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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칼럼> 더불어 사는 삶, 아름다운 인생
2011년 09월 30일 (금) 17:46:50 [조회수 : 5052]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 장 재 응

재경울진중·고등학교 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중 16회)

왜 사느냐? 이 물음에 사람들은 대개 행복(幸福)하기 위해 산다고 말한다. 삶의 목표는 행복 추구에 있다는 의미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삶의 만족에서 체감된다.

만족이란? 바로 즐거워하는 마음으로부터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 즐거워하는 마음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따뜻한 손길로 이웃을 도와주며 나눔의 미덕을 행할 때,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상태가 바로 흡족이요, 진정한 행복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자신만을 위하는 개인적 삶과,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삶이 있다. 개인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사회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보다 고통을 겪는 이웃을 먼저 생각한다.

사회 제도의 부조리와 모순으로, 또 상황적 빈곤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을 돕는 데 있어 늘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세로 다가선다.

이러한 삶이 바로 ‘더불어 사는 삶’이요, ‘아름다운 인생’이다. 유교의 인(仁)이나 불교의 자비(慈悲), 기독교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생에서 공덕(功德)을 많이 쌓아야 내세(來世)의 행복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종교의 본질이다.

백사불여일행(百思不如一行), 여러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 이제 나눔과 베풂의 삶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우리 인생에서 10대(지우학, 志于學)와 20대(약관, 弱冠)를 배움에 뜻을 두고 주어진 여건에서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시기라고 한다면, 30대(이립, 而立)와 40대(불혹, 不惑)는 인생의 목표를 세워 주체성을 가지고 진력(盡力)하는 시기다.

50대(지천명, 知天命)와 60대(이순, 耳順)는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지녀야 하는 때, 즉 이제까지 축적해 놓은 것을 베풀어 주는 기분 좋은 나잇대다.

다시 말해, 30, 40대가 멧돼지처럼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재산을 축적하는 시기라면. 50, 60대는 기린처럼 사방을 살펴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축적된 재물을 나누어야 하는 때다. 인생 중 베풀며 살 수 있는 이때가 가장 아름답고 즐거워 인생의 절정기이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자기중심적이어서 베푸는 데 아주 인색하기 때문이다. 온갖 아만(我慢)과 고집, 자존(自尊), 명예, 권력 등 세속적 욕망에서 탈피하지 못한다. 아귀다툼에 여념이 없고,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이는 성취욕의 발로가 아니다. 바로 미망(迷妄)이다. 정도(正道)를 넘어서서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주변에 해악(害惡)을 끼친다.

이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냉철한 반성(反省)과 자기성찰(自己省察)이 있어야 한다. 둘째,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예의(禮儀)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염치(廉恥)가 있어야 한다.

이 둘은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해 준다.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야만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가 비로소 생긴다. ‘부의 사회 환원’이나 ‘공정한 사회’라는 요즘의 화두(話頭)는 바로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지금부터라도 ‘더불어 사는 삶’을 찾아가야 한다. 진리는 가까이 있다. 우리 주위에서 지금 찾아가자. 내 부모와 형제, 내 친구, 그리고 이웃,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찾아 보듬는 일부터 시작하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주지도 받지도 않는 유아독존적 삶을 살 것인가? 주고받는 자타(自他) 동행(同行)의 삶을 살 것인가? 이는 우리의 선택 문제이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라고 했다.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양 갈래로 갈라진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어리석은 선택과 지혜로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는 다음 일화가 말해 준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길을 두 사나이가 걸어간다. 너무 지치고 허기져서 민가를 찾아 헤맬 때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두 사나이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 한 사나이는 그냥 방치하면 얼어 죽으니 데리고 가자고 말했고, 다른 사나이는 노인을 데려가다가는 함께 지쳐서 모두 죽는다고 반대했다.

논쟁 끝에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한 사나이는 두 사람을 남겨 두고 먼저 떠나 버렸고, 한 사나이는 정말 힘들었지만 노인을 업고 갔다. 노인을 업은 사나이는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여 추위를 이겨 낼 수 있었고, 업힌 노인도 사나이의 열기(熱氣)로 의식을 회복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그 무서운 추위를 이겨냈던 것이다. 노인을 업은 사나이는 드디어 마을에 다다른다. 인가에 도착하기 직전, 길 위에서 동사(凍死)한 사람을 발견한다. 다름 아닌 혼자 살겠다고 먼저 떠난 사나이.”
이 일화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생즉사(生卽死)요, 사즉생(死卽生)의 철리(哲理)가 여기에 있다. 혼자 즐겁고 행복하자는 태도는 자멸 행위요, 다 같이 즐거운 사회, 다 같이 행복해 하는 세상이 바로 공평한 사회요, 즐겁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닐까?

가끔씩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는 기분 좋은 뉴스를 들을 때가 있다. “봉천동 재래시장 채소장수 할머니 전 재산 2억 원 서울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하다.” 순간 얼굴이 붉어진다. 존경심이 절로 난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운 자세는 정말 아름다운 법이다. 덜 먹고, 덜 입고, 덜 자고서 모은 재산을 쾌척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일생을 마친 다음에는 모은 것이 아니라. 준 것만이 남는다. 악착스레 모은 돈이나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지만, 숨은 적선(積善)이나 진실한 충고(忠告), 따뜻한 격려(激勵)는 영원히 남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는 삶, 나의 이익보다는 남의 이익을 먼저 챙겨주는 삶, 받기보다는 주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삶이 진정한 성공과 성취이고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21세기 선진 사회로 나아가는 첩경은 나눔의 삶, 기부 문화의 정착에 있다.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의 대학들은 잘 마련된 장학제도는 돈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은 없게 만든다. 공부할 의욕만 있으면 동문이나 독지가가 낸 장학금으로 학교에 다닌다. 장학금 수혜자 본인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모교에 장학금을 당연히 기부하는 선순환(善循環)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 이 얼마나 부럽고 본받을 선진사회 시스템인가?

미국의 갑부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그리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손정의’는 엄청난 기부금을 기탁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이것이 ‘부(富)의 사회 환원’이요,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이다. 이젠 우리도 이러한 시대적 선순환의 조류를 타야 한다. 혈족에게 상속하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자.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과, ‘부의 사회 환원’이라는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나고,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이라 하듯이 재물이 있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해,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여 부를 축적한 후 자신을 성장하게 한 국가와 사회, 모교에 기부하는 문화를 확산하고 정착하게 하여, ‘더불어 잘 사는 행복한 나라’ 건설에 바로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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