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JC 제45대 중앙회장 홍성태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요,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것도 인연이요, 지나가다 날벼락 맞는 것도 인연이다. 남녀 간에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도 인연이요, 가정을 이루고 생노병사를 거치는 것도 다 인연이다.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 도 불교에서는 5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니, 굉장하다. 가로 세로 80리, 높이가 20리 되는 큰 바위에 천인(天人)이 100년 마다 한 번 내려왔다가 올라갈 때, 옷깃에 스쳐 닳아 없어지는 세월이 1겁의 시간이란다.

한 나라에 태어나는 것은 1천겁, 하룻밤 같이 자는 것은 6천겁, 부부가 되는 것은 7천겁, 부모자식은 8천겁, 가장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인데, 1만겁이란다. 불교 인연설에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스승을 만나 배우고 익혀 인간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세월호 침몰로 온 나라가 참담한 슬픔과 분노에 잠겼다. 이런 참상이 일어난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천박한 자화상의 결과다. 얼마나 소중한 인연들을 실었던 세월호였던가! 5백명에 가까운 인연을 싣고 있었다.
1994년 2월초 한창 꿈을 키우던 청년시절, 나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JC 경북도회장 신분으로서 울진JC를 방문할 때 폭설이 내려 힘들었다. 그런데 울진JC 회관 앞에 도착하자, 커다란 눈사람이 홍성태라는 명찰을 달고 나를 반겼다.

나의 방문을 환영해 주던 울진회원들의 그 눈사람의 정성을 아직도 생생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린다. 지난 설날 조금 지나서도 나는 그 때를 추억하며 울진JC를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1994년 첫 방문 때처럼 폭설 직후였다. 이것은 나에게 눈과의, 울진JC와의 어떤 인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봉화사람으로서 울진 나들이는 그리 쉽지 않다. 잦은 볼 일도 없지만, ‘울진 가는 길’ 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울진 갈 때는 큰마음 먹고 일삼아 가야한다. 숱한 굽이길 돌아 끝없이 가는 한국의 차마고도 길이 ‘울진 가는 길’ 이다.

그나마 천혜경관 불영계곡이 있어서 다행이다. 구경삼아 가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섭섭하게도 이제 낮 익은 길도 새 길이 뚫리면 ‘쌩’ 하며 지나갈 수는 있지만, 추억어린 낭만은 사라지리라!

지난 3월 여러 번의 울진나들이 길에, 울진시장 한 할머니와의 인연이 생각나서 찾아 보았다. 그때 자리에 할머니는 없었다. 지난 2, 3년 동안 우리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고, 영주역 앞에서 사과를 파시던 인심 후하시고, 인상이 좋으시던 할머니도 올 봄 내내 안 보이신다. 이렇게 나의 ‘시절인연’은 하나씩 사라지고 마는가!

불교에서는 윤회를 벗어나 열반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사람으로 태어날 때라고 가르친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 단 한 번 만나게 되는 것’ 이 인연에서 비롯된다 했는데, 울진나들이를 그렇게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인연의 인연, 그리고 또 인연의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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