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임명룡 집필위원
아들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얼마지 않았을 때, 부모님의 어린 시절 꿈(장래희망)을 조사해오라는 쪽지를 학교에서 보내왔다. ‘측량기사’라고 쓰고 이유를 적는 칸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라 적었더니, 아이 선생님께서 빨간펜으로 ‘웃음표시’를 하고는 ‘이유가 참 재미있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주세요.’라는 메모를 덧붙여서 돌려보냈다.

70년대 초반, 전기도 없던 울진의 산골에서는 곳곳에서 산판(山坂)이 한창이었다. 울진 금강송이 사정없이 베어져 나가던 시절. 아무튼 마을에 산판공사가 있게 되면 일순 활기를 띈다.

70년대까지 아름드리 금강송이 버텨올 정도이고 보면 그만큼 오지(奧地)였음을 반증하는 것, 없던 도로가 갑자기 생기고, ‘제무시’라 불리던 트럭이 굉음에 검은 연기를 사정없이 뿜으며 돌진한다.

마을사람들에게 모처럼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일거리가 생기고 저녁이면 이집 저집 밤늦도록 술판이 벌어진다. 아이들도 모처럼 구경꺼리가 생겨 위험을 무릅쓰고(?) 삼판현장 여기저기를 쏘다닌다. 외지 일꾼들이 묵는 봉놋방까지 쫓아갔다가 ‘측량기사’가 들려주는 낯선 마을의 신비한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기도 한다.

녹아떨어진 목도꾼들의 코골이에서 배어나오는 막걸리 냄새에 막연히 ‘제무시’ 트럭이 뿜어내는 매연을 떠올리다가, 매끈한 얼굴에 낯선 말투의 ‘측량기사’를 꿈꾸기도 했다.

산골에 사는 아이들에게 여름바다는 정말 환상의 세계다. 여름 백사장(白沙場)은 아이들의 하굣길이다.

지금 후포해수욕장이 있는 ‘햇내거랑’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나서 금음천(金音川)까지는 띄엄띄엄 바다를 들락거리며 걷다가, 산속에 갇힌 집으로 5리 남짓 걸어 들어간다. 얕은 바다 모래는 찰고무를 밟듯 결이 고와 ‘고무땅’이라 불리고, 아이들이 발로도 건져먹을 수 있도록 대합(大蛤)까지 흩뿌려진 곳도 그 여정(旅程)에 놓여있었다.

지난 몇 해간 여름철 마다 후포해수욕장을 지나갔다. 여름해수욕장인데도 사람이 하도 없어서 차를 잠깐 대고 주위를 둘러보며 식구들 눈치를 살피다가 자리를 뜨는 게 고작이다. 왜 그렇게 사람이 없을까. 생각 같아서는 ‘햇내거랑’에서 개헤엄으로 몇 날 놀고 싶은데.

이름이 예쁜 ‘햇내거랑’은 ‘삼율천’이 바다를 만나는 냇가를 이르는 말이다. ‘내(川)’의 사투리가 ‘거랑’인지, 아니면 고상하게(?) 한자를 써서 ‘거랑(渠浪)’이라 했는지 연원을 찾기 어렵지만, 우리 울진에서는 냇가를 거랑이라 했다.

삼율천은 영덕 칠보산과 울진 마룡산이 나뉘는 곳에서 발원하는데 마룡산을 거의 한바퀴 휘돌아 ‘햇내거랑’에서 바다와 만난다.

물결에 비친 햇볕이 유별나게 반짝거려 ‘햇내’라 했을 거라 짐작되는데, ‘햇내’에서 삼율천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빛내’ 또는 ‘볕내’라는 곳도 있다. 아마도 원래 이름은 ‘별내’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데는 그곳은 마룡산 산그늘로 햇빛은 적고 대신 별빛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햇내거랑’ 그리고 ‘별내거랑’ 마치 동화 속 이름 같지 않은가.

후포해수욕장을 기웃거리던 식구들은 조금 더 내려가서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여름 돈을 쓰고 서울로 올라온다. ‘고래불’ 이름 좋다. 이름 보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포해수욕장을 ‘햇내거랑 해수욕장’으로 하면 어떨까. ‘햇내거랑, 별내거랑’ 묶으면 또 어떨까. 어렸을 적 친구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반딧불이가 별만큼 많은 동네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곳이 ‘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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