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물장수 타령과 유기장수 타령

염전을 지나 올라가니 날밤[生栗], 날배[生梨], 해송자(잣), 은행, 모과 날감[生枾], 능금[林檎] 같은 과물을 파는 모전(毛廛)이 나왔는데, 맨상투에 수건 질끈 동여맨 장사치가 외쳐 댔다.

「삼월에는 청귤이요 사월에는 살구·앵두라. 유월에는 능금· 자두, 칠월에는 배·잣에다 호두와 청포도로다. 팔월에는 홍시·대추·밤에다 구월에는 석류에 산포도· 다래로다. 시월에는 유자· 은행·곶감에 동짓달에는 당유자요, 섣달에는 유감이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소. 강원도 정선 금배[金色梨], 평안도의 홍배[紅梨], 곡산(谷山)·이천의 문배[大熟梨] 에다 영암·함평의 석류요, 온양·남양(南陽)의 홍시에다 지리산 곶감이요, 상주·밀양 밤에다 보은의 대추며 예천의 모과요.」

모전을 비켜 가니 신주목이나 주독(主 )·지방(紙榜)을 파는 세물전이 나왔는데, 서울 모교(毛橋) 언저리에 뜨르르한 샌전*들 못지않게 물화들을 갖추어 놓았다.

세물전가 밑을 돌아 나가니, 유기 난전들이 쫙 벌이고 앉았다. 조반기(朝飯器), 대접, 주발, 탕기, 보시기, 종지, 바리, 발탕기, 쟁첩, 양푼, 쟁반, 제기(祭器), 접시, 향로, 요강, 촛대, 조치, 타구(唾具) 들이 즐비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고, 활 당긴 김에 콧물 씻더라고 유기장수도 선길에 외쳐 댔다.

「결세 좋다 안성 유기, 소리 좋다 정주 납청(納淸) 방짜, 도듬질 좋다 김천 방짜, 떡맛 좋은 놋양푼에 장맛 좋다 놋탕기, 살결 좋은 놋요강, 분벽사창에 놋촛대요, 칠첩반상기 입맛 대로 들여가시오.」

약소한 밑천으로 난전을 벌이고 있는 황아전, 망건전(網巾廛), 입전(笠廛), 도자전(刀子廛)을 지나니 드팀전*이었다. 백목전(白木廛), 청포전(靑布廛), 입전(立廛)*이 즐비함이 어지간한 대처의 저잣거리를 방불케 하였다.

향시(鄕市)의 크기라면 경기도 광주 사평장(沙平場)·송파장, 안성 읍내장, 교하(交河) 공릉장(恭陵場), 충정도의 강경장, 직산(稷山) 덕평창(德坪場), 전라도의 전주 부내장(府內場), 남원 읍내장, 강원도의 평창 대화장(大和場), 황해도의 토산(兎山) 비천장(飛川場), 황주 읍내장, 봉산 은파장(銀坡場), 경상도의 창원 마산포장(馬山浦場), 평안도의 박천(博川) 진두장(津頭場), 함경도의 덕원(德原) 원산장(元山場)을 꼽을 만하였으나, 안동의 삼베장도 그에 못지않아 잇속을 노리는 장사치들끼리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그러나 드팀전 모퉁이를 기웃거려 보아도 번듯한 포전(布廛)은 눈에 띄질 않았고, 간혹 상목(上木)을 낀 촌것들이 드팀전 어름을 기웃거릴 뿐이었다.」

*샌전 : 제사에 쓰는 도구를 파는 가게.
*드팀전 : 여러 가지의 피륙을 팔던 가게.
*입전 : 선전( 廛). 조선 시대에, 비단 팔던 가게. 한양이 도읍이 된 뒤 제일 먼저 생긴 전으로, 육주비전(六注比廛) 가운데서도 규모와 자본력이 가장 우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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