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삼 서울신문 기자

 올해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결정판인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강산이 한 번 쯤 변할,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러나 지자체 도입 10년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않다. 예전에 비해 좋아진 것도 있지만 나빠진 것도 많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이다.

   
 최근 언론매체와 시민단체들이 지방자치 10년을 맞아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의 상당수는 지자체 도입 이후 좋아진 것으로 행정·민원 서비스 확대, 행정정보 공개, 사회복지 서비스 개선, 환경·문화 서비스 강화, 자치단체 정체성 및 차별성 확보 등을 꼽았다. 

반면 나빠진 것으로는 선심성 행정, 무분별한 지역개발, 지역경제 편차 심화, 지역이기주의, 지방공무원의 타성적 행동 등을 지적했다. 자치행정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는 셈이다.

각종 경제지표도 지자제 도입 이후 서울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전에 비해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총조세 중 지방세 비중은 지자제 도입 이전인 지난 95년 21.25%에서 지속적인 하향세를 보이다 올해엔 20.5%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 역시 지난 95년 63% 선에서 올해 56% 선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지자체들의 각종 행사비용은 지난 95년 570억원 규모에서 2000년 1,583억원으로 3배 이상 치솟은 데 이어 올해엔 줄잡아 2,50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 같은 수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좋게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데 약간의 투자비가 들고, 부작용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지난 10년간 대다수 지자체가 속은 텅텅 비워놓은 채 겉치레에만 신경을 썼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성 싶다.

지방자치 10년을 평가하면서 대다수 전문가들이 성숙한 지방자치를 담보하기에는 아직도 내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중앙정부의 통제가 지나쳐 지자체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이런 저런 규제에 얽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사·재정권 역시 중앙정부가 장악하고 있고, 도농간 경제적 격차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날로 심화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자치단체들이 그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여유를 부릴 만큼 한가한 상황은 못 되는 것 같다. 지역 경제와 민생이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다. 울진만 해도 그렇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중앙정부와 광역단체의 지원을 바라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기댈 언덕이 없다면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울진이라는 지자체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개막 열흘 만에 3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울진친환경농업엑스포의 성공적 개최가 단적인 예다. 친환경 농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울진의 성가를 드높였다는 점에서 크게 기뻐할 일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를 둘러싼 잡음도 적잖게 들리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울진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관·민이 땀 흘려 준비해서, 국제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 같은 행사가 지역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일회성 전시행정이나 선심성 행정의 산물로 전락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겉치레에만 치우치다 정작 중요한 실속을 챙기지 못하며 이 역시 ‘선심성 행정의 전형’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지자체의 경쟁력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일은 결국 주민들의 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자치 행정이나 기업 경영에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기업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실수와 손해를 반복하는 기업에겐 미래가 없다.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도 부도 기업처럼 도산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앞으로 10년, 겉치레를 털어내고 내실을 쌓는 자치단체만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필자약력
-67년울진 생
- 울진초66회, 울진중32회, 대구성광고 졸
- 육군사관학교(48기) 중퇴/ 중앙대 국문학과, 동 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
- 서울경제신문 사회부기자/ 서울신문 경제부, 산업부,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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