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가는데 뭔가 차바퀴에 뿌직하는 느낌에 차를 세웠다. 개구리인가 싶었는데 사마귀였다. 찻길 동물사고(roadkill)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마는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 저 앞에 몇 놈이 진(陣)을 치고 있다. 가을 햇살에 아스팔트 바닥이 따뜻해서 나온 게지. 아니면 사냥을 나왔든가. 모두다 배를 아스팔트 바닥에 딱 대고, 마치 전쟁터에 나온 전사처럼 톱날 같은 앞발을 치켜세웠다. 그 유명한 천하제일의 당랑권법(螳螂拳法)의 자세다.

당랑(螳螂)은 한자어로 사마귀를 말한다. 사마귀는 예전부터 특이한 곤충이었는지 옛 문헌에 당랑거철(螳螂拒轍),당랑거사(螳螂巨士),당랑지부(螳螂之斧),당랑포선(螳螂捕蟬),당랑박선(螳螂搏蟬),당랑재후(螳螂在後),당랑규선(螳螂窺蟬)같은 교훈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의 교훈은 자기분수를 알고,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늘날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러한 사마귀의 생태 또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언젠가 사마귀에 관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가히 충격이었다. 사마귀가 육식성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온갖 동물을 다 잡아먹는 가공할 식욕을 가진 줄은 미처 몰랐다. 큰 참새, 개구리, 심지어 뱀까지 잡아먹는다고 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지? 폭식증에 걸린 환자 같기도 하다. 그 사냥 법 또한 곤충의 제왕답다. 사마귀는 사냥감을 잡기위해 숲속에서 인내하며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찰나의 재빠른 포획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사마귀의 짝짓기 과정이다.

수컷은 그 사랑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들의 사랑은 아주 뜨겁지만, 사랑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황이 확 달라진다.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목숨을 부지 하려면 사랑이 끝난 뒤 수컷은 재빨리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암컷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은 배고픔 때문이란다. 암컷은 수컷을 통째로 머리부터 맛있게 먹어치워 알을 깔 때까지 체내 영양분으로 비축한다는 것,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피눈물도 없는 잔인한 족속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사마귀 암컷 입장이라면 뱃속에 있는 새끼가 중요하지 얼빵한 수컷이 중요하겠는가? 일종의 모성애라고나 할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은 가난한 구두수선공 세몬과 떠돌이 천사 미하일의 이야기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그 유명한 세 가지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는가?』『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그 답은 사랑이라는 것, 인간이 인간다워 지는 것, 인간 존재의 참가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사랑에 대한 물음이 인간에게 국한되는 것이긴 하지만 톨스토이가 사랑에는 아름다운 사랑, 헌신적 사랑, 활동적인 사랑이 있다고도 했다. 동물들은 대부분 활동적인 사랑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마귀 수컷의 사랑은 임신한 암컷에게 새끼의 영양 보충하라고 몸 바친 헌신적 사랑이다. 눈물겨운 헌신적 사랑이지만 그 결과는 목숨을 건 비참하고도 위험한 사랑이기도 하다.
사마귀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위험하고도 비참한 사랑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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