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칼럼> 전병식 주필

 

 

 

신은 또 계절의 발걸음을 잠시도 늦추지 않고 재촉하여, 삼라만상 운행의 그 정확성을 자랑하는 듯하다. 며칠전 입추에 들어서자, 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돌고 있으니, 또 한 해의 하반기에 접어드는가 싶다.

올 여름에는 농수산 1차 생산품이 거의 전부인 울진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 울진사람 먹고 사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금강송의 고장 울진에, 소나무 중의 소나무로서 신령스런 ‘대왕송’ 의 알현을 위한 순례객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왕송을 발견하여 금강송 나라의 대왕 권좌에 옹립한 일등공신 장국현 작가가 몰매를 맞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요즈음 장 작가는 두문불출,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수년전 악플러들로 인해 연예인 등 몇 명이 자살했던 불길한 예감이 떠오를 정도이다.

이러다가 노인 한사람 잡는 게 아닌가! 여러 사람이 합세한 매스미디어가 어떤 한 사람을 이렇게 파탄지경에 이르도록 매도할 수 있겠다는 섬뜩한 느낌이다. 그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그의 혁혁한 공적에 대해 사실을 밝힌 울진신문도 함께 얻어맞고 있는 상황이다.

비판의 요점들은 장국현 작가가 처음 발견자가 아니다. 이미 대왕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범법자에게 무슨 감사패냐. 죄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 대왕송을 작가 개인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등이다.

물론 장국현 소나무 전문 사진작가가 전국 최대 방대한 면적의 금강송 국가 천연보호림보호림 구역을 지정해 놓은 울진군 서면 소광리 마을을 찾아와, 아마 주민들에게 특별한 소나무를 본적이 없느냐고 물어서, 대왕송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하나의 좀 큰 나무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전문 소나무 작가적 경륜으로 이 나무가 왕송의 재목임을 직감하고, 입히고 차려서 비로소 세상에 왕의 출현을 알렸던 것이다. 간첩임을 알고 있었지만 뒤에 신고를 하는 것과 늦게 알았지만, 먼저 신고하여 포상받는 것과의 차이다.

얼마전 금강송 숲길에서 황장봉계동계표석 발견에 대한 포상도 같은 상황이다. 먼저 보고 발견한 사람은 관광객이었다. 그는 다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표시하고는 떠나갔다. 그러나 당시 모 해설사는 사진을 찍어 지휘계통의 상부기관에 보고를 했고, 경북지사는 그를 발견자로 인정하여 포상을 했다.

필자는 금강송의 마을 소광리 출신이라 수십년 전 산불을 끄러 안일왕 산성에 오른 적이 있었다. 신문사를 창업한 후에는 주민들과 함께 안일왕 산성 탐방길에 나선 적도 있는데, 이때 산성 가는 길 옆의 대왕송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대왕송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기억도 난다.

이 대왕송을 누가 먼저 본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를 누군가 대왕의 권좌에 앉히고 ‘대왕님! ’ 이라고 부른데서 부터 비로소 ‘대왕송’이 된 것이다. 대왕송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단지 굉장한 소나무 중의 한 그루에 불과했다. 김춘수 시인의 시어를 빌리면, 그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서 비로소 내게로 다가와 꽃이 된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고, 민족성을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의 나무다. 그동안 울진의 5백년송이 우리나라 금강송 대표 송 쯤으로 알려져 있었다. 금강송은 강원도 강릉일대에서부터 청송지역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넓은 지역 안에는 아직 미발견되었거나, 이미 발견된 울진의 ‘대왕송’을 능가하는 수령과 크기의 금강송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울진의 대왕송이 최고의 권좌에 올라 이미 금강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상황에서, 영덕보다 약 5배나 많이 잡히는 대게의 고장 울진이 영덕대게의 명성을 능가하지 못하듯이, 대한민국 최고 소나무의 위상은 울진의 대왕송이 먼저 차지한 것이다.

우리는 장국현 작가 그의 행적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의 불법 또는 범법 부분만을 부각시켜 그의 업적을 폄훼하는 것은 사물을 살피는 형평감각의 부족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인권탄압과 반민주적 독재정치만 부각시키고, 세계를 놀라게 한 그의 경제적 업적을 거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반사회적이고 반민주적이다.

그리고 다 좋다. 옹호를 하든지 질타를 하든지. 최소한 자신의 단순한 의견 개진인지, 상대는 틀리고 잘못됐고,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는 주장인지의 정도는 구별하고 글을 쓰야 할 것이다.  최근 인터넷 웹상에는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다보면 여론살인 또는 여론타살이라는 반사회적 불명예를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난호 울진신문 주필의 칼럼은 장 작가의 실수나 범법보다는 공적이 더 크다는 하나의 주장이었고, 같은 호 오피니언 란에는 장 작가를 성토하는 상반된 성명서도 하나의 주장으로서 여과없이 실어, 한편의 주장을 배제하지 않는 형평 감각을 유지했다.

그리고 울진사람들은 장 작가에게 벌이 아니라 상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 간략히 하겠다. 비유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칼기 폭파요원 김현희와 아웅산 테러범에 대해 남한 사람들과 세계인들은 그들의 만행을 극력 성토하지만, 만일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귀환했다면, 북한정권은 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장 작가는 우리고장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을 창조했다. 대왕송의 발견과 그 사진 작품으로 관광객의 증가는 물론, 울진이 한국 최고 소나무의 고장이라는 굉장하고도 아름답고 멋진 명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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