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스님

울진을 떠나 다른 곳에 살게 되면 가장 먼저 어떤 울진의 모습이 떠오를까?

‘방금 밥 먹고 왔니더. 산에 다녀 오시니껴?’ 같은 울진 사람들만의 독특한 억양과 사투리, 원시림 같은 산 속에서 마주쳤던 멧돼지, 노루, 산양, 고라니 같은 동물들, 깎아지른 듯한 산을 헐떡거리며 올라 멀리 동해를 바라보던 산행, 초봄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노랗게 피어나던 생강나무꽃과 그 꽃으로 덖어 만든 꽃차의 알싸하고도 싱그런 봄의 향기, 여름밤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바라보던 별들과 수없이 떨어지던 별똥별, 들국화를 따와 차로 만들어 가을을 맛보던 정취...

일 년 가까이 울진에서 살면서 참 특이하고도 신비한 경험을 많이 했다. 그걸 다 글로 풀자면 책 한 권의 수고는 고스란히 바쳐야 하리라.

어느 날 문득 차를 몰고 가다가 이상하게도(?) 차를 사고 나서 단 한 번도 세차를 하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3월 중순에 차를 마련했으니 어언 8개월을 넘겼는데도 세차장으로 가거나, 집에서조차 한 번도 차에 물을 뿌려 닦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꽤는 의아스러웠다. 그렇다고 세차를 전혀 안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늘이 대신 해줬다. 세차 좀 해야지 하고 벼르다가 비가 오고 나면 차는 언제 먼지가 있었냐는 듯이 멀쩡해지곤 했다.

주유를 하고 얻은 세차권도 차 안에서 그대로 나뒹굴고 있으니 누군가는 차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타박을 하겠지만, 정말 세차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완곡하게 설명하면서 제발 믿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리라.

차 색깔이 군청색이라서 때를 타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거기에 흰 먼지가 끼면 더 지저분해 보인다. 차를 세워두기만 하고 돌아다니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장에 가거나 다른 볼일로 읍내에 나갔고, 산이며 바다로 온천으로 뻔질나게 돌아다니고, 그간 서울이며 청주로 진주며 광주로 장거리 운행도 몇 차례 한 적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해도 좋다면 이건 순전히 울진의 공기 때문이다. 먼지가 그만큼 없다는 이야기이고 먼지가 있어도 그 먼지 자체가 깨끗하다는 반증이다.

서울에서 차를 몰고 몇 시간을 돌아다니면 차는 금세 꺼먼 먼지에 뒤덮인다.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그러하다. 눈이나 비를 맞으면 차는 더 엉망이 된다. 빗물로 씻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빗물로 차가 더 더럽혀지는 꼴이다. 특히 눈길을 달리면 그 증세가 더 심각하다. 그 먼지는 기름에 찌들어 있어서 물로는 지워지지 않는다. 세차장으로 가 세제를 잔뜩 뒤집어쓰고서야 기름때가 가신다.

내가 사는 곳이 산골이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웬만한 먼지는 한 나절 빗줄기면 싹 씻겨 차에서는 반짝반짝 광택까지 난다. 좀 불쾌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내부 청소도 거의 하지 않았다. 모래가 있으면 바닥 시트 한번 툭툭 털어내는 일이 거의 전부였다. 거의 혼자서 차를 쓰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울진에 살면서 제일 수고를 많이 던 부분이 바로 세차, 차를 닦는 일이다. 

나는 아마 이 울진의 공기를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바다에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고 산에서는 울창하게 숲이 보존되고, 그 안에서 아름드리 금강송이 자라는 고장. 그리고 그 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울진 사람들은 씩씩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노인이 전혀 노인 같아 보이질 않는다. 목소리도 우렁차다. 내 고향 충청도 사람들보다 몇 음정은 높게 잡아 말을 쏟아내니 나는 거의 말참견할 틈도 없다. 오죽하면 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온 친구가 ‘청주 사람 300명 모인 것보다 울진 남자 셋이 모인 게 더 시끄럽다’고 하겠는가. 

여튼 이런 울진의 공기가 계속 청정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그리고 울진에서 가장 기피해야 할 사업이 세차장을 여는 일임에 틀림없다. 울진에서 세차장 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송이라도 한 송이 대접하며 말려야 한다. 한두 집이야 있어야 하겠지만, 그 이상이 됐다간 모두 다 망해먹는 길이니더.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