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 출향인 전 세 중

농어촌 마을이 잘사는 마을로 성공하자면 구성원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의 유적지도 인성교육의 장소로 활용가치가 높다.

2013년 11월 26일 서울시 퇴직공무원 44명은 버스 2대로 서울인재개발원을 출발,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마을을 찾았다. 일명 거북이 마을이다. 이 마을을 택한 것은 전국에서 ‘잘사는 우수 마을’ 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전영수 해설사는 홍성을 충절의 고장이라 했다. 최영 장군, 성삼문,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한용운 시인이 이 고장 출신이란다. 최영 장군이 태어난 터에서 100년 후에 성산문이 태어났다면서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먼저 사당을 안내했다. ‘구산사’ 인데 삼은선생인 야은, 뇌은, 경은 선생을 모신 곳이었다. 삼은선생이 누구인가! 나의 선조이기로서니 가슴이 뛰었다. 고려와 운명을 함께 한 삼은 형제분들 중에는 두문동에 들어가신 분도 계시는데, 홍성에 사당이 있다니...

해설사는 “어린이들이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여기서 예절과 인성을 배워가는 데, 개구장이 아이들도 여기 왔다 가면 착한아이가 되어유.” 충청도 사투리가 정겹다. 몇 발자국 떨어져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바 있는 약천 남구만 선생의 초당이 보였다.

그의 시비가 바로 옆에 서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 지리 우지진다” 로 시작되는. 생가도 몇 발자국 걸어가면 볼 수 있었고 실제로 사래긴 밭이 재 너머 있었다.

자리를 옮겨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장충영각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붉은 휘장이 쳐져 있었다. 가운데 휘장을 걷으니 정자에 사람이 앉자 있는 그림이 나왔다.

무장의 기개와 풍유가 함께 어우러진 걸작이란다. 전일상 장군의 석천선유도라 했다. 왼쪽 휘장을 젖히니 지금의 해군 총사령관격인 삼군도통사 전운상 장군의 영정이요, 오른쪽 휘장을 걷으니 석천 한유도의 주인공인 동생 전일상 장군의 영정이라. 두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농어촌 인성학교 전병환 추진위원장은 7년 전부터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처음에는 힘들었다고 한다. 그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와 마을 일을 보고 있다고 했다. 

마을에는 노인들뿐이고, 처음 마을 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참여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 뜻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여 추진이 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방문하면 마을 노인들이 2일간 잠재우고 밥 해주는 정성이 있었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의 잘사는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작년 17,000여명이 다녀갔다면서, “아이들이 오면 엄마까지 따라와 팔 벌려 옷 입혀줘, 먹을 것 사줘, 다해주어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이 없시유” 그것을 바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여기란다. 그의 언변은 솔직하고 능란했고 재치가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나는 여기서 전병환 위원장이 지도자로서 추진력을 읽었다.

2시간 이상 농촌의 실정과 퇴직자들의 성공과 실패담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권오룡 인솔팀장도 3년 동안 다녀봤지만 처음이라 했다. 의미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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