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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프랑스, 독일에서 배우다.’
- <독자기고> 귀농작가 배동분의 에세이로 쓰는 유럽 연수기①-
2013년 12월 13일 (금) 09:54:27 [조회수 : 5176]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김선우 시인은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연수는??? 삶에 대한 사랑과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어서 연수를 떠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삶보다 나은,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미래와 꿈을 위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에게 명쾌하게 답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하는 삶에 대한 애착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연수를 떠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모든 것은 자기가 발 담그고 있는 물에서는 내 위치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인 잣대로 보기는 어려운 법이다.

자신의 울타리로부터, 내가 금 그어놓고 살고 있는 이 테두리로부터 훌훌 털고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만 전체 속에 나를 발견하고, 내 삶이라는 배의 노를 어떻게 쥐고 배의 키를 어느 방향으로 들이대고 있는지 내 삶의 현주소를 알아먹을 수 있다. 그래서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이 가을 수확철에 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연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연수의 주관은 대산농촌문화재단이었다. 이 재단은 ‘농촌의 삶은 우리의 뿌리요, 농업은 생명을 지켜주는 산업’ 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던 교보생명의 창립자인 고 신용호 회장님의 뜻에 따라 설립되었다. 대산농촌문화재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 농촌지원 공익재단으로 ‘농업인의 역량제고 및 농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적으로 이번 해외농업연수를 추진한 것이다.

누구도 농업, 농촌, 농민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귀농하여 농업인이 된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수의 모든 경비 중 약 70%를 대산농촌문화재단에서 부담하는 좋은 기회라 더 금상첨화였다. 그러나 신청서에는 거의 대학입학사정관제도와 같은 자기소개서를 논문 쓰듯이 머리털 빠지도록 작성해야 했다.

운이 좋아 이번 연수자 선정에 합격하여 동행할 수 있었는데, 이번 연수 참가자로는 전국에서 지원서를 낸 사람 중 농업인 12명, 관련단체 실무자 5명, 경향신문 동행 취재기자 1명 등 모두 17명이 선정되었다.
일단 연수는 여행과 달리 기대심리도 있지만, 반드시 많은 것을 얻고서 돌아와야 한다는 부담심리가 훨씬 크기 때문에 ‘긴장감’을 볼모로 대동하고 나서게 된다. 그래서 돌아오는 날까지 그 놈의 긴장감 때문에 고생했지만, 결국 그 긴장감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알약이었다.

이번 연수의 목적은 첫째, 우리나라에게 현재 불같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유럽의 다양한 협동조합과 농민조직 활성화 성공사례를 통해 우리 농촌 공동체의 복원과 협동조합의 방향을 제시하고,

둘째, 친환경농업, 농산물의 고 부가가치 창출, 대안에너지 등 현재 유럽 농업과 농촌의 방향을 파악하고 우리 농업의 현장 적용 가능성을 찾기 위함이다. 셋째, 독일 하노버 국제농업기기 박람회 참관을 통해 세계 농업 기술발전과 흐름을 살펴보기 위한 이태리, 스위스, 독일 등에 걸친 10일 동안의 강행군이었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농촌도 이제는 ‘나 홀로 농사’ 에서 ‘함께 하는 농촌’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약 8만 개에 가까운  협동조합이 있다는 이탈리아에 나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쌍벽을 이루어 내 호기심은 이탈리아 파마지아노 치즈 농장과, 람브로스코 와인 농장, 현재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발사믹 식초 농장을 방문하여 그들이 역사와 전통을 지키며 어떻게 고부가가치의 농산가공품을 창출해내고 있는지에 쏠려 있었다.

이 외에도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생태마을과 윤데 에너지 자립 녹색마을, 유기농 판매점, 캄스루에 클라인가르텐 본부, 괴팅헨 농민시장 등도 무엇이 우리 삶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지를 배우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출발하는 날, 인천공항에는 비가 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창밖으로는 비행기에 사람보다 짐이 먼저 실리는 모습이 분주하다. 울며 헤어지는 사람, 될대로 되라는 식의 무표정한 사람, 설레임이 얼굴 구석구석까지 배어 있는 사람, 복에 겨워 보이는 사람, 죽지 못해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 등 다양한 표정의 ‘표정 종합선물셋트’를 볼 수 있는 곳은 공항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얼굴은 ‘표정종합선물셋트’에서 어떤 표정군으로 분류될까. 연수라는 특성에 따라 희망, 꿈, 설레임이 도포된 그러면서도 구석진 곳에는 얼마 전 캐다말고 온 쌍전리 깨밭골의 야콘이 걱정되어 어정쩡한 표정 위에 파란 싹 같은 희망이 드리워진 표정이 아니었을까.

공항에 올 때마다 느끼는 독특한 감정이지만 저마다 종종거리는 사람들 발끝에서 인연의 끈이 달그락거리는 것 같다.

멀리로 관재탑이 보인다. 비행기의 길을 안내하고 그가 안전하도록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관재탑. 비행기가 혹여라도 엄한 길로 들어서면 재까닥 길을 수정하도록 지시하고, 눈, 비 등으로 시야가 불확실할 때는 눈감고도 길을 찾아오도록 늘 비행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관재탑...

순간, 쌩뚱맞게도 우리네 인생길에도 관재탑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바램을 갖다가  지금 난 내 안에 관재탑 하나 세우기 위해 연수길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정수리 끝이 뻐근해졌다.

이렇게 해서 이태리를 시작으로 하는 연수기의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연수기가 어떤 큰 도움이 되기보다는 어떤 사람은 머리칼처럼 얽힌 삶을, 잠시 내가 어디에 서 있는 지 아리송한 상태의 삶을, 뭔가 꿈꾸고는 있으나 발이 늘 허공에 떠있는 상태의 삶을, 어제가 오늘 같고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려 애쓰는 지를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 배동분 ; 2000년 서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야콘농사를 지으며, 밤에는 글을 짓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과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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