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명룡 집필위원
예전에는 섣달 그믐날이면 반드시 웃어른들께 묵은세배를 올렸다. 우리 울진지역에서는 어르신께 먼저 큰절을 올리고 나서 “OO님, 과세(過歲) 평안(平安)하셨니껴” 라는 고상한 인사말로 안부를 여쭙는 것이 일반적인 세배 방식이었다. 아랫사람은 안부를 여쭙고 윗분이 덕담을 했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세배가 습관이 되어서 아직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 같은 인사말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더군다나 어르신께 올리는 말에는 더욱 그렇다.

“OO님 과세 평안하셨니껴” 라는 인사말을 처음 배웠을 때가 일곱 살이었다. 고개 너머 재종할아버지께 묵은세배를 올리러 가는 길이었는데, 열 살 터울의 맏형이 그 인사말을 가르쳐주고 반복해서 외우게 했다. 요새 아이들이야 보는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아 일곱 살이면 말재주가 여간 아니어서 그리 어렵잖게 배울 수 있겠지만, 라디오조차 구경 못한 산골 아이가 배우기에는 너무 어려운 인사말이었다. 가르치는 맏형도 겨우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으니 말뜻이나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또 정확한 발음으로 가르쳤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아무튼 5리가 넘는 그 길을 걷는 동안 골백번을 외웠는데도 막상 세배를 드릴 때는 “할배요, 가센니껴”하고 말았다.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지나던 시절이라 설을 앞두고도 흉흉하던 그믐날 밤에 재종할아버지께서 호탕하게 웃으셨다.

울진을 포함한 안동문화권 말에는 한자어가 많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혼났을 때 ‘시껍했다’ 라고 하는 말은 ‘겁을 먹다(食怯)’에서 비롯했고, 마음에 흡족할 때 표현하는 말 ‘대낄이다’는 ‘크게 길하다(大吉)’에서 연유했다. 몹시 마음에 차지 않고 부족할 때 하는 말, 즉 ‘대낄이다’ 에 반대되는 울진말은 ‘파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 ‘파이다’는 ‘판이하다(判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기준이 되는 본보기와 전혀 딴판이라 ‘다름’을 넘어 ‘틀림’에 해당할 때 우리는 ‘파이다’라고 말한다.

辛卯年 한 해 과세 평안을 여쭤보면 대다수가 ‘파이다’라고 대답한다. 몸살을 앓던 지구는 얇은 지표층을 흔들며 인간들을 위협했다. 그동안 죄악에 가까운 물질만능주의는 사회가치관의 혼동을 초래하며 곳곳에 파열음을 일으키더니 가치관 형성이 엷은 청소년층을 흔들었다.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로 투영된다. 점퍼 하나가 아이들의 계급을 형성할 정도로 어른들이 보여준 도덕성은 부박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중심에 선 미국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은 물질우선을 더욱 심화시켜 이미 위험 수위에 놓인 도덕성을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성 회복과 청소년 가치관 교육이 너무나도 시급하다. 가난하던 시절 우리가 그렇게 갈구하며 꿈꿨던 미래와, 지금 우리의 모습은 너무도 판이(判異)하지 않은가. 이런 경우를 한마디로 말하면 ‘파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명룡 울진신문 집필위원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