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스님

만우스님
친구들 사이에 간혹 ‘너 이거 먹고 제발 인간 좀 돼라!’ 라고 농지거리를 하고 있다면 그 음식은 십중팔구 쑥 아니면 마늘이다. 쑥과 마늘은 우리 민족과는 떨어질 수 없는 대표적인 음식이자 약이다. 한민족의 근원설화라 할 수 있는 단군신화에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다. 장년의 한 사나이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수술은 물론 병원치료를 접고 고향인 이곳 울진으로 내려와 쑥만 8개월 동안 장복을 했다. 그 결과 줄었던 몸무게가 회복되고, 혈압이 정상을 되찾고, 암은 거의 완치 단계에 이르렀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당장 울진신문사로 전화를 해 보시라. 바로 그 주인공이 증언을 할 터이므로)

물론 쑥만으로 암을 이겨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섣부르다. 오염된 도시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산 좋고 물 좋은 울진의 자연과 푸근한 고향의 정이라는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 여러 가지 음식 가운데 쑥이 들어가면서 그 섭생을 윤활하게 했을 것이다. 

차를 만들면서 내게 좋은 차를 꼽으라고 하면 선뜻 <쑥차>라고 말하는 신념이 생겼다. 물론 몸에 좋고 향기로운 차들이 많이 있지만, 쑥처럼 흔하고 그러면서 향기가 좋으며 약효까지 뛰어난 차는 드물다. 이를테면 녹차는 그 성분과 맛이 뛰어나지만 이 차만 계속 마시면 장을 해친다. 다른 차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쑥차는 좀 다르다. 계속 마셔도 별 탈이 없다. 뛰어난 약재는 쑥, 민들레, 질경이, 쇠뜨기 같이 산과 들에 널린 것들이다. 산삼이 귀하고 백약의 으뜸이라고 하지만 그 효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단오에 쑥을 베고 엮어서 처마 밑에 걸어놓았다. 단오 때의 쑥이 가장 약효가 좋다고 한다. 일종의 구급약인 셈이다. 아들이 타지에 나가 영양실조로 황달에 걸려 돌아오면 어머니는 그 쑥을 달여 먹였다. 그 뿐이랴. 보릿고개에 양식이 떨어지면 그 쑥으로 떡이며 국이며 죽을 쑤었으니 가장 훌륭한 약이자 음식이었다.

그러고 보면 단군신화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떠난 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섭생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라고 볼 수도 있다. 곰도 인간의 몸으로 변화시켰으니, 인간이 인간으로써 건강하게 살려면 마늘과 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귀하고 드물며 얻기 힘든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방편이 아니라 가장 흔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뛰어난 약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여튼 흔한 것이 귀한 것이라고 아무리 일러도 곧이듣지 않으니 이야기의 형식으로 남겨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한 면도 있을 것이다. 

울진 산골에 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를테면 농사를 배우고자 한다면 평생을 농사를 짓고 살아온 이웃집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여쭈면 된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농학박사나 농림부 장관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절차도 복잡하며, 농사에 대한 이론이나 정책과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호미질이며 낫질을 배울 수는 없으리라.

단군신화의 정신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고 한다.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 권력층이나 부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와 귀천을 막론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 이것은 곧 쑥의 정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사람이 사는 일도 마찬가지, 서로를 이롭게 하며 서로에게 가장 귀한 사람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떠나 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필요하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 닥친 몸과 마음의 모든 문제를 그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내 가족과 이웃인 셈이다. 늘 내 곁에서 나를 둘러싸고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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