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유럽기행(4)


나는 여행 상품을 고를 때 박물관이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박물관에는 그 나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치보다는 유적지를 선호한다. 

산과 호수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중국의 장각산이 웅장하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에도 설악산과 지리산이 있다. 중국에 서호가 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에도 경포호수가 있다. 산은 깊이와 높이에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고 호수는 넓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호수는 호수일 뿐이다.

서유럽 여행 중에 세계 3대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바티칸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을 둘러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나라도 더 보려고 뛰었다.

바티칸 박물관을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하였다. 그날은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어깨가 부딪히고 등을 떠밀리며 들어갔다.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 사진을 찍으려니 정신없이 바빴다. 1,400여 개의 방에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조각과 회화들에 눈이 취하고 마음이 취했다.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서면,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만난다. 천지창조는 1508년부터 4년 동안 미켈란젤로 혼자서 그린 대작이다. 천정 밑에 작업대를 설치하고 올려다보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그림에서 혼신을 다한 흔적이 나타난다. 391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 살아서 꿈틀거리는 육체가 나를 사로잡았다.

인간의 무한한 힘을 느겼다. 나는 그저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등장인물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그렸으나, 교황이 미켈란젤로의 제자 볼테라를 시켜 성기를 살짝 가렸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알몸이다. 자연 그대로인 몸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종교적인 잣대로 예술적 가치를 반감시켰다는 느낌이 든다. 

전 세계 성당 중 가장 큰 베드로 대성당은 장엄했고, 광장에는 해마다 1,000만 명 이상 다녀간다니 그럴 만도 할 것 같다. 예수의 유해를 안고 비탄하는 성모마리아 조각 ‘피에타’ 앞에 서니 미켈란젤로가 혼신을 다해 표현한 예술적 정열과 종교적 진지함이 보인다. 서유럽 여행 중 내게 제일 기억에 남는 박물관은 바티칸박물관이었다.

매년 850만 명이 다녀간다는 루브르 박물관은 파리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이곳을 보지 못하면 파리를 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함무라비 법전, 밀로의 비너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승리의 여신 니케, 메두사의 뗏목,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이 눈길을 끈다. 

박물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루브르박물관이 1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바티칸박물관이 2위, 미국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3위를 했다.

매년 500만 명이 다녀간다는 대영박물관, 입장료는 공짜다. 전시되고 있는 대부분의 유물들이 대부분 외국으로부터 기증을 받거나, 식민지로부터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94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다. 전시실 동선은 4킬로미터에 달해 모든 작품을 관람하려면 사나흘은 걸린다. 이집트 조각 전시실, 중동아시아 전시실, 그리스, 로마 전시실과 함께 한국전시실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전시실은 이집트 조각 전시실과 미라 전시실이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 로제타스톤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 상형문자, 민간문자, 그리스어로 법령이 새겨진 검은 현무암이다.

나는 이 암석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람세스 2세의 조각상과 이집트의 미라 전시실을 보면서 이집트박물관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리스, 로마 전시실은 파르테논 신전의 주요 조각을 옮겨다 놓았다. 지금까지 계속 그리스 정부와 소유권 문제로 분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관 전시품들은 빗살무늬토기와 신라시대의 금관, 분청사기, 정선의 산수화, 옛 책들, 병풍, 부채가 있고, 전통 한옥에는 한영당이라 쓴 여초 김응현의 글씨가 보인다. 중국, 일본관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한국관이 있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릴 수 있다는데 자부심을 느꼈다. 부족한 것은 개선해 나가면 될 것이다. 

시간에 쫓겨 전시된 유물을 자세히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지만, 다른 여행상품에서 느끼지 못한 세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제국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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