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임명룡 집필위원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나는 원시시대를 살아봤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울진 삼척에 무장공비 소탕 작전이 한창 펼쳐지고 있을 때, 울진군 남쪽 끄트머리 산골 마을까지 군인들이 야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큰형은 그 군인들을 ‘야전군’이라 했다. 낮에는 가끔 정찰기가 아주 느리게 마을 위를 지나가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 비행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앞집 할아버지의 한문 읽는 소리로 착각했다가, 그것이 비행기에서 난 소리라는 걸 알고 기겁하고 말았다. 기계를 통해 나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태어나서 그때 처음 들었다.

그처럼 마을은 라디오 하나 없던 산골이었다. 기계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저 멀리 떨어진 후포등대에서 ‘밥 때’를 알려 주는 사이렌 소리가 전부였다. 이듬해 서울에서 극장 일을 한다던 작은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사다주셨고 차츰 기계에서 나오는 사람의 소리에 익숙해져갔다.

학교에 다니고부터는 사람 소리가 나는 온갖 기계음에 무디어졌지만, 원시시대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바닷가 ‘햇내거랑’에 여름이 들고, 아이들의 등짝에서 ‘허물벗기’가 세 번 쯤 지날 때 가을이 찾아오는데, 그러는 동안 외모는 원시인이 되어있게 마련이다.

원시인으로서 당연히 알몸으로 자맥질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한 무리의 낯선 종족(種族)들이 ‘햇내거랑’을 쳐들어왔다. 옷을 입고도 수영이 가능하다는 ‘비키니’ 종족이었다. 무기는 비키니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휴대용 축음기, 이른바 ‘야전’이라 불리던 포터블 야외전축에 팝송을 켜놓고 새하얗고 늘씬한 몸뚱이를 흔들어댔다. 그들의 육탄공격(?)에 멘탈이 고장나 일찍 사춘기를 앓게 된 원주민 꼬마들이 꽤있었던 것으로 안다.

얼마 후, 고등학생이었던 큰형이 ‘야전’을 사들고 ‘야전군’처럼 집에 돌아왔다. 큰형 방에는 Proud Mary니 Keep On Running이니 하는 팝송이 울려 퍼지고, 언제든지 최신 가요를 마음껏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노래 소리가 나오는 휴대용 기계’를 보유하게 된 이상 우리 집은 이제 완전히 원시시대를 벗어난 것 같았다.

뒷산 기슭에는 친척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할머니는 매일같이 우리 집에 놀러오셨다.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돕기도 하시고 소소한 일거리를 가져와서 마루에 올라앉아 종일 다듬기도 하시고. 그러시던 할머니께서 하루는 온종일 내려오시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왜 안 오시시는지 알아보고, 모시고 오라는 심부름을 받고 할머니 집을 찾았다.

“할매, 오늘 왜 울집에 안 오는데?”
“종손이 요새 이상한 노래만 만날 틀어놔서 시끄럽고......” 하신다.
“할매, 형이 틀어놓는 영어노래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가? 그러믄 영어노래 안틀믄 돼자나”
“그거만이 아녀, 맨날 ‘지금도 마루 위에 피가 있다’ 하는 노래 있잖여...... 종손이 하는 일이라 말하기도 그렇고......”
종일 앉아계시는 ‘마루 위에 피가 있다’니 뭔가 했다.

할머니는 가수 박건氏가 부른 노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의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가 듣기 싫으셨던 거였다. 그렇게 원시시대는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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