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임명룡
오랫동안 별러왔던 일본어를 이제야 배우기 시작했다. 동양학을 하다보면 일본어로 된 문헌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한문만 가지고는 그 대강의 뜻만 이해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기에 이번에 제대로 배우기로 했다.

촉음(促音)을 공부하다가 일본어에 ‘앗사리(あっさり)’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놀랐다. ‘あっさり’는 일본 말인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는 설명을 듣고, 나는 불뚝 우리말에도 ‘아사리’라는 부사어가 있고, ‘차라리’라는 말과 비슷하게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울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라서 내게는 일상어로 여겨졌던 것이다.

더불어 내가 아는 ‘이판사판 아사리판’에 대해 대충 설명했다. “이 말들의 어원은 모두 범어(梵語)로, 승려를 구별하는 명칭이었다. 이판(理判) 스님은 참선, 수행, 홍법 활동을 하는 승려를 이르는 말로 ‘공부승(工夫僧)’이라고도 했고, 사판(事判) 스님은 사찰의 살림살이를 맡아 운영하는 승려로 다른 말로 산림승(山林僧)이라고도 했다.

아사리(阿闍梨)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들에게 사리를 분별하도록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되는 승려를 이르는 말인데, 이판사판과 마찬가지로 판(判)을 붙여 ‘아사리판’이라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판사판’은 이판승과 사판승이 이해다툼에 얽혀 싸움이 벌어졌을 때를 말하고, ‘아사리판’은 이판사판에서 결판이 나지 않을 때 ‘아사리’가 나서서 분별하여 결론을 내려주는 과정이다.”

주절주절 쏟아놓았지만 막상 내가 제대로 알고나 떠들었나 싶어 집에 오자마자 사전과 인터넷으로 ‘아사리’를 찾아보았다. ‘이판사판 아사리판’은 내 설명이 그런대로 들어맞았던 것 같지만 ‘아사리’라는 부사어는 방언이라거나, 네티즌이 적어놓은 오픈사전 쯤에나 올라있었다.

심지어 ‘아사리’는 일본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 쏟아져 검색되는 것이다. 주로 올바른 우리말 쓰기를 인도하는 매체에서 강조하고 있었다. “아차, 내가 엉뚱한 말을 했구나.” 책망하면서 방언사전을 살펴보았다.

아사리 [부사] [방언] ‘모름지기 (사리를 따져 보건대 마땅히)’의 평안도 방언.
  “아사리가 평안도 방언이고 ‘모름지기’라는 의미였다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다시 검색해보았더니 ‘차라리’의 경상도 사투리라는 내용이 많았다. 그런가싶어 포기하려다가 문득 각 지방에서 사용하는 ‘아사리’라는 말에는 어떤 공통적인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에서 ‘あっさり’는 ‘분명하게 또는 선명하게’로, 평안도에서는 ‘사리를 따져 보건대 마땅히’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차라리’로, 모두 ‘분별과 판단’을 요구하는 부사형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이 범어(梵語) 아사리(阿闍梨)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여기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가까이 살고 있는 울진 친구와 술잔을 나누면서 얘기했더니 한참 웃고 나서, “아사리가 차라리라고? 아닌 거 같은데?”하는 거였다. 내 생각에도 울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사리’는 ‘차라리’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다시 고민에 빠져 얻은 결론은, ‘차라리’는 ‘A 보다 차라리 B’라는 형식에 해당하는 말이고, ‘아사리’는 ‘A 또는 B 보다는 아사리 C’에 어울리는 말로서 ‘이판사판 아사리판’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 이 결론을 들은 친구가 “오냐, 그래, 울진 말 ‘아사리’는 변증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부사어다.” 하는데 모두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끝으로 소설가 성석제가 내린 판의 단계를 보자. “어지러운 정도의 우열을 표시하면 이판사판 < 아사리판≦  난장판 < 개판이 된다. 난장판과 개판 사이에는 ‘개판 5분전’이 있을 수 있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