸 아침 체조를 한 후, 15분간 뜨락 청소를 한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 와 석가모니불께 11배를 드리며, 가족 전체의 건강과 소원성취를 기원한 후 8시 40분 경 아침식사를 한다. 약간의 휴식 후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경이면 집을 나서 한 시간 동안 산책 겸 사람들도 만나고, 볼 일을 본다. 3시반에 다도를 즐긴 후 4시에 저녁을 먹고, 5시에 TV채널 18번을 틀어 약 20분간 대중가요를 감상한 후 전문 뉴스채널을 틀어 뉴스를 듣는다.

6시경이면 어김없이 불교방송을 틀어 스님 강연을 듣고, 7시 경부터 약 40분간 책 발간 준비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가, 밤 12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자식들과 문박사의 환자들에 대해서도 쾌유를 위한 기도를 한다.

자신의 하루 분 단위까지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 성실한 그의 생활 태도가 놀랍다. 오로지 기도와 수행, 자식들에 대한 기원이 그의 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에 닿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어찌 보면 극성스러울 것 같은 아버지의 생활과 교훈에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그의 맏아들 문덕복 박사, 아직까지 아버지의 말씀에 거역한 적이 없다 한다. 오히려 고도의 정밀한 장시간 수술을 해 오면서 지금까지 실수 한번 없었던 것은 아버지의 기도 덕분이라며 감사해 한다는 것.

1년에 한번 집을 다녀갈 때도 떠나기 전 그 바쁜 와중에도 오히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집안에 붙여진 그 많은 교훈 글과 집밖의 현판과 비각에 새겨진 가훈을 다시 한번 읽어 정신, 생활 수양의 각오를 다진다고.
문선생은 울진중학교 옆, 울진보건의료원 뒤에 살고 있다. 집 안팎으로 정원수 사이로 부모 신위를 모신 사당을 비롯해서 현판과 비각, 불상이 빼곡하다. 현판을 제외하더라도 석불 7개를 포함, 석탑, 석등과 동물상, 교육비 등 20개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출생지 용장마을 선산에도 조상 숭덕비, 효자비, 자손성공기원비, 자손 수칙비 등 교육비와 자신이 쓴 시비 등 16개의 비각이 보는 사람들을 압도시킨다. 그의 서재에는 또 문선생과 자녀들이 읽은 고전을 비롯해 2,300여권의 장서가 진열돼 있다.

네 아들과 4명 며느리들은 1박사, 3석사, 5학사이다. 의사, 약사, 은행원, 간호사, 교사 등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이 받은 480개의 상장과 자격증이 액자에 넣어져 서재에 고스란히 게시돼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해주고,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하는지의 좌표를 설정해주고, 후손들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의 교훈을 증거물로 제시해 주려는 것이다.

네아들 모두 수재였다. 학교에서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둘째 문덕역(43세)은 강원공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인천영흥발전소 차장이고, 셋째 문덕수(42세)는 강원공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한전기공 차장으로 인도차이나 화력발전소 건설 감독관으로 나가 있다. 넷째 문덕재(36세)는 중3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학업에 지장을 받았으나, 안동대 사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평택공고 부장교사로서 3차례나 대입수능 출제위원에 선발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문선생이 실제로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 길렀는지 살펴보자. 새벽 4시 반이면 기상시켜 울진중`고 운동장을 두 바퀴 뛰게 한 다음 평행봉을 나이만큼 하게 한 후, 찬물에 세수를 시킨다. 1시간 반 아침공부를 한 후 8시10분에 등교를 시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 6시반 까지는 자유다. 잠을 자던 놀러가던 상관하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후 TV뉴스를 함께 본 후, 저녁 7시부터 30분 정도 고전을 읽히고, 초등생은 10시까지, 중학생은 11시까지, 고등학생은 12시까지 공부를 시킨 후 재운다.

문선생은 아이들을 이처럼 강하게만 키운 것처럼 보여 사람들은 그를 스파르타식 교육자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면, 물론 아이들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라 주었지만, 목소리도 조용하고, 딱 한 번 한 아이에게 종아리를 친 적 밖에 없을 만큼, 매우 자상한 분이다.

그는 교과 공부만 시키지 않은 전인 교육자였다. 이때 문박사는 삼국지, 초한지를 읽고, 대망 등 수많은 고전을 독파해 전국 글짓기대회 차상, 독후감대회 우수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다. 또 경북대의대 시절 도내 의대생 연합운동회에서 마라톤 우승은 늘 그의 차지였다.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적선적덕 복덕지가 필유여경” (積善積德 福德之家 必有餘慶)이다. 그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 반드시 가문에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문박사가 얼마나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슨 일이던지, 공경한다. 아버지로부터 부탁받은 환자에 대해서는 진료시간을 넘겨서라도 결코 모른 척하지 않는다. 급한 상황에 처한 울진사람들이 문선생을 찾아가 대한민국 최고병원, 최고 의사인 문박사를 통해 특진과 수술을 받아 완쾌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아버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뿐이다.

문선생의 특별한 가르침은 온 세상에 알려졌다. SBS방송의 “세상에 이런일이” MBC “전국시대”와 “살맛나는 세상”, KBS2의 “세상의 아침” 등 전국 유수 방송에 경쟁적으로 소개되었다. 특히 세상에 이런일이 프로에는 06년 8월3일 408회에 방송된 이후,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7번이나 앵콜방송됐다.

문선생은 413페이지 분량의 문집을 내년 말에 발간할 계획이다. 이 속에 모든 것이 들어 간다. 고전과 역사적 인물들의 좋은 말씀과 조상들의 숭업, 자신의 시화, 후손들에게 주는 교훈, 가족사와 사진물이 들어간다.

그런데 아직 그의 비각 설치사업은 끝나지 않았다. 60여평의 땅을 더 구하여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조각하여 석비를 세우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기도 또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맏아들 문덕복 박사에 대한 염원이 크기 때문이다.
허준, 화타와 편작 같은, 아니 슈바이쳐 같은 인물이 되라고 기도한다. 매일 한다. 시간 나는 대로 한다. 오직…한다. 


                                                        /전병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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