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스님

                 만우스님

-마지막으로 공양이 끝나면 남겨놓은 단무지를 갖고 발우를 깨끗하게 닦는 거에요. 우선 물을 붙고 어시발우부터 하나하나 닦아나가고 닦아낸 물은 다 마십니다.

그렇게 두어 번 반복을 하고 반찬 발우에 남은 물을 모아놓고 퇴수통에 버립니다. 퇴수가 가장 더러운 팀에게는 그 물을 다 마눠서 마시게 할 테니까 명심하세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어린이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당혹스러워하는 프로그램이 발우공양이다.
 
정작 밥을 먹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 발우를 펴고 게송을 하고, 밥과 반찬을 덜고(행익이라고 함)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 시간 정도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야 하니 초보자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발우공양을 자주 하는 스님들도 한번 공양을 하려면 40분 정도는 잡아야 하는데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여기저기 좀이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 처음의 엄격했던 분위기는 점점 흐트러져 잡담이 들리고 몸을 비비꼬기 시작한다.

작년에 이어 진주의 한 어린이법회 아이들과 올 여름에도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발우공양이 아주 쉬웠다.
 
밥과 반찬을 남기는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고 시종일관 의젓하게 발우공양을 진행했다. 누군가 일탈을 하거나 발우공양에 거부감을 나타내면 아이들이 더러 그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당연히 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잡히니까 처음 해보는 아이들도 당연 그 분위기에 휩쓸려 간다.

-아귀라는 귀신을 알죠? 탐욕을 많이 부리면 가는 곳이 바로 아귀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아귀들은 배는 남산만 한데 목구멍은 바늘만 해요. 그래서 이 아귀들은 발우공양을 하고 버린 물을 먹고 사는데 거기에 고춧가루가 들어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귀 목구멍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고춧가루, 밥 한 톨 남기지 말라는 거에요.

또 아귀들은 발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목구멍에 불이 난대요. 배가 너무 고파 소리만 들어도 목이 타는 거죠. 그래서 조용히 공양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돌아다니거나 옆사람과 떠들거나 입을 크게 벌려 쩝쩝거리며 먹는다거나 이러면 안 되겠죠?

발우공양 중에 아이들이 가장 거부감을 보이는 부분은 역시 설거지를 한 물을 다 마셔야한다는 것이다. 그 물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거부감이다. 또 평상시에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옛날 어른들은 숭늉을 먹더라도 자기가 비운 밥그릇에 따라서 밥풀이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드셨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직접 자식들 앞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자기 컵을 갖고 물을 마신다. 그리고 아이들이 밥과 반찬을 남겨도 따끔하게 꾸짖거나 잘못을 고쳐주려 하지 않는다. 

-만약 여러분이 밥과 반찬 찌꺼기나 발우 닦은 물을 더럽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더러운 밥을 먹은 거에요. 남이 먹다 남긴 음식도 아니고 처음부터 여러분의 밥그릇에 여러분이 먹고 싶은 반찬과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을 담아 여러분의 입으로 먹었어요.

그런데 그게 왜 더럽죠? 누가 손을 댄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밥을 먹는 사이에 누가 재를 뿌린 것도 아니잖아요.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었을 때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식사를 한 겁니다.
 
처음도 깨끗하고 끝도 깨끗한 거죠. 처음이 깨끗한데 끝이 더러울 수가 있나요? 여러분이 ‘이건 더러워서 먹기 싫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깨끗한 밥도 더러워질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밥과 반찬은 물론 설거지한 물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더러 밥을 더 요구하기도 해서 퍼주기도 했다. 지겹다고 생각했던 발우공양이 즐거운 시간으로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수행이란 그런 게 아닐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밥 한 톨도 소중히 여겨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다면 아무리 거칠고 흔한 음식이라도 깨끗하고 좋은 약이 되는 거고, 짜증내며 억지로 먹는다면 아무리 기름지고 귀한 음식이라도 더럽고 나쁜 독이 됩니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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