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시인, 재경출향인)


유럽의 음식은 주식이 빵이다. 주로 빵과 우유로 간단히 식사를 하지만 서유럽의 아침식사는 나라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 중 독일의 아침 식사가 제일 좋았다. 빵과 과일, 우유, 주스가 넉넉했다. 오스트리아도 괜찮았다.

“앞으로 아침 음식은 여기 (오스트리아) 보다 못할 거예요.” 여러 나라를 여행한 가이드가 말했다. 이탈리아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탈리아에서 3일을 머물렀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서 음식이 제일 거칠었다. 호텔에서 아침마다 주는 빵은 딱딱하고 짜서 먹기가 불편했다.

부드러운 빵도 많이 있을 텐데, 굳이 이런 맛없는 딱딱한 빵을 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빵도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과일은 달랑 사과 한 개, 보편적으로 음식마다 소금을 많이 넣었다.

그들은 손님 접대는 안중에도 없었다. 음식에 소금을 많이 넣는 것은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심산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아침마다 그나마 입맛에 맞는 우유와 주스로 배를 채웠다. 우유는 한국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월등히 맛도 좋고 많이 마셔도 탈이 없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사정도 좋지 않았다. 로마에서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숙박소는 4층 건물이었는데, 우리는 3층을 배정받았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렸다. 주인아저씨는 상냥한 편이었는데, 부인은 무뚝뚝하고 눈썹은 작대기처럼 그어진 일자 눈썹이었다.

저런 일자 눈썹이 이태리에선 유행이란다. 자주 드나드는 가이드가 말했다. “부인은 별로 하는 게 없어요.” “아저씨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부인은 아침에 잠깐 나와 일하고, 저녁 무렵 수금하기 위해 나왔다가 일찍 집으로 들어가요.” 어딜 가나 여성의 권위가 대단하다.

호텔 샤워실이 유난히 작았다. 물이 밖으로 튀지 않도록 플라스틱 미닫이를 하였는데, 몸을 씻을 때면 손이 벽에 부딪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좁은 것 같아 자로 재어 보았다. 정사각형으로 가로, 세로가 각 70cm였는 데, 몸집이 뚱뚱한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가기 조차 힘들 것 같았다. 변기 옆이 샤워실인 데, 물이 변기 쪽으로 흘러내리면 빠질 배관이 없어 조심해서 샤워를 해야 했다. 그래도 변기 쪽으로 물이 흘러나와 물바다가 되어 수건으로 닦아냈다.

여행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음식과 호텔구조는 이탈리아의 오랜 전통문화인 것 같다. 이런 문화는 예로부터 악명이 높았다. 이탈리아 북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번영한 곳이었다. 18세기 온라인 투어가 한창일 때, 여행 온 영국인들은 끊임없이 숙박시설과 음식에 대해 불평해댔다. 건물은 낡고 더러운데다 서비스는 형편없고 음식은 손님들을 거의 독살시킬 수준이라는 것. 특히 음식대접에 인색하다는 것이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도 몇 시간이 지나도록 커피 한잔이나, 수박 한쪽을 내 놓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주택이 난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원성을 샀다. 당시 이탈리아를 여행한 영국인들은 “당신이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한다 할지라도 침구, 음식, 역참, 마차, 불결함이 영국 여행자에게 주는 불쾌감을 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는 곳마다 커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베네치아에서 로마까지 어디에도 청결하고 유용한 발명품인 변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 음식이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많은 유적지와 찬란한 문명을 가진 이탈리아, 손님 접대의 인색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짠 음식도 그 나라의 전통이며 문화라고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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