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주

길 위의 인문학 기획위원, 시인

지난 사월, 봄빛이 내리는 왕피천 하구에 갔다. 원두(源頭)에서 하구까지 61km를 잇달아 흘러온 푸른 띠 같은 한줄기 물들이 동해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경계에 파도꽃이 피어났다.

민물이 소멸하면서 바닷물로 신생하는 순간은 비너스의 탄생처럼 민물과 바닷물의 포말이 서로 섞여 하얀 꽃으로 피어났다.

수면 위로 봄햇살이 반사되어 은가루를 뿌린 듯 눈이 어른 거렸고, 왕피천 기슭에서 겨우내 움추렸다가 얼음장 풀리자마자, 꽃을 피우는 진달래와 개나리, 산벚나무 꽃잎이 봄바람에 날려 수면 위로 흐른다.

왕피천의 물은 모든 물이 그러하듯이 지표면을 흐르는 물이나 지하수를 흐르는 물이나 바다로 흘러가고, 증발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순환 과정을 밟는다.

빗물이 옹달샘이 되고, 시내가 되고, 천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들면서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왕피천도 발원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흐를 때는 자연 현상이지만 물가에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 곁을 흐를 때는 인문 현상이 된다. 매화천의 물을 합수하고 불영 계곡의 물을 받아들여 망양정과 엑스포 공원 사이를 유장하게 흘러 동해로 나아갈 때는 통합인문학 현상이 된다.

왕피천 물가에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사나 울진 역사도 왕피천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역사를 떠올리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왕피천을 보고 허무한 인생을 가늠하는 철학자가 되기도 하며, 문학이나 미술, 음악으로 왕피천을 형상화한다. 자연과학자들은 왕피천에 사는 금강모치, 쉬리, 은어, 갈겨니를 보고 좋은 물, 약간 좋은 물로 분류하지만 사회,경제학자들은 자연 자원을 활용해 지역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NGO들은 왕피천을 보호하려고 한다.

왕피천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으로 위대한 것이지만 인간들은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왕피천을 활용한다. 왕피천은 맑고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원시림 같은 왕피천이라면 맑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랴! 그러한 자연은 그러한 자연을 원하는 사람에게 주면 된다.

아름다움은 생활화해야 한다. 생활 속에 아름다움이 있을 때 의미가 생기고, 내면화 되어 우리들의 삶이 향상된다. 왕피천을 보호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묘책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왕피천은 시베리아를 유유자적 흐르는 아무르강이 아니다. 세계 최장의 미시시피강도 아니다. 고작 18.5Km를 급류와 탁류로 흐르는 성질 급한 강이다. 급류는 다스리고, 탁류는 정화해서 친수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통합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서 자연, 인문, 사회경제 전문가들의 컨센서스를 모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이 봄 지나면 곧 여름이다. 여름에 몰아치는 성정 급한 왕피천을 어쩔 것인가. 갈수기의 왕피천을 어쩔 것인가!

내년 4월 초순에도 나는 왕피천 하구에 서 있을 것이다. 왕피천과 동해가 서로 조응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이 하구에 나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춘객들이 왕피천 원두에서 하구까지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고 천변을 따라 걷다가 망양정을 오르는 아주 편안한 뒷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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