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10월5일 발행된 울진신문 창간호

 

■ 창간초기 약사

‘언론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언론을 택하겠다.’ 이는 미국 제3대 대통령 제퍼슨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갈파한 말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일찌감치 꽃피게 된 것은 독립초기 위대한 지도자들의 이러한 언론관에 기인한 참된 민주주의의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는 국민들의 눈과 입을 막고 자유가 억압당하는 지배권력체제이다. 1980년대말부터 1990년 초,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전 국민의 민주화 요구가 사회 곳곳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기였다.

독재권력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역사의 전환기였다. 언론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의 메이저 신문 몇 개가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시대에 한겨레신문의 창간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언론사적으로 물론 세계언론사적으로 유례없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그것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을 바라는 국민을 대상으로 창간 주주를모집하여 탄생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군 단위 지역에서도 지역의 여론을 선도하고, 언론문화창달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최초가 1988년 12월 1일, 전국 군단이 지역에서 창간된 홍성신문이었다. 이러한 지역언론창간의 움직임은 울진신문 창간에도 그 영향을 끼쳤다.

1991년 1월, 김일진, 김진문, 전병식 등은 울진신문 창간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창간준비위원회(김일진, 전병식, 권찬동,정후영, 강진철)를 구성하였다. 이후 창간 공보처로부터 정기간행물 등록증(발행인 및 편집인, 전병식) 을 교부받았다.

그해 5월 20일, 사무실을 개소(현 울진중앙로 112번지 3층하고, 창간소식지 3회 발행, 5월 28일, 제호와 심벌마크 확정, 6월 8일, 도경호씨를 창간준비위원장으로 추대, 62인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여 하였다. 간난의 산고 끝에 1991년 10월 5일, 드디어 울진신문 창간호 대판 8면의 1만부를 발행하였다. 이로써 경북에서도 드물게 울진신문이 창간되었다.

이후 울진신문은 정론직필,문향재건,군민총화라는 창간정신으로 군민들의 여론을 선도하고, 각종 소식과 생활정보를 제공하였다. 더구나 1990년대초와 2000년대초, 군민들의 울진원전건설과 핵폐기장설치반대 운동과정에서 호외를 발행하는 등 군민들에게 올바른 여론을 전하기에 노력하였다.

울진신문은 그밖에도 각종 행사를 주관, 왕피천 발원지탐사, 백암산 군민등산대회, 세계프로레슬링대회유치, 안일왕산성답사, 성탄절산타꿈나르기행사, 12령길향토순례, 사진공모대회, 각종모금활동,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한방무료 진료등으로 지역신문으로서 공익적 활동도 꾸준히 하였다. 그러나 그간 재정적 위기로 휴간을 한 적도 있었는데 이는 앞으로도 극복해야할 사안이다. 이제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변화와 발전의 도약기를 맞은 울진신문! 그 20년간 연혁을 간략히 소개한다.

편집자
 

■ 울진신문 창간 발기인 명단

(가나다 순)
강대석, 강진철 , 권찬동, 권찬수, 김기복, 김대규, 김대열, 김동환, 김명인, 김상규, 김석규, 김신규, 김우종, 김일진, 김장수, 김종헌, 김진문, 김진호, 남동희, 남인열, 남종순, 남효중, 도경호, 박금룡, 박기호, 박무일, 박해경, 반재홍, 사영호, 손병칠, 손시화, 송춘길, 씨알회 죽변 사회봉사단체, 전찬일 외 22명, 안병무, 오광성, 오상훈, 윤영준, 윤현수, 이규형, 이상신, 이성우, 이용억, 이원목, 이종삼, 이종하, 임상진 , 장광병, 장상배, 장영성, 장영인, 장운기, 장운용, 장진창, 전병식, 정철수, 정후영, 주광진, 주명영, 주상대, 최상석, 최영우, 최천환, 홍도준, 홍준경 , 황무굉, 황성섭, 황치엽, 황칠성, 황태수

▲ 창간제호 고 남종순 울진문화원장 글씨

 

 

 

 

▲ 창간휘호 윤현수 선생 글씨

         

 

 

 

 

 

 

 

 

 

▲ 92 9.1 울진신문사 주관 세계프로레슬링대회 (포스터)

 

 

 

 

 

 

 

 

 

 

 

 

 

 

▲ 창간준비위원장 도경호씨
연 혁

1991년
- 1월 30일 : 창간준비위 구성
- 4월 13일 : 공보처로부터 울진신문 등록필증 수령(발행인 및 편집인 전병식)
- 4월 25일 : 사무실 개소(울진중앙로 112)
- 5월 3일 : 창간홍보물 배포
- 6월 8일 : 창간발기인 대회 개최
- 7월 ~ 9월 : 창간준비호, 1- 3호 발행
- 9월 : 정원영 초대사장 취임

▲ 초대사장 정원영씨
- 10월 5일 : 창간호 발행(대판 8면 1만부)

 1992년
- 6월 : 백암산군민 등반대회 개최
- 9월 1일 : 세계프로레슬링 대회 유치
- 10월 : 안일왕 산성 군민답사 주관

 1993년
- 4월 : 사무실 이전(읍내8길 27번지)

▲ 91.12.31~92.1.3울진신문 호외 1,2,3호
1994년
- 12월 : 정원영 초대 사장 퇴임

1995년
- 4월 : 휴간

1996년
- 4월 : 사무실 이전(울진중앙로 41-7번지)
- 4월 : 복간(타블로이드 16면 8천부 발행)
- 5월 : 울진동서신문 흡수 통합
- 8월 : 박성조 주필, 전주수 기획실장 영입
- 12월 : 서울지사 개설 (지사장 장진영)

 1997년
- 1월 : 배포방법 개선 (8천부 전량 우편으로 발송)
- 8월 : 칼라판 발행
- 8월 : 경북도 지역신문협회 하계수련대회 주관
- 11월 : 기성이남 남부지사 설치 (지사장 정후영)

 1998년

- 1월 : 대구지사 설치 (지사장 장명기)
- 2월 : 서면사무소 설치 (소장 황천호)
- 3월 : 기성사무소 설치 (소장 김경곤)  - 8월 : 향지회 주관 제1회 향토순례 후원 

1999년
- 1월 : 울진신문 법인 설립 (주식회사 울진신문 대표이사 전병식) 
- 9월 : 본사 홈페이지 개설 
 - 12월 : 전병식 편집국장 전국지역신문협회주관 보도부분 대상수상

2000년
- 2월 : 울진 관광자원 보호 및 개발에 대한 인터넷 주민여론조사
- 7월 : 처음으로 구독료 납부 지로 발송
- 8월 : 사성진 대구지사장 취임
- 12월 : 제5회 성탄절 산타 꿈나르기 행사주관 

2001년
- 7월 : 서울지사를 서울경기취재본부로 승격 주진곤 본부장 취임
- 8월 : 5회째 금오 김홍경 선생 초청 지역주민대상 한방무료 진료실시
- 9월 : 황천호 서면소장 본사 기획실장 발령, 장 명기 전 대구소장 영남지역 특파원 임용
- 9월 : 울진신문활성화를 위한 독자토론회 개최
- 10월 17 : 창간 10주년 기념식 거행 (장수가든)

 2002년- 8월 25일 : 울진신문사 운영협의회 창립총회 를 개최
- 10월 20일 : 제3회 12령길 향토순례 (서면 향지회 주관)후원
- 11월 : 휴간

2003년
- 9월 30일 : 창간12주년 특집 좌담회 개최 진단과 비전, 울진군 문화행정
- 12월 : 제7회 산타방문 꿈나르기 행사 개최

  2004년
- 1월 : 이종혁기획실장 영입
- 1월 30일 : 신춘좌담개최- 원전지원금 어떻게 쓸 것인가
- 4월 1일 : 이규봉 논설위원 퇴임
- 5월 28일 : 조영환 대표 취임
- 8월 : 원특금 사용처 결정에 따른 긴급좌담회 개최
- 12월 : 조영환 대표 퇴임, 이동호 전산실장 영입

2005년
-9월 : 긴급 대담-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김용수 울진군수

   2006년
- 1월 : 방남수 서울지사장 임명,  문도영 영남지사장 임명
- 2월 : 안정권 부산지사장 임명, 임응호 대구지사장 퇴임
- 8월 : 임원식 2대 사장 취임
- 8월 : 창간 15주년 특별 기획 울진군의 대형사업과 핵심현안 진단

 2008년
- 임원식 사장 퇴임
- 6월 1일 : 강진철 편집국장 영입
- 10월 6일 : 창간 17주년 기념토론회 개최
-울진세계친환경엑스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09년
- 6월 : 3대 김종율 사장, 공명식 부사장 취임
- 제1회 디카 사진공모전 개최

 2010년
- 6월 : 사무실 이전(읍내3길 17) 

2011년
- 2월 18일~19일 : ‘김주영작가와 울진 문화 예술인들과의 만남’ 행사 개최
- 6월 : 김종율 사장 퇴임
- 9월 : 울진신문 운영위원회 구성
초대 위원장 공명식, 부위원장 김종한
-10월 7일 : 창간 제20주년 기념식 거행
(울진읍 황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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