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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향 수(鄕愁)
2011년 11월 08일 (화) 09:40:07 [조회수 : 3107]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 윤 석 중
  원남면 몽천출신, 서울거주

객지 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문득 고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사람이 제아무리 부귀공명(富 貴功名)을 누리고 백수(百壽)까지 강령(康寧)한다 하더라도 고향이 없고서야 그 무엇이 복될 것이며 또 그 무엇으로 즐거움을 가질 것인가. 말을 못하는 짐승들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情)이 있다고 한다.“胡馬 北風 首邱初心”이란 말이 있다.

즉 호마(胡馬)는 서 있을 때에 머리를 북쪽을 향하여 북풍(北風)에 의지(依支)하고, 수구초심(首丘初心)떠돌이 습성(習性)을 가진 여우도 죽을 때에는 머리를 자기가 태어난 곳을 향하고 죽는다 하였다.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저버려서야 될 말인가?

누구나 다 바쁜 객지 생활을 하다 몇 해만에 고향을 찾아갔을 때 나오는 느낌은  아!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의 느낌을 들게 해주는 것은 각 지방 나름대로 고향 마을을 상징(象徵)하는 사물(私物)들이 있기 때문이다.

울진읍에서 남쪽으로 가다보면 구리재가 있다. 거기서 1km쯤 가면 서쪽편 양지바른 곳에 길게 늘어앉은 마을이 있다. 그 뒤로 남수산(嵐峀山)이 큰 날개를 펼친 북쪽 끝 목련봉(木蓮峯) 산기슭에 조그마한 마을(원남면 금매리 몽천동)이 내가 태어나 15세까지 자라난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전국 명수백선(全國 名水百選)에 선정(選定)된 몽천(蒙泉) 샘물이 있는데, 샘터 옆 초가집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그리고 이곳의 물과 바위 나무들은 내 어린 시절 친구들이므로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고향을 찾을 때면 그때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평범(平凡)한 산천임에도 감회(感懷)가 새롭다. 내가 살던 영귀정 마을에서 동구 밖으로 나가는 길가 양쪽 밭 울타리에 봄이 되어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나면 그 향기가 너무도 좋았었다. 또 양쪽으로 들어앉은 과수원 샛길을 지나 제방을 넘어서면 아카시아 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제방을 따라 길게 늘어앉은 숲은 느티나무, 팽구나무, 찔레넝쿨, 수양버들이 매화천(梅花川) 서쪽 변으로 약 2,500평이나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하얀 꽃밭을 이루니 그 향기가 퍼져 온 마을을 덮었었고 그 꽃이 질 때면 들과 냇가로 눈 내리듯 꽃잎이 날렸다. 수양버들 나무 밑으로 시원하게 흐르는 매화천은 긴 백사장과 자갈밭을 이루었으니 여름철 이곳에 밤낮 없이 피서(避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특히 여름밤이면 이곳 매화천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욕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가을 달 밝은 밤이면 처녀 총각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적합하였다. 그리고 봄가을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소풍(逍風)장소로 적합하여 이곳으로 많이 찾아 왔었던 곳이다.

마을 뒤 산 밑으로 왕대밭이 길게 있고 집집마다 감나무가 즐비하게 마을을 덮고 있다. 늦은 가을 감나무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빨갛게 익은 감이 타는 듯 붉은 꽃밭을 이룬다. 산 밑으로는 푸르고 마을 안은 붉으니 마을 전체가 푸르고 붉어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그 아름답던 마을이 지난 1959년 사라오 태풍으로 인해 마을 앞 제방이 터져 논밭이 묻히고 대밭과 감나무들이 유실(遺失)되어 줄어들었고 농지(農地)는 다 모래로 묻힌 것을 다시 개척(開拓)함으로 마을이 변천(變天)했다.

나는 가끔 아래와 같이 동시(童詩)를 지어 혼자 흥얼거려 보았다. “저산 너머 동남쪽 내 고향 울진 __ 집 옆에는 샘물이 솟아오르고/ 마당가에 살구 꽃 아름다웠지 __ 산 꿩이 우는 마을 그리워지네/ 아카시아 찔레 꽃 향기 짙은 곳 __ 수양버들 늘어진 앞 냇가에서/ 발가벗고 멱 감던 그때 그 동무 __ 지금은 무엇 하나 보고 싶구나” 우리는 6,25사변이 일어나기 1년전에 샘물 따라 약 500m지점 북쪽(원남면과 근남면 경계 지점)으로 이사를 해서 28세가 되도록 그 곳에서 성장하다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덧 50년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그때의 고향 마을을 한낱 낡은 사진첩이나 망막(茫漠)속에 두지 않고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한다. 또 나의 조상들이 묻혀 있고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으며 내 추억이 서식(棲息)하고 있기에 2.3년마다 고향을 찾는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의 옛 모습은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무언가 허전하고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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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까뮈 2015-08-13 10:35:52

    윤석중님께서 주신 향수를 보니 안동군 임동면 지례는 임하댐 수몰로 인해서
    마을 전체가 물속에 잠겼지만 지금 그리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향수에 젖어드는 알 수없는 고향에 대한 사랑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수구초심"이란 것이 있듯이 사람이란 동물이나 고향을 그리워 하는 것은 동일한 것
    일것입니다..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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