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집필위원

                 임명룡
중국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를 비롯하여 한국에 정통한 8명의 외국인 학자들이 <세계가 사랑한 한국>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한류문화의 기염(氣焰)에는 유교적 가치가 뿌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조선왕조 500년을 거치면서 유교는 마치 유전인자처럼 우리의 정서 속에 녹아내려왔다.

다들 알다시피 유교는 그 출발점이 효(孝)에 있다. 내 부모를 효도하는 그 마음을 넓혀나아가 마침내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구현하는 것이 유학(儒學)의 목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효’가 ‘이데올로기’ 앞에 놓이는 처지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유교에서 주장하는 孝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인데, 효경(孝敬)에는 “입신하여 도리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끝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수신제가하여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과정의 다른 표현이라 말할 수 있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 목표가 입신양명 즉, ‘출세’라면 그 보다 무서운 사회는 없을 듯하다. 오늘날 입시지옥도 그 부작용 중에 하나이지 않은가.

아무튼 ‘출세’는 동양인들의 오랜 도덕이자 욕망이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어서 입신양명에 이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세상의 온갖 ‘쓴맛’ 만 경험하고 발길을 돌리게 된다.

유명한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의 회향우서(回鄕遇書)라는 한시(漢詩)도 입신양명에 실패하고 늙어서 고향집을 찾게 된 한 노인의 회한을 읊은 것이다. 회향우서의 주인공은 한낮에 고향집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선비들은 아무도 없는 한밤에 조용히 돌아온다. 한석봉 어머니의 ‘촛불끄고 떡썰기’도 배경이 한밤이다.

옛날, 출세를 못해 효도하지 못한 우리의 조상님들이 야밤에 고향집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장독대였다고 한다.

장독뚜껑을 열어 장맛을 보고 장맛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에 “어머님이 아직 살아계시는구나.” 조용히 어머니 방 앞에서 엎드려 돌아왔음을 告한다. 며느리가 아무리 잘 배워도 시어머니 장맛은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쓴맛 단맛도 어머니가 길들인 입맛을 바꾸지는 못한다. 출세는 못해도 효심 또한 그대로다.

입맛이 돌아오는 가을이 되면 고향 울진 음식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 시도 때도 없이 입안에 군침이 돈다.

‘출향인 칼럼’을 쓰고 있으니 고향을 떠나 ‘세상에 나오기(出世)’는 했지만, 출세는커녕 여태 제 식구 건사에 급급해서 효도 한 번 못했는데, 입맛은 용케도 살아있어 고향 음식 탐낸다. 이젠 고향에는 집도 없고 장독대도 없어 한밤에 장맛 볼 일 없지만, 가을밤 풀벌레 소리는 그 시절로 끌어다가 장독대 앞에 오롯이 세운다.

‘요맘 때 울진 햅쌀밥에 후포 맷젓 한 종지, 풋고추 송송 다져놓으면 세상 부러울 것도 없다’ 싶기도 하고, 달콤새콤 밥식해, 짭조름한 조개젖, 참가자미 구이, 달래장아찌 더덕무침, 송....... 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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