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라는 책 제목만 보고서는 ‘장사에도 도가 있을라나?’ 하고 의아해 했지만, 읽고 나서는 장사에도 도가 있고 장사꾼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도가 될 수 있다는 감동을 받았다.

특히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는 계영배(戒盈杯)의 경계를 통해서 이를 실천해 살아간다면 세상풍파를 줄일 수 있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조상들의 지혜를 배웠다. 조선의 상도는 인생철학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한 기회에 홍희상씨 저서 ‘일본의 상도’라는 책을 읽었다. 대단한 책이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패망을 딛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저자 홍씨는 일본의 힘의 뿌리는 일본 상인들의 상도에서 나왔다는 것을 은연중에 외포하고 있다. 일본 5대 상인들의 정신이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5대 상인이란 교토, 오사카, 오미, 나고야, 도쿄긴자 상인을 말한다. 조선의 상도가 인생철학이라면, 일본의 상도는 실천과 실용 철학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출신 홍희상 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년간 1백여 회 일본으로 건너가 상인들을 만나고 문헌과 유적들을 살폈고, 출간 전 7년간은 집중적으로 취재했다는 것이다.

요즈음 울진~봉화 12령 옛길을 배경으로 ‘객주’ 최종권이 될 열 번째 권을 쓰기 위해 울진을 오가는 김주영 선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주영 작가는 객주를 쓰기 위해 5년간 전국 시장 바닥을 다 돌아 ‘길 위의 작가’라는 별명을 얻은 분이다. 

일본의 상도는 5대 상인들의, 적게는 1백년에서 많게는 1천년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는데, 교토에는 1천년의 역사를 지닌 점포가 6개나 있다. 2009년 이 책을 출간할 당시 혼수방 가게인 겐다가 1,300년이 되었다. 부채가게인 마이센도가 1,200년, 인절미구이 이치와가 가게가 1,010년째 영업을 해오고 있는데, 1백년 이상 된 가게 수는 5백 개 이상이라고 한다.

오사카에도 578년에 창업하여 지금까지 세계 최고 오래된 기업인 곤고구미 건설사를 비롯하여 4~5백년 이상 된 가게가 부지기수인데 오사카 상인 정신에서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파나소닉 그룹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기업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오미에는 4백년간 모기장과 약을 팔아 부와 상도를 축척해 만든 도요타 자동차, 4백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나고야의 미쓰비시그룹, 신일본제철, 히타치제작소, 혼다자동차 등이  있다.

도쿄에는 소니, 사프전자 등을 비롯해 길게는 4백년 짧게는 1백년 이상 된 점포가 4백여 개가 있다.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들 5대 상인들의 정신에 뿌리와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오사카 상인 5명은 약 3백 년 전인 1723년 상인학교 가이도쿠도를 세웠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술뿐만 아니라 상도를 가르쳤다. 오사카 상인들의 실용주의 정신이 이 학교를 통해 이어지면서 훗날 파나소닉, 스미모토, 미쓰이 그룹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나 가게를 열고 있다.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의 단 한 가지 기준으로 식당을 열고, 옷가게를 열고, 펜션을 짓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손님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마인드와 정신으로 그들을 대하고, 가게를 운영해야하는 지에 대해 무감각하다. 일본은 약 3백 년 전 오사카 상인들이 이를 위해 ‘상인학교’를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농어민들에 대해서는 기술센터와 지도기관을 만들어 자금까지 지원하며, 지도하고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가게를 여는 상인들에 대해서는 이런 교육기관이 없다. 누가 알겠는가! 비록 지금은 작은 가게를 열고 있더라도, 1백년 뒤에는 일본의 미쓰이 그룹처럼 성장해나갈 상도를 지녔을지.


조선 보부상의 역사는 객주 작가 김주영 선생께서 꿰뚫고 있다. 마침 김 작가는 지금 울진의 보부상길을 더듬고 있다. 상인학교가 아니라면, 보부상학교라도 열었으면 좋겠다. 12령 보부상길이 실크로드 시발점이 아니라는 단서는 없다.

울진보부상 정신이 세계의 정신으로 뻗어나갈 상도를 만들 수 있을는지 누가 알겠는가!
                                                      
                                                                                               /  전병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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