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농모 배동분의 에세이로 쓰는 유럽 연수기 (5)


伊, 프로슈토 파르마 햄 세계인 입맛 관장

햄 박물관, 농장, 식당 3박자 소비자 세뇌

농장주 코 고액 피보험 자부심 하늘 찔러

 

 

                         수천 개의 돼지 뒷다리가 숙성되고 있는 햄 숙성실에서

 

 


날씨가 추워지면서 뒤도 안돌아보고 산골을 떠났던 새들이 날씨가 해동되기 시작하자 하나 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모닝콜 해 주던 새들이 떠나가자, 겨우내 사발시계의 골 때리는 소리로 잠을 깨니, 하루 종일 대가리 뻐게지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성이 생기자 그럭저럭 겨울을 났다.

이제 새들이 돌아와 모닝콜을 해주자, 다시 아침이 밀크크림처럼 달콤하고 고슬고슬해지고 있다.

자연의 벗들은 이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게 분명하다. - 배동분

이탈리아 연수에서 가장 오랫동안 화인(畵印)처럼 가슴에 박혀 있는 것은 ‘발효식품이 세계적인 명품이 되었다’ 는 사실이다.

세계인들이 제품에 찍힌 마크만 봐도 일단 5초 정도 경기를 하고, 성스럽게 입으로 모셔가는 것이 다름 아닌 그 흔한 치즈이고, 햄이고, 와인, 식초라는 데에 일단 내 머리 속이 쑥대밭이 되곤 했다.

그리고 우린 쉽게 의문을 갖는다. 그들의 제품에는 어떤 뻐근한 요인이 있기에 명품이 되었을까? 그 제품에, 오로지 그 제품 자체에 뭔가 있다고 판단하여 벤치마킹한답시고 그것만 디립다 파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본 이탈리아의 명품들은 제품 자체만으로 끝내주는 평판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즉, 제품, 스토리텔링, 역사를 이루는 시간들, 마케팅, 관광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서로를 지탱해주고 밀어주며, 거기에서 넘쳐나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명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프로슈토 파르마 햄으로 그 의문을 함께 풀어가도록 하겠다. 람브로스코 와이너리, 발사믹 식초 농장, 파마지아노 치즈 농장 등을 둘러보면서 받은 충격을 그림으로 표현하라면 화가 뭉크의 <절규>를 떠올리면 딱이다.

 

 

그 정도의 충격이 채 주저앉기도 전에 우리는 햄에 찍혀 있는 왕관 마크만 봐도 세계인들이 환장해마지 않는 프로슈토 파르마 햄 농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밤샘 분임토의로 쩔을 대로 쩔은 연수생들을 태운 버스는 햄 농장으로 가지 않고, ‘파르마 햄 박물관’ 앞에 부려 놓았다.

오늘 세계적인 명품 파르마 햄 농장에서 배우고, 서둘러 스위스로 가야 하는데 왠 박물관일까 하는 의심과 실망스러움이 뒤섞여 사기충천하던 마음을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르마 햄 박물관에서 마중나온 세레나(Cerena)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 박물관의 방문이 직접 햄을 가공하는 농장의 방문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 서기 시작했다. 햄 박물관을 먼저 통과(?)시키는 것은 한 마디로 고객의 영혼에 마약을 투여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마 햄 박물관은 본래 도축장으로 쓰이던 것을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스토리텔링’을 한답시고 번지르르한 박물관 등을 지어재꼈겠지만, 그들은 옛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이골이 났다.

이미 견학한 세계인이 뒤로 자빠지는 발사믹 식초 농장도 고조 할아버지 때부터 방앗간으로 사용한 것을 개조하여 식초 숙성실을 만들었다는 것을 이미 앞 연재에서 밝혔다. 굳이 입으로 제품의 역사를 침튀길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래야만 ‘역사, 전통’ 이라는 먹이를 소비자에게 온전히 먹일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아는 거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햄 자체에만 공을 들이고 차별화하기 위해 기를 쓸 때, 이탈리아는 그것만으로는 승부수를 띄울 수 없음을 일찍이 깨닫고, 제품가치를 올리기 위해 ‘스토리텔링’이라는 옷을 덧입혔던 것이다.

우리나라 지자체 공무원들 입에서 팝콘 터져나오듯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는 단연 ‘스토리텔링’ 이다. 그러나 교육과 연수를 다녀보면, 정작 ‘스토리텔링’ 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타겟에 접목하여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왤까? 그 이유를 이번 이탈리아 연수에서 알았다.

‘파르마 햄 박물관’의 세레나 학예사는 자신이 이 박물관에서 고객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제품설명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전통햄 프로슈토 햄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사진, 그림뿐만 아니라 오래된 햄 제조도구들, 각종 자료뿐만 아니라 1920년대에 썼던 도살장비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으니 말 다했다 싶다. 그 뿐 아니라 옛 장인들이 전통 햄을 만드는 모습을 모형으로 실감나게 만들어 체계적이고 리얼하게 전시해두었다.

또 그들은 햄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자신만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 명품의 성공비결 중 하나였다. 즉, 그 지역 인근에 많이 나는 질 좋은 소금을 활용한 것이다. 남들이 햄의 원료인 고기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건조를 하거나, 열 등을 이용한다며 호들갑을 떨 때, 그들은 인근에 지천인 소금을 이용했다.

일단 돼지 뒷다리를 섭씨3도 기온에서 소금을 친 다음, 5일 동안 걸어두어 수분과 피를 제거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마사지하여 소금기를 제거하고 재염장을 반복한 후, 마지막에 돼지기름과 소금, 후추 등을 발라 오래 숙성시킨다는 것을 재현하듯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러한 모든 정보는 햄 박물관에서 체득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 박물관을 한 번 둘러만 나와도 이미 마약(?)을 한 듯 제품에 대한 신뢰는 자동빵으로 걸려들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뽕을 한 사람처럼 왕관 마크가 찍힌 프로슈토 파르마 햄에 대한 환상과 믿음, 호기심이 뒤범벅이 된 상태에서 햄 가공 농장에 도착했다.

우선 햄 가공만 하는 농장이 아니라 전문가공 기술 견학과 농가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고, 7년 전부터 관공투어도 실시해서 3만 여명이 방문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또한 가족경영 농장으로 총 4명이 연간 5만 개를 생산한다니 어느 정도 자동화가 되어 있는지는 감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탈리아의 모든 농가공 명품들은 관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못 박는 순간이었다.

 

                   햄의 숙성도를 말뼈로 체크하고 있는 농장 대표 까를로씨

농장 입구에서 까를로(Carlo) 대표가 위생사처럼 흰가운을 입고 우리를 맞이했다. 농장을 소개한 후 돼지의 부위 중 맛이 떨어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돼지 뒷다리가 어떻게 세계인의 입맛을 관장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하나의 거대한 창고문이 열리자 거기에는 돼지 뒷다리가 질서정연하게 수백 개씩 매달려 있었다. 다음 문을 열어도, 그 다음 문을 열어도... 무엇이 다르기에 이 많은 문을 열고 닫으며 보여줄까?

그제서야 문이 열릴 때마다 공중에 묶여 도열해 있던 돼지 뒷다리의 색깔과 냄새가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시간에 따라 숙성실의 온도차이를 두기 때문에 숙성도가 달라지면서 색깔과 냄새가 변함을 보여준 것이다.

이 돼지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온도를 조절해가며 소금을 치고 기계로 마사지하고, 건조하고, 숙성하는 등의 전 과정을 설명하는 농장대표의 표정은 자부심과 자신감이 섞여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의 이 모든 과정은 돼지 뒷다리에 박혀 있는 와이셔츠 단추만한 쇠붙이 인장으로 이력추적이 완벽하도록 되어 있으니, 명품의 관리가 얼마나 철저한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햄은 24개월을 숙성했을 때가 최상의 상태이며 3년까지 보존한다고 했다. 이런 햄의 가격은 1키로 기준, 30유로이니 우리나라 수입가격은 상상에 맡기겠다.

정품 파르마산 프로슈토라는 것을 증명하는 왕관모양이 찍히기 위해서는 햄 숙성이 1년 경과했을 때, 햄 협회 관리자의 철저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를 할 때는 뾰족한 말의 뼈를 이용하여 돼지 뒷다리를 5군데 찔러 그 향으로 숙성도 등을 판단한다. 이것을 통과해야만 파르마 왕관 모양과 인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반드시 말뼈를 이용하는 것은 말뼈가 향기를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말뼈 아니면 어떤 검사도 불가능하다는듯 까를로 대표가 말뼈로 돼지 뒷다리를 찔러 보고 냄새를 맡아보는 어깨에는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농장주는 자기도 제품검사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코에 고액의 보험이 들어 있다고 설명하는 눈빛에서는 자신만이 아니, 이탈리아만이 햄을 만들 수 있다는 정도의 착각이 들만큼 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감동에 쩔은 연수생들이 농장을 나와 도착한 곳은 전통 프로슈토 파르마 햄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식당이었다. 식당은 아까 견학한 ‘햄 박물관’ 근처에 있었다.

한마디로 햄 박물관에서 햄의 역사와 전통 등을 세뇌 당하고 이번에는 농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햄이 철저히 숙성되고 관리되어지는 지를 확신하고, 마지막으로 햄 전문식당에서 전통햄을 맛보도록 하는 트라이앵글 같은 삼각구도가 딱딱 맞아 떨어져 명품으로 자리매김 되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명품 즉, 람브로스코 와인, 발사믹 식초, 파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프로슈토 파르마 햄은 항상 관광과 그물코처럼 엮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음을 터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자체마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아웃풋을 많이는 내고 있으나, 외국에 비해 이렇다 할만한 효과를 못내는 데에는 이탈리아의 그것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은 아닌지.. ‘스토리텔링’이랍시고 없는 이야기까지 덧입혀 어쨌든 고객에게 제품이나 여행상품을 광나게 포장하려 하기 때문은 아닌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스토리텔링이란 제품에 얽힌 다양한 정보와 역사를 사실에 기초하여 생생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제품의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고객과의 공감대를 높이고 제품에 담긴 꿈과 감동까지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교과서와 같은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이탈리아의 명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고객들이란 입시생들보다 변별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없는 이야기, 작은 것을 크게 부풀려 겉만 번지르르하게 흉내내는 스토리텔링으로는 씨도 안먹힌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울진의 좋은 자연환경과 특산물, 울진의 열정 가득한 인적 자원(우수한 공무원과 농민들)이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린 꿈과 희망이 있다.

거기에 진정한 스토리텔링이라는 옷을 입힌다면, 다른 지역과 변별력이 우수한 제품과 관광상품으로의 재탄생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나 또한 아까 말뼈로 냄새를 맡던 까를로 농장 대표만큼이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탈리아의 모든 충격이 짓누르는 마지막 밤이지만, 난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눈에 넣고, 그 감동을 울진과 접목할 생각을 하니 또 다시 정수리가 뻐근해진다. 난 내일 스위스로 간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