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유럽기행

 

스위스 인터라켄 동역 근처에서 바라 본 먼 산, 유럽의 지붕 알프스 산맥에는 만년설이 쌓여있었다.

푸른 풀밭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들, 예쁜 꽃들로 장식된 아담한 집들이 보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음식점은 통나무로 지어져 아름다웠다. 일행이 자리에 앉자 음식이 차려졌다. 꼬리곰탕이었다. 음식을 날라주는 여성은 이십대 후반의 한국인, 우리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이란다.  
 

한국인이 온다고 하여 마련된 저녁 공연의 자리, 한쪽 귀퉁이에 나이 지긋한 남성 두 명이 악기를 다루고, 여성 한 명이 요들송을 불렀다.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 을 기쁜 표정으로 부른다. 둔중한 소리의 알프 호른과 낡은 아코디언의 조촐한 연주다. 

‘아름다운 베르네 맑은 시냇물이 넘쳐흐르네, 새빨간 알핀로제스 이슬 먹고 피어 있는 곳’ 으로 시작되는 노래, 독특한 창법인 요들송을 웃음을 머금고 부르는 여성이 인상적이다. 신비스럽고 독특한 떨림의 요들송과 이를 받히는 깊고 느릿한 악기소리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마음씨 좋아 보이는 듯한 악사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2미터나 되는 악기 알프 호른을 불어보라고 하였다.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어찌 단번에 소리가 나랴. 그러자 입 모양을 보고 따라해 보라며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였는지 몇 사람들이 불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가 ‘빽’ 하고 나더니 그쳤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들은 참 친절해 보였다. 그 여유로움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경험 많은 가이드가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산중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서 우직하면서도 순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정감이 더 가는 것 같아요” 그렇다. 우직하면서도 충성스러운 사례를 빈사의 사자상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 일가를 지키다 죽은 스위스 용병 786명의 충성 이야기다. 용병들은 식구들을 벌어 먹이려고 이웃나라를 위해 대신 싸웠다. 루이 16세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의 사명은 왕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등에 창이 찔려 죽어가면서도 루이 16세의 방패를 가슴에 깔고 있다. 신의와 의리를 위해 죽음을 택한 그들이다.

루체른 호숫가를 걸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나이 지긋한 여성과 약간 몸이 부딪쳤다. 그 여성이 먼저 미안하다며 웃는다. 옷깃만 스쳐도 미소 짓는 그들, 소박하면서도 인정미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길이가 무척 긴 악기인 알프 호른이 스위스의 상징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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