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보타령〉

봉노가 희미하게 밝았지만 부들자리에 등 붙이고 누운 세 사람 누구도 꿈쩍하지 않았다. 뼘가웃 곰방대 하나로 어지러운 심사를 달래기에는 아무래도 거북했던지 석가가 문득 천장을 쳐다보며 곰보타령을 읊조렸다.
「칠팔월 명일에 얽고 검고 바둑판 장기판 고누판 같고, 멍석 덕석 같고, 철둥덕석 고석(蠱石)매 같고, 때암장이 발등 같고, 우박 맞은 잿더미 같고, 진사전(眞絲廛) 기둥, 선전(渲廛) 마루, 연죽전(煙竹廛) 좌판 같고, 한량놈의 포대 같고, 과녁나무에 앉은 매미 잔등 같고, 상하 미전(米廛) 멍석 같고, 경상도 문경새재로 건너오는 꿀 항아리 초병같이 아주 무척 얽고 검고 푸른 중놈아. 네 무슨 얼굴이 어여쁘고 똑똑하고 맵자하고 얌전한 얼굴이라고 시냇가에 내리느냐. 고기가 너를 그물 벼리로만 여겨 수많은 곤쟁이, 송사리, 눈 큰 준치, 키 큰 장대, 머리 큰 도미, 살 찐 방어, 누런 조기, 넓적 병어, 등 굽은 새우가 아주 펄펄 뛰어 넘쳐 달아나는구나. 그중에 음흉하고 숭물스럽고 흉측스러운 농어란 놈이 가로 앉아서 중놈을 슬슬 보는구나.......」

묘사가 뛰어난 대목을 소개한다... 화적들이 도부꾼들이나 행객들의 물건을 강취하기 위한 패악질에 대한 장면 묘사이다.

고갯목까지는 아직도 활 두어 바탕이나 상거하였으므로 그들은 불을 끄고 바삐 나귀를 몰아세웠다. 사위가 너무 적막한 것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낌새만은 금방 느낄 수가 있었다.

왼쪽으로 가파른 계곡을 내려다보며 몇 굽이를 목에 닿으니 그제야 사방의 소나무 숲 속에서 신음소리가 낭자하였다. 나귀를 매고 숲 속으로 뛰어드니 적변당한 품이 완연한 십수 명의 행객들이 숲에 널브러져 있었다.
상투가 서로 맞잡혀 매인 놈, 아갈잡이에 주의(周衣)와 바지가 벗겨져 시꺼먼 하초를 드러낸 채 나뭇등걸에 매인 놈, 허벅지에 투창(投槍) 맞고 자빠진 놈, 모가지가 부러져 입으로 낭자히 피를 흘리고 거꾸러진 놈,

허리 부러져 굴신 못하는 놈, 입 언저리가 작살난 놈, 뒷결박당한 채로 소나무에 매달린 놈, 눈알이 빠져나와 허옇게 늘어진 놈, 어깨죽지에 표창 맞고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놈, 물 달라고 소리치는 놈, 빈 자루 전대를 움켜잡고 대성통곡하는 놈, 식솔들 이름을 부르며 눈을 허공에 매달고 앉은 놈, 세 사람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기어오는 놈, 결박 풀어 달라고 먼 데서부터 애걸복걸하는 놈,

나타난 세 사람이 또한 화적 떼의 잔당이 아닌가 싶어 지레 겁먹고 비척거리며 달아나려는 놈, 화적 떼들이 도타한 길목을 가리키며 빨리 뒤쫓아가서 적몰당한 미역짐을 찾아 달라고 긴 사설 늘어놓는 놈, 화적 떼를 피하고 나니 때 아닌 새벽에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중얼거리는 놈, 잘려 나간 상투를 찾겠다고 풀숲을 뒤지는 놈, 발 고린내 나는 감발 풀어서 지혈시키는 놈, 이미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는 시늉 하는 놈, 밤새도록 소리를 질러 대서 목구멍이 꽉 막혀 버린 놈,

코가 뭉개진 놈, 허벅지에 맞창이 난 놈. 수십 명이 행보를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칼침을 맞고 늘어지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처박히고 매달리고 찢어지고 거꾸러지고 젖혀지고 비틀거리고 부러지고 휘어졌는데, 어느 한 사람 육신이 멀쩡한 이는 없었고 거개가 소매 달린 웃옷을 입을 처지가 못 되는 도부꾼들이나 상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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