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주 (사)장날 상임이사
방남수 시인의 첫시집을 받았다. 표제시가 ‘보탕’이었다. 보탕이란 뜻도 모른 채, 시를 읽었다. 시를 읽고 나니 설명이 있었다. 보탕의 표준말은 ‘모탕’인데,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는 방언으로 보탕이라고 쓰며, 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에 받쳐 놓는 나무토막이라는 뜻이었다.

그 시를 소개한다.  보탕/ 방남수

고향을 찾았습니다/ 살구나무 돌담 아래/ 우두커니 서서 사그라지는 하늘/ 쳐다보고 있었지요/ 한갓지게 쉬고 있는 당신을/ 문득 만난 날 그저 난/ 당신 이름 잠시 잊고/ 아우님께 저기, 이름이 뭐지?/ 보탕이잖아요, 보탕/ 아! 아! 무릎을 탁, 친다
보탕이시여 당신은/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진눈깨비 하얗게 섞어칠 때도/ 움푹 패인 몸으로/군불용 쏘시기로/ 생이 마감될 때까지/ 끝내 도끼날을 피할 수가 없었지요/ 아! 아! 오늘 난 당신을 본 순간/ 잊힌 세월 속 당신의 존재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생의 바닥 치고서야/ 나, 당신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시인에게는 고향이 보탕과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보탕을 본 일순간, 보탕보살을 만나 시 한편을 얻은 것일 수도 있다. 또 보탕이 불러주는 대로 시인은 받아 적은 것일 수도 있다. 하찮은 사물에게도 불심을 간파하는 시인의 내면이 아름답다. 울진에 좋은 시인이 탄생했다.
       
나는 시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시인의 고향을 찾아봤다. 울진군지에 따르면 삼근은 서쪽으로 높이 솟은 통고산과 남쪽의 천축산과 북쪽의 세덕산의 세군데 뿌리가 모인 곳이라 하여 삼근이라 불렀다고 한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의 고향다운 이름이었다. 

나는 방남수 시인의 ‘보탕’을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와 함께 읽으면서 두 시를 패러디했다.

보탕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생의 밑바닥이 되어준 적이 있었느냐 

생각해보면, 삶의 버팀목은 크고 요란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작지만 고요한 곳에 있다. 금맥이 깊은 곳에 작고 가늘게 있듯이. 고향이 언제나 그곳에 있듯이.

방남수 시인의 ‘보탕’은 울진이다. 울진은 에너지가 넘친다. 산과 바다와 강과 햇빛, 우주의 원자까지. 방남수 시인이 울진을 노래하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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