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식 주필 >
지난달 용인에서 개최된 1박2일 전국 지역신문 하계수련회에 다녀왔다. 전국의 지역신문협회 200여개 회원사 가족 약 5백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튿날 아침 첫 시간에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특강이 있었다.

이 장관의 고향인 영양에는 지역신문이 없어 참석하지 않았고, 인근 영덕의 지역신문사도 불참하여 울진에서 간 나는 더욱 친근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의 연설이 감동적이었다. 중간 박수가 쉴새없이 터졌다.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의 국정진단과 정책방향을 들려주었다.

돈도 없지만, 30년 전부터 살던 소박한 집의 문고리 하나 고치지 않고 지금까지 청빈한 삶을 살아 왔다는 그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이야기를 하면서 매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단연코 이런 일은 이 땅에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며, 한국사회에서 부정부패를 없애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그의 확고한 국정방향이 내 가슴을 크게 울렸다.

그는 민심의 소재를 정확히 읽고 있었으며, 시대적으로 군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화두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중세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던 것은 당시 실력자들이 민심의 소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무라이의 시대였다. 군웅할거 시대로 싸우고 죽이고 할복하고 먹고 먹히는 일본 전체가 전쟁 도가니로 백성들은 지쳐있었다. 당시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몸을 오직 주군에게 바쳐 칼날에 목을 베이거나,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 공을 세워 출세하는 길 두 가지 뿐이었다.

야마오카 쇼하치의 12권짜리 ‘대망’을 읽어보면, 거의 전편이 온통 죽이고 할복하는 전쟁 이야기다. 그런데 오다 노부나가가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평정하고,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 국민들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메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평화’였다. ‘신불’의 뜻이라며, 시대적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세 영웅은 일본 땅에서 사람을 덜 죽이기 위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신불의 뜻을 실천했다. 히데요시는 천하평정후 남아도는 사무라이의 힘을 주체하지 못해 중국을 정복한다며, 조선을 침범하여 또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폐악을 저질렀지만.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명을 받아들여 전쟁 대신 맏아들을 할복시키고, 본부인을 제거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어머니와 본부인을 이에야스에게 인질로 내주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들은 오직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작은 것은 양보하고, 전쟁보다는 신불에 뜻을 받들어 자기희생을 받아들였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반공이 전 국민들에게 먹혀드는 메시지였다. 그 다음에는 먹고 살자는 경제개발이었고, 다음이 민주화와 사회안정, 소득재분배와 사회 안정망구축이었다. 현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경제 재 부흥’ 이라는 공약으로 국민들과 소통하여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화두가 국민들 마음속에 가장 깊숙히 스며들어갈 수 있는 소통의 메시지일까. 그것은 이재오 특임장관이 부르짖었던 “부정부패를 없애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한국사회 건설”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대권후보 중에 누군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메시지를 가장 먼저 앞장세우기를 바란다. 어저께 모 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고용노동부 조사결과 커피전문점 알바생에게 주휴수당을 주지 않은 액수가 197억원에 달해 공정사회가 요원하다고 한다. 그들의 시간급은 3천원 내외로 쥐꼬리만 하다.

최근 안철수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 며 사태를 직감했다. 현재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정치인들은 바로 읽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과 행태로서는 국민들과는 불통이다.


                                                             /전병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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